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지음 / 김영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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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합니다.

읽는 동안 목숨을 끊은 이들의 후일담을, 나를 바라보는 수단으로 삼고 말았습니다.

나의 삶에 안도하는 나를 보았습니다.


날 때부터 남들보다 생을 빨리 마감하고 싶다고 원했을 리 없는데, 어떤 사정에서건 등 떠밀리듯 그런 상황으로 내몰렸을 이들.

마음만큼은 진작에 이 세상을 등졌겠으나, 마지막의 마지막에 그런 마음마저 몸을 완전히 떠난 뒤 오래도록 한 곳에 남겨졌던 육신.

저자의 직업은 (주로) 그런 육신이 얼마간 방치되었던 곳을 흔적도 찾아볼 수 없게 말끔히 청소하는 특수청소부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 숨을 거둔 뒤 죽은 이의 유품을 정리하거나 죽은 자리를 정리하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어떻게 죽고 어떤 식으로 정리될지, 나의 죽음 이후 누군가가 짊어져야 할 수고로움에 대헤 생각해 본 적은 더더욱 없다.

여껏 살면서 죽음의 처리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니, 나는 죽음에 얼마나 무지하단 말인가.


흔쾌히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생생해서 읽는 내내 죽음이 바로 곁에 어른거리는 듯했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하려면 어떻게 죽고 싶은지 먼저 생각해 보라는 말.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이고, 우리는 모두 죽음을 향해 살고 있다는 말도 다시금 곱씹어 본다.


십 분이 넘도록 아무런 기척이 없자, 약간 걱정스러워서 슬그머니 그 방 앞에 가보았습니다. 당신의 동생은 방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서서 문 쪽으로 등을 보인 채 양손으로 입을 막고 거칠게 어깨를 들먹이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그토록 오랫동안 서서 우는 남자의 뒷모습을 여태껏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당신의 동생을 그대로 내버려 둔 채 잠자코 걸음을 뒤로 물려야 했지요. 그러고서, 문을 열어놓고 사용했다가는 이웃에게 곧잘 항의를 받을 만큼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전기 분무기의 스위치를 켜야 했습니다. 왜냐면 저는 당신의 동생처럼 아무 소리를 내지 않고 울지는 못하니까요.

(중략)

그들은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아직 당신이 살아 있을 때, 병에 걸려 고통 받으면서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만은 절대 잊지 않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남긴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지고 지워질 테지만, 당신이 남긴 사랑의 유산만은 누구도 독점하지 못하고, 또 다른 당신에게, 또 다른 당신의 당신에게 끝없이 전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당신을 사랑합니다. 부디 이 사실 하나만은 당신에게 전달되길 바라며, 모자라고 부끄러운 글월을 부칩니다. 


《죽은 자의 집 청소》 p.126


그곳이 어디든, 우리가 누구든, 그저 자주 만나면 좋겠다. 만나서 난치병 앓는 외로운 시절을 함께 견뎌내면 좋겠다. 햇빛이 닿으면 쌓인 눈이 녹아내리듯 서로 손이 닿으면 외로움은 반드시 사라진다고 믿고 싶다. 그 만남의 자리는 눈부시도록 환하고 따뜻해서 그 어떤 귀신도, 흉가도 더 이상 발을 들이지 못하리라. 


《죽은 자의 집 청소》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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