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이끄는 곳으로
백희성 지음 / 북로망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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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건축가 뤼미에르 클레제는 파리 시테섬에 자신이 찾던 조건의 저택이 매물로 나왔다는 연락을 받고 부동산으로 향한다. 그런데 좀 미심쩍다. 비싸기로 유명한 파리 중심지에 이런 헐값에 매물이 나오다니. 우여곡절 끝에 그는 저택의 소유주인 피터 왈처가 머무는 요양병원에 이른다. 그리고 받아 든 피터 왈처의 서한.


“왜 4월 15일인가? 그리고 왜 당신이어야 하는가?”


요양병원의 이름은 ‘4월 15일의 비밀’.

왜 하필 4월 15일일까?

이 요양병원은 파리의 고급 저택과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중세와 현대가 뒤섞인 오묘한 건물의 신비함에 압도당한 뤼미에르는 건축가로서의 순수한 호기심에 이끌려 이곳의 비밀을 알아내리라 마음먹는다.


*


최근에 번역한 책이 공간과 건축에 관한 이야기였다. 건축에 관한 이야기를 한국어로 옮기면서,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보이지 않는 집》이라는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모를 책이 자꾸만 떠올랐다.


책에 적힌 글자는 변함없음에도 삶의 어느 단계에서 펼쳐보느냐에 따라 감상이 다른 게 독서의 묘미. 워낙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그때와 지금의 내 감상이 어떻게 다를지도 궁금했고, ‘추리소설 같은 환상적인 에세이’라는 감상 외에 작품에 대해 남아있는 정보가 없어서 다시 새기고 싶기도 했다.


처음 《보이지 않는 집》이라는 제목으로 읽었던 게 2015년. 《빛이 이끄는 곳으로》라는 제목으로 다시 읽은 게 2024년. 9년 만이다. 손에 잡힐 듯 말 듯 아련했던 제목은 훨씬 직관적으로 바꿔 달렸는데, 개인적으론 새로운 제목에서 작품의 여러 장면이 떠올라 더 마음에 든다.


저자는 건축가다. 책 속 소개에 따르면 ‘기억’이라는 주제로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면서 건축 설계 일을 하고 있다고. 빛을 따라가는 책의 스토리도 영화를 보듯 환상적인데, 8년 동안 직접 모은 ‘집’에 얽힌 많은 이의 사연을 하나의 이야기로 녹여낸 소설이라는 점을 알고 어느 한 분야에 열정을 쏟는 사람의 모습은 정말이지 경이롭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 뤼미에르 클레제도, 프랑스와 왈처와 피터 왈처도, 이 이야기를 쓴 백희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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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스트 김구
정안기 지음 / 미래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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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를 이렇게 모독해도 되는겁니까? 여기 한국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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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14호 : 특별호 쉼 인문 잡지 한편 14
민음사 편집부 엮음 / 민음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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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1 

"인간은 이 세상을 향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 것일까 인간은 삶에 있어서 어떤 태도를 취하며 존재해야 하는 것일까 난 그 본질이... 그 의도가 궁금하다. 나를 이 세상의 인간으로서 있게 하는 그 의도가."


p.86

계산대에 서 있는데 조금 변형된 스몰토크 질문이 날아왔다. "Where are you from(어디에서 왔어)?" (중략)

"내가 가게에서 나와 버리면 가게에 너 혼자 여자라서 기다렸어. 여성은 여성이 지켜 줘야지. 혼자 온 젊은 여자한테 왜 저렇게 오래 질문을 던졌는지 정말 모르겠다. 늘 그렇게 친절하고 행복하게, 그렇지만 조심히 다니렴."

난생처음 본 아주머니의 손을 꼭 잡고, 너무 고맙다고 나도 반드시 다른 여성에게 꼭 같이하겠노라고 했다. 아주머니가 말하기 전까지 나는 그 가게에 그와 나만 여자인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서울과 현실에서 무뎌지는 생의 감각은 일과 성공, 취향과 유행에 대한 것만은 아니었다. 정말로 우리가 살면서 필요한 연대와 친절, 삶의 희로애락 같은 것들이 팔딱팔딱 뛰는 곳에 나를 덩그러니 놓아두면, 내가 잊고 있는 정말로 중요한 삶의 가치들이 다시금 생생해진다. 나는 왜 글을 쓰고, 왜 콘텐츠 기획을 하고, 왜 동료들과 밤을 새우며 일을 하고, 왜 돈을 벌고, 왜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지.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를 찾아 훌쩍 낯선 땅에 발을 들였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주로 이런 거다.


