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국가 북한 - 카리스마 권력은 어떻게 세습되는가
권헌익.정병호 지음 / 창비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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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라는 국가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가 아니며 그랬던 적도 없다. 북한에는 카리스마 권력의 독특한 마력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를 잘 아는 대단히 능란한 정치 지도자가 있었다”-책 서문 중.


   우리가 사는 시대에 가장 즉각적인 도덕판단을 불러일으키면서 가장 이해 불가의 대상이 되는 존재들 중 하나는 아마 북한이 아닐까. 북한이 한때 자주의 상징이었던 시기를 지나 2013년 현재. 정말 소수의 몇을 제외하고는 한국에서 북한이라는 존재는 혐오이자 비웃음의 대상이다. 사실 보편적으로 생각해봐도 3대째 국가를 세습하면서 국민을 떼죽음에 이르게 하는 체제를 곱게 봐주고 이해할 이유는 없어보인다. 


   그러나 세상에 무조건 비합리적인 일은 없다. 아무리 신비하거나 우습게 보인다 할 지라도 대상은 언젠가는 해명될 수 있다 생각하는 것이 세상을 보다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영영 이해 불가능한 존재는 없다. 사회적.정치적 판단을 내릴때 도덕적 가치판단이 개입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이 어떤 합리성에서 도출되느냐 마느냐는 큰 차이를 부를 것이다.


  사실 북한과 합리성은 거리가 먼 단어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장국가 북한>은 국민국가의 시대에 가장 미스테리한 존재인 북한에 대하여 최대한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분석한다. 도덕적 판단은 정말 이 책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극장국가 북한>은 국가의 권위를 만들어 내는 것은 폭력의 독점 뿐 아니라 대중연설과 순방 같은 공연적 퍼포먼스와 스펙터클을 기반으로 한다는 기어츠의 극장국가론과, 카리스마 권력의 유지와 변화에 대한 베버의 분석을 기반으로 한다. 이를 통해 현재의 북한이 김일성 사후의 시점에서 어떤식으로 각종 공연과 의례, 사상교육을 총동원하여 현재의 선군정치 시스템을 정착시켰는지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있게 읽었던 구절은 다음과 같다. 저자들은 언뜻 보면 봉건적으로 보이는 충효일심의 북한의 사상과 체제야 말로 가장 근대적인 행위라고 설명한다. 봉건시대에 별개의 윤리였던 충과 효를 독재자와 국가의 목표를 위해 강제로 통합시켰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러한 통합이 근대에 나타난 전체주의 국가들의 주요한 특징이었다는 점에서 가장 근대적인 정치행위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최대한 도덕적 판단을 자제하고 거부감이 들 정도로 분석에 집중한다. 북한의 김씨왕조 위주의 역사 왜곡과 선군정치 제도에 대해서도 그것의 허구성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철저히 북한 체제의 내부에서 그것이 어떤 계보와 목표를 가지고 어떤 효과를 북한 내부에 불러왔는지를 더 중요시하는 식이다. 읽다보면 '이거 너무 체제 옹호적인거 아냐?..'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이들은 시종일관 북한의 개인숭배 자체가 특이한 것이 아니라, 그것의 지속성이 독특한 것이며 북한은 결코 이해 불가의 대상이 아니라 학문적으로 충분히 분석 가능한 체제임을 증명해내고자 한다. 


 하지만 이런 객관적인 탐구의 여정에도 불구하고 책은 북한이 실패했다고 결론 내린다. 김일성 죽음 이후에 선군정치와 김씨일가 숭배 강화로 대표되는 일련의 조치들은 결국 '국민의 역사를 가장해 사회에 강요한 국가의 역사에 불과'하고 제 식구 하나 제대로 먹일 수 없는 처참한 상황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론은 오히려 북한에 대해 저자가 도덕적 판단을 최대한 지양하고 수없는 분석을 진행한 끝에 자연스레 도출한 결론이기에 더 설득력있으며 더 도덕적이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고도 민감한 존재를 다루고 있기에 그 어느 책보다도 합리와 분석의 힘을 다시금 실감하게 한다. 더불어 읽으면서 나 자신의 북한에 대한 도덕적 혐오가 어느정도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툴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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