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 언니 - 양장
권정생 지음, 이철수 그림 / 창비 / 200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전쟁이라는 슬픈 역사적 배경 속에 펼쳐지는 몽실이의 삶. 도로시의 구두처럼 반짝이는 화려한 꼬까신도 없고, 못생긴 마녀도, 잘생긴 왕자도 등장하지 않는 이야기. 그렇다고 무지개 같은 빛깔을 내내 뿜어내는 것도 아닌. 그저 책 속의 목판화처럼. 그렇게 다부진 회색빛으로 무덤덤하게 그려낸 이 이야기 속에서 나는 ‘희망’이라는 작은 이름을 발견한다.

 삶을 지치게 하고, 무력하게 하고, 이기심을 키우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살고자 했던 몽실이를 통해 우리는 ‘희망’을 보게 되고, ‘행복’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삶을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나의 양심과 도덕을 포기하고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일들이 존재한다. 물론, 옳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자신의 소신을 지킬 수 있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우리는 어두운 현실에 눈물을 삼킬 수 밖에 없었던 이들에게 그저 손가락질 할 뿐이다. 그러나 몽실이는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그들 또한 ‘살아가고자’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배고프면 화냥년도 되고, 양공주도 될 수 있어요.” 과연 배고픔 앞에서 수치를 알고, 도리를 알고, 소신을 따질 수 있을까. 이러한 몽실이의 시선은 더 넓게는 사회 저변에 자리하고 있는 낮은 곳을 향한 외침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가난 때문에 도둑질 하고, 아이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불법행위를 저지를 수 밖에 없는 부모들. 그들을 향해 무조건 비난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그렇게 만든 우리네 사회를 돌이키고 그들의 입장에서 무언가 방안을 찾아보아야 함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몽실이의 삶은 그야말로 우여곡절이 많은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결코 쉽지 않은 삶. 그 누구라면, ‘아니’ 몽실이가 아니라면 포기해버렸을 지도 모를 만큼 힘들고 모진 삶이라고. 나는 감히 그렇게 말하고 싶다. 가난을 이기지 못해 새로 시집간 어머니를 따라간 몽실이는 새아버지의 폭행으로 인해 한쪽 다리를 절어야 했으며, 집안일만을 돌보는 천덕꾸러기로 전략해야 했다. 비록 새어머니를 얻어 따뜻한 보살핌을 받았다 하지만, 어머니를 여위면서 배 다른 동생을 위해 희생하는 ‘언니’로서의 삶을 살아야 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아프신 아버지를 돌보아야 했고, 친 어머니가 낳은 이복동생들 또한 부지런히 보살펴야 했다. 그러나 그 어느 순간도 몽실이는 불평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신의 삶을 그대로 받아 들이냐. 그것 또한 아니라고 생각한다. 몽실이는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개척하려는 인물이다. 현실 순응적 삶을 살았다면, 몽실이는 주위에서 돌보아 준다고 했을 때 그저 그것을 감사히 여기며 또 다른 방안을 모색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몽실이는 자신의 삶보다도 동생이나 아버지, 어머니의 삶을 위해 노력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각자의 길이 있는 거여요.” 라고 말하지만, 몽실이는 자신이 찾아가면 새아버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친어머니를 염려하고, 가여운 아버지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며, 자신들의 동생들을 책임지고 돌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린 소녀다. 이러한 몽실이의 삶은 전형적인 한국 어머니의 모성애를 표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몽실이는 ‘언니’에 불과하지만 몽실이가 동생들에게 쏟는 애정은 어머니의 사랑을 고스란히 닮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을 지나온 이 시기의 사람들이라면, 『몽실 언니』를 보며 전쟁터에 남편을 보내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강인한 어머니로서 삶을 살아온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릴 지도 모르겠다. 또한 자신을 어머니처럼 업어 키운 ‘누이’를 떠올릴 지도 모른 일이다. 어지럽던 사회 분위기 속에 억울한 죽음을 당했던 가족을, 그리고 이웃을 떠올리며 눈물 지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아픔을 당대를 겪었던 사람들 뿐만이 아니라 ‘몽실 언니’를 손에 쥔 독자 모두가 함께 느낀다는 것이다. 또한 독자 모두는 아픔의 시대 상황 속의 어린 소녀 였던 몽실이의 삶속에서 좌절이 아닌 ‘희망’의 빛을 본다. 지금도 시장에서 쪼그려 앉아 장사를 하고, 꼽추와 결혼하여 한참을 올라가야 하는 높은 집에 살고 있는 몽실이의 삶 속에서 우리는 ‘희망’이 만들어 낸 ‘행복’을 맛보게 된다. 포기하는 삶이 아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희망을 만들어 내려 노력했기 때문에 몽실이는 동생들의 영원한 누나, 언니로서. 그리고 몽실이 그 존재 자체로서의 삶을 당당하고 행복하고 살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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