알렉산더와 장난감 쥐 - 1970년 칼데콧 아너 상 수상작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261
레오 리오니 지음, 김난령 옮김 / 시공주니어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시공주니어의 '네버랜드 픽처 북 세계의 걸작 그림책 시리즈'의 무려 261번째 책이다.

한 문장 쓰는 데 '의'라는 조사를 세 번이나 책정할 수밖에 없다니, 나는 아직 멀었다.

 

 

스스로를 '읽는 사람'으로 정의한 자들은 필연적으로 '쓰는 사람'으로 건너간다.

하다못해 일기를 쓰더라도 쓰지 않고는 못 배긴다.

'쓰는 사람'의 다음 단계는 내가 쓴 글을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다.

욕망은 소설이 되기도, 연극을 위한 극본이 되기도, 영화를 위한 시나리오가 되기도, 드라마를 위한 대본이 되기도, 마음을 길어올린 시가 되기도, 에세이가 되기도 한다.

여기 이곳에 책 블로그를 연 나, 아이의 탄생과 동시에 그림책 세계에 뛰어든 나 역시 읽는 사람 - 쓰는 사람 - 터무니없는 욕망과 분명한 목표를 가진 쓰는 사람의 레이스를 충실히 밟고 있다.

그런데 한 문장에 같은 조사를 세 번이나 쓰다니, 나는 진짜 멀었다.

알렉산더가 발견한 보라색 조약돌을 훔치고 싶다.

그렇다. 나는 이 그림책을 '욕망'의 키워드로 읽고 있다.

 

 

늘 쫓기는 신세인 나, 알렉산더.

어두컴컴한 쥐구멍에서 타자를 욕망한다.

밝고 안락한 곳에서 늘 사랑받는 장난감 쥐 윌리를.

"아! 나도 윌리처럼 장난감 쥐여서 사람들이 안아 주고 사랑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한편 윌리에게도 속 사정은 있다.

자신의 주인 애니가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이자, 꼭 안아 주고, 밤에는 인형과 털복숭이 곰과 함께 푹신한 흰 베개에 누워 잠을 자는 윌리가 '모두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의 공허함은 이런 이유 때문일 터다.

"난 못 가. 사람들이 태엽을 감아 줘야만 움직일 수 있거든. 그래도 상관없어. 모두 나를 사랑하니까."

 

 

이야기가 비틀리는 건 알렉산더가 윌리를 욕망하고, 그 욕망을 실현하고자 행동할 때다.

이 이야기의 절대자 도마뱀을 찾아가 장난감 쥐로 만들어달라는 소원을 비는 바로 그때.

도마뱀은 둥근 달이 뜰 때 보라색 조약돌을 가지고 오라고 말한다.

다음부터는 스포일러 같아서 더 이야기하기 어렵겠지만, 나는 결말 못지않게 이 전반부도 인상 적이었다.

알렉산더가 도마뱀을 만나러 가기까지를 읽으며 마음이 따끔하기까지 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서 절대자를 찾아가야 했던 그 심정, 이해 못 할 바 아니고.

또 그런 마음먹기까지 얼마나 고뇌했을까 충분히 짐작도 되고.

'더 나은 나'가 되고 싶어 몸부림치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 같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윌리를 보면서는 SNS에 인생을 전시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떠올렸고.

 

 

빗자루에 쫓기며 음식을 훔쳐 하루하루 먹고사는 처지이지만 주체적으로 움직이고 욕망하는 알렉산더.

안온한 환경에서 평화롭게 살아가지만, 누군가가 태엽을 감아 주지 않으면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윌리.

이 단순하면서도 명징한 우화는,

 

 

- 너 자신을 발견하고

- 너 스스로를 사랑하고

- 그리하여 주체적으로 움직이라

 

 

는 클래식 중의 클래식 노선을 걷는다.

아시다시피, 종이로 된 고전은 인간의 마음에 '원형'이라는 인장을 새긴다.

이래서 다들 레오 리오니, 레오 리오니 하는구나 싶다.

그림책 세계에 입문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작가 이름 중 하나였다.

 

 

코로나19로 바깥 활동이 어려운 요즘.

나와 아이는 소파와 물아일체 되어 하루에 30권 내외의 그림책을 독파 중이다.

지난 며칠, 그 30권 중 빠지지 않고 선정된 그림책이 <알렉산더와 장난감 쥐>였다.

아이에게 읽어주는 척하며 어느새 낭독 대신 묵독으로 읽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놀란 적 여러 번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다른 부분이 보이고, 다른 키워드가 잡힌다.

 

 

자아, 번민, 욕망, 이상 등 손에 잡히지 않는 단어들 속을 헤매며 진정한 나를 만나기 위해 분주한 모두에게 추천한다.

이 그림책을 읽으며 자라날 아이들의 가슴속엔 어떤 씨앗이 뿌려질 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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