대형 서점에 가서 직원분께 특정 섹션의 위치를 물었는데,

내가 한국인임을 깨달은 직원분이 "저 작년에 서울 놀러 갔었어요!" 하고 기꺼이 호의를 표해줄 때(굳이 표해'준'다는 표현을 쓴 건, 낯선 곳에서의  호의와 관심이 그만큼 반갑고 따스해서). 반가움을 품은 서로간의 몇 마디 대화 끝에 "좋은 추억 많이 만들고 가시길 바라요"라고 환하게 손을 흔들어주던 모습.


맛이 좋기로 소문나 늘 시끌벅적한 음식점에 갔는데,

차를 가져다 주신 직원분이 나와 짝꿍의 한국어 대화를 듣고는 "어머 한국인이세요? 저도 어머니가 한국인이에요!"라며 우리의 대화에 자연스레 스며들었던 기억.


환한 표정과 목소리와 시간, 이른바 자신의 소중한 에너지를 낯선 사람에게 기꺼이 내어주었던 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다시금 따뜻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아했다.

분주한 일상의 무수히 많은 장면 속 찰나의 순간에,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타인에게 따스한 관심을 표할 수 있었을까.


읽는 동안 책에 실린 표현 그대로 '연대와 친절, 삶의 희로애락 같은 것들이 팔딱팔딱' 뛰었던 경험들이 다시금 떠올랐다. '잊고 있었던 정말로 중요한 삶의 가치들'을 다시금 곱씹어 본다.

바쁜 현실에 지쳐 금세 무뎌지고 희미해지겠지만.


"인간은 이 세상을 향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 것일까 인간은 삶에 있어서 어떤 태도를 취하며 존재해야 하는 것일까 난 그 본질이... 그 의도가 궁금하다. 나를 이 세상의 인간으로서 있게 하는 그 의도가."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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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체조 닥터 이라부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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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했던가.

어떠한 고난과 역경을 만나도 굴하지 않는 굳은 마음만 있으면 헤쳐나갈 수 있다고, 우리는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여기, 꺾이기는커녕 에라이 될 대로 되라며 능글맞게 드러누워 데굴데굴 구르기까지 하는 이가 있다. 바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이라부다.


즐겨 찾는 인터넷서점 메인에 닥터 이라부가 다시금 이름을 올렸다.

앗, 어딘가 낯익은 이름인데….

그렇다. 오쿠다 히데오 《공중그네》의 그 이라부다.


《공중그네》 열풍이 한바탕 몰아친 적 있다.

나오키상이라는 제법 있어 보이는 상을 받았다는데, 괴짜 의사의 듣도 보도 못한 기이한 진료가 우스꽝스러워서 책장이 폴폴 넘어갔다. 공부한다고 도서관에 갔다가 오쿠다 히데오 책들을 곁에 두고 열심히 읽었었지. 고등학생 때였다.


닥터 이라부가 코로나 시대를 거쳐서 다시 돌아왔다. 

무려 17년 만이라는데(내 나이... 무슨 일이야...) 인터넷서점에서 광고를 접한 뒤로 책 표지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아, 이건 무조건 읽어야 해!’


역시나 이번에도 책장이 폴폴 넘어갔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시청률에 집착하는 난폭한 PD, 마음속 화를 억누르다 호흡곤란으로 고생하는 회사원, 회사를 그만두고 주식 거래로 벼락부자가 되었지만 불안감에 모니터 앞을 떠나지 못하는 데이트레이더, 책임감과 성실함이 독이 되어 광장공포증을 앓는 피아니스트, 사회불안장애로 사람을 힘들어하는 대학생.


무겁든 가볍든 누구든 하나둘쯤은 품고 있을 마음속 그림자.

당사자에겐 꽤 심각한 마음의 병을 별것 아닌 헤프닝으로 만들어 버리는 게 이 괴짜 의사의 능력이다. 이라부의 말도 안 되는 진료가 편안하게 느껴지는 이유 역시 같은 맥락일 거다.


그렇게 힘들 거면 애써 움켜쥐고 있지 않아도 된다고, 내려놓으면 별것 아니라고. 

이라부는 예나 지금이나 진료실 소파에 기댄 채 배를 내밀고 웃고 있더랬다.



#라디오체조 #오쿠다히데오 #이영미옮김 #잘읽었습니다 #은행나무 #스쿠의책장 #북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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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은 우리가 사물에 대해 완전한 지식을 가질 수 없음을 증명하지 않는다. 반대가 진실이다. 양자역학은 우리가 진정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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