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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평점 :
언젠가 아빠에게 당신의 어린 시절에 관해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내가 나라는 인간에 대해 고심하게 되었을 때, 사회라는 장소에 발 딛고 선 개별적 인간으로서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을 때.
그때쯤이었던 것 같다.
가족이라는 틀 바깥의 엄마와 아빠를 보고 싶었고 알고 싶었다. 한 사람으로서의 그들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나라는 사람의 뿌리.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릴 수 있는 사람들.
한때는 그 막강한 사랑이 두려워서 멀어지려고 애를 쓰기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굳이 발버둥 치지 않아도 서서히 멀어져가는 것 같아 두려운 기분이다.
나의 삶이 온전히 나의 몫으로 떠밀려 올수록, 당신들이 나의 어머니 아버지가 아니라 한 명의 사람으로 보였다.
어렴풋이 먼 곳에서 당신들의 굽은 등을 바라보긴 싫은데 언젠가 그럴 날이 오겠지.
내가 나의 생을 살아낼 동안 엄마와 아빠는 서로의 주름진 손을 맞대고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할 것이다.
시간이 두렵다.
"장대하고 아름답고 폭력적인 꿈." (최정례, 「시간의 상자에서 꺼내어 시간의 가장 귀한 보석을 감춰둘 곳은 어디인가?」 중)
그러나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든다. 인간은 시간을 이겨낼 수 없지만, 기록은 시간을 이겨낼 수도 있다는 생각.
자꾸만 우는 '아버지', 가끔 이상한 소리를 하는 '아버지', '나'의 글을 쥔 채로 눈물을 흘리며 잠들어 있는 '아버지'를 마주하게 되었을 때.
그 늙음을 막을 순 없지만, '아버지'의 생애를 깊이 들여다보고 쓸고 닦아 한 권의 책으로 엮는 일은 최선의 헌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