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된 장소에서 언더그라운드 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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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더그라운드]에서 옴진리교 지하철 테러사건의 피해자를 인터뷰한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 다음 단계로 옴진리교 출신의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그렇게 나온 책이 바로 언더그라운드 2 - 약속된 장소에서 이다. 물론 인터뷰 대상이 된 신도들은 사린가스 사건의 직접적 가해자는 아니다. 이들은 예전에 옴진리교에 몸담았거나 지금도 믿음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다.


 인터뷰에 임하는 작가의 태도는 1편과 동일하다. 먼저 그 인물의 구체성을 최대한 끌어낸다. 그 다음에는 대상을 분석하고 제시하기보다는 들어주는 것에 집중한다. 단 옴진리교 소속의 사람들인 만큼 1편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작가가 개입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종교적 광신자가 아니라 착하지만 안쓰럽기도 하고, 그러나 부담스러운 인간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평화를 찾기 위해 안으로 안으로 파고 들어갔던 정서적으로 예민한 이들이며, 소위 주류사회에서 정서적 해법 내지는 행복이라고 하는 것들로는 만족할 수 없는 이들이다. 그들이 갈구하는 어떤 평온한 상태를 누가 제시해줄 수 있느냐에 따라 그들의 삶이 급격히 바뀌게 된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하루키는 여기에 대해 주류사회가 그런 공간을 제시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 같지만, 이것은 개인적인 단위에서 좀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그저 그들만의 공간이 제시되면 끝인 것일까? 아무리 좋게 표현하더라도 그것은 일종의 격리상태이다. 물론 그 공간을 컬트종교가 주는 것 보다는 국가가 제시하는 게 낫다. 하지만 그 방법이 결코 윤리적 해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나 자신도 종교적인 것에 깊게 빠져드는 시기가 있었고 초자연적인 사항들에 경도된 이들을 많이 보기도 했지만 사실 그런 '영적인 것'에 끌리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고 소통하기는 부담스럽다. 시대를 막론하고 어느 시대에나 그런 인물들은 존재했으나 이제 그런 인물들을 의무적으로 대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은 더이상 환영받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부담스러운 존재가 된 것이다. 대화니 소통이니 교류니 하는 작업들이 우리 모두를 균형잡힌 사람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고 하지만, 그들의 소통은 주변사람들에게 일반인 이상의 큰 부담을 주기도 한다. 나 자신이 사는 것도 바쁘고 힘든데 언제 그런 것 까지 신경쓴단 말인가? 그럴때 우리가 부담스러운 상대를 대하는 윤리는 과연 어떤 것이 되어야 할까.


 이것은 비단 옴진리교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종류의 사람은 지금 한국에도 너무 많다. 어느 하나에서 진리를 확신하고 그것 위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이들(하루키의 표현을 빌자면 '상자 하나의 분량밖에 세계를 바라보지 못하는 이들')은 어떤 상자냐의 차이가 있을 뿐 반드시 우리 주변에 한명씩은 있어왔다. 그리고 소위 '정상적'인 사람들은 더이상 그런 이들과 소통할 이유도,의무도 없다. 그 과정이 누적되면 과연 그들 안에는 무엇이 남게 되는가. 사실 우리에게는 부담스러운 타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윤리적 지침이 없다. 예전에는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확실히 지금은 그런 것은 생각조차 안하는 상태다. 물론 친구의 몇마디로 사람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그러한 사소한 것들이 모여 사람의 삶은 장기간에 걸쳐 바뀌는 것을 믿는다면, 이 책에 수록된 옴진리교 신도들의 꿈에 '쩔은 듯한' 종교적 체험 이야기를 들으며 타인을 대하는 윤리를 좀 더 고민하게 될 수밖에 없다.


아래는 인용

"..그는 이상향에 몸을 던지고, 현세의 때에 물들지 않고 엄격한 수행을 계속하면서, 납득이 가는 의료를 철저하게 실천하여 한 사람이라도 많은 환자를 행복하게 만드는 꿈을 꿨을 것이다...그런 순진무구한 언설이 현실과 얼마나 심하게 괴리되어 있는지는 한발만 물러나서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사실 우리가 하야시 의사(옴진리교 사린가스 테러 주모자 중 1인)에게 해줘야 할 말은 원래는 굉장히 간단할 것이다. 그것은 '현실이란 본래 혼란과 모순을 내포하고 성립되는 것이며, 혼란이나 모순을 배제해버리면 그것은 이미 현실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일견 정합적으로 들리는 말과 논리에 따라 교묘하게 현실의 일부를 배제했다고 믿어도, 그 배제된 현실은 반드시 어딘가에 잠복해있다가 당신에게 복수할 것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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