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 제8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39
이꽃님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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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 만남

우리는 때로 많은 이름표를 달며 세계를 살아간다. 엄마, 선생님 그리고 나. 나 역시 적어도 이 세 가지의 이름표를 책의 어느 페이지엔가 붙어 있는 색색의 포스트잇처럼, 삶의 어느 구절마다 달고 살아가고 있다. 


이십 대의 끝자락에서 나는 첫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아이가 선물해 준 세상에서 가장 예쁜 이름인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고, 아이가 잠든 밤이면 청소년 소설과 마주했다. 뿌옇고, 흐리지만 따뜻한 수유등 아래에서 우리 아이의 먼 훗날을 상상했다. 곤히 잠든 아이의 '바람의 사춘기'를 그려볼 적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때로는 책 속의 이야기와 우리 아이를 번갈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밤도 있었다. 


이꽃님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선생님'이라는 이름표 때문. '아니' 덕분이었다. 특히, 셋째를 배 속에 품고 있던 2022년의 여름에는 6학년 아이들과 이꽃님 작가의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를 함께 읽었다. 특히 여자 친구들은 다음 장을, 또 다음 장을 넘기며 찰방찰방 밤을 건너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렀다고 이야기해주곤 했다. 책은 이 친구의 손에서 저 친구의 손으로, 이 친구의 밤에서 저 친구의 밤으로 이어졌다. 


청소년 소설을 읽는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는 여름이었다. 나는 청소년 소설을 '성장 소설'이라 부르기를 더 좋아하는데, 지나간 나의 시간을 쓸어보기도 하고, 다가올 우리 아이의 미래를 그려보기도 하고, 학교에서 마주하는 우리 아이들의 현재를 비추어보기도 하면서 어딘가 우리를 채워주고, 어느새 조금은 자라게 해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2. 두 번째 만남

다시 찾아온 여름. 셋째가 태어났고, 육아 휴직을 하게 되었다. 2023년, 올여름. 나는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를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같은 책을 두 번 읽게 되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한 곳에서 제법 오래 살았기 때문에, 나의 허리춤에 닿던 작은 아이들이 어느새 내 키보다 훌쩍 자라 교복을 입는 모습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계절마다 마주했다. 어느새 중1 소녀가 된 14층 이웃사촌(그녀는 나의 정겨운 이웃사촌이다.)이 나에게 빌려 갔던 책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를 내밀며 이렇게 말하지 않는가.

"이모! 저 책 보고 울었어요~ 책 보고 울은 것은 진짜 오랜만, 아니 처음인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작년에도 이렇게 말했던 제자가 있었다. "선생님! 아빠가 퇴근하셨는데, 그냥. 이 책을 보다가 밤늦게 들어온 아빠 얼굴을 보니까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개인적인 사정으로 엄마와 떨어져 아빠와 살고 있는 6학년 여자 아이의 이야기였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다시 나를 이 책 앞에 마주하게 했다. 



#3.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살다 보면 영화 같고, 소설 같고, 남의 이야기 같았던 일들이 나에게 일어나기도 한다. 애당초 '나에게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 따위는 없기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에는 똑같은 이름을 가진 진 '은유' 두 사람이 시공간을 초월해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다가가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저 허무맹랑한 이야기라면, 14살 소녀가 책을 읽고 울지 않았을 것이고, 늦은 밤 돌아오는 아빠를 보고 초등학교 6학년 여자 아이가 눈물을 삼키지도 않았을 것이다. 엄마, 선생님 그리고 '나'라는 적어도 세 가지 이름표를 가진 사람이 뜨거운 여름, 두 번이나 책을 읽고, 뜨끈한 눈물이 볼을 타고 구르는 경험을 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는 상상으로 지어낸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가끔 '사랑'을 설명하기 참 어렵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느끼면 알 수 있지만, 너무나 다양한 색과 모양과 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형언하기가 힘든 것이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는 사랑의 속성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사춘기 아이들은 입을 꾹 다물고, 마음의 문도 닫아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 아이들의 입에서 말이 흘러나오게 하고, 마음이 밖으로 새어 나오게 하는 일은, 세계를 건너가는 일만큼이나 쉽지 않은 일이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님도 아이들에게 어쩔 수 없이 차마 말하지 못하고, 꺼내 놓지 못하는 마음들이 있다. 서로의 세계를 건너지 못해, 서로에게 갈 수 없는 부모-자식 사이에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가 작은 터널을 놓아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무관심이 아니라, 미움이 아니라, 묵묵한 사랑이 흐르고 있음을, 그 사랑은 시공간을 넘나들만큼의 커다란 힘이 있음을 이야기를 통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는 1982년 10살의 은유와 2016년 14살의 은유가 주고받은 편지를 통해 우리를 이야기로 끌어당긴다. 편지 봉투에 위에 붙이는 우표처럼, 챕터마다 나의 이름표를 붙여본다. 엄마, 선생님 그리고 나.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를 읽으며 '사랑'을 느꼈다. 그리고 '사랑'을 배웠다. 어떤 이름표를 달든, 사랑은 이렇게-라는 마음이, 내 삶을 끌어당기고 이끌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늘 책은 '함께' 읽는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 반 친구들의 손에서 손으로 이 책이 전해지고, 서로의 마음이 전해졌던 것처럼 누군가는 나의 글을 통해서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와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진심은 '툭'하고 다시 되돌려주는 책과 같이, 무심하지만 묵직하게 전해진다고 믿는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는 영화 같고, 소설 같고, 남의 이야기 같았던 일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넘쳐가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 속에는 영화 같고, 소설 같고, 남의 이야기 같은 '진짜 사랑'도 있다. 하지만 이 사랑은 애당초 '우리의 것'이고, '나의 것'이다. 


사랑이 내 곁에 있음을.

사랑이,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가고 있음을.

진한 감동과 함께 많은 이들이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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