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과 제3세계주의 사이에서 - 족청계의 형성과 몰락을 통해 본 해방 8년사 역비한국학연구총서 34
후지이 다케시 지음 / 역사비평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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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겨레에 쓰는 칼럼으로 매번 읽는 이의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후지이 타케시씨가 쓴 <파시즘과 제 3세계주의 사이에서-족청계의 형성과 몰락을 통해 본 해방 8년사>라는 책을 읽고 있다이 책은 우리가 흔히 이승만 정권에 대해 '친미 친 자본주의적 정권'이라고 인식하는 것과 다르게이승만 정권의 초반부가 보여줬던 정책과 발언들이 '반제/반자본주의'성격을 띄고 있었기에 '반공적이면서 미국적이지는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그리고 이 근저에 이승만과 함께 권력블록을 형성했던 이범석과 안호상이 주축이 된 '조선민족청년단-족청계'가 있었다는 점에 주목한다그리고 족청계가 띄었던 정치적 색채에 식민지 경험으로부터 비롯한 민족주의 뿐 아니라 당대의 독일 파시즘과 장제스의 군국주의까지 큰 영향을 끼쳤기에 족청계가 지향하는 바가 민족/반제/반자본주의적 경향을 보였다는 점을 분석해나간다.


2. 책을 중반부 정도까지 읽었을 뿐인데 독립운동과 한국의 건국에 대해 참 많은 생각이 든다문득 떠오르는 글은 이전에 계원예대 서동진 교수가 썼던 다음과 같은 글이다 (http://www.homopop.org/log/index.php?ct1=7&ct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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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불행한 일이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한국 사회의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철석같이 공유하는 이데올로기는 탈이데올로기적 회의이다최인훈의 광장에서 조정래의 태백산맥까지 한국의 모든 이데올로기 비판 문학(나는 그것을 진보적인 문학이라거나 민중문학이라거나 심지어 지식인문학이라거나 하는 평가에 전연 동의할 구실을 찾지 못한다외려 그에 걸맞는 이름을 찾자면 이데올로기적인 문학이지 않을까)은 언제나 이데올로기적 선택을 강요받은 어느 개인의 무력한 자유를 제시한다그것은 남인가 북인가라는 두 가지의 선택지 밖에 주어지지 않았던 개인에게 제3의 길이라는 진정한 환상이데올로기 외부의 공간을 향한 꿈이기도 하다그리고 이런 탈이데올로기적인 몸짓의 이데올로기는 비단 문학의 공간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그것은 이른바 노무현 정권 이후 본격화된 과거사 청산과 민주화운동 기념사업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다나는 이러한 사태가어느 진보적 사회학자의 말처럼기본적인 부르주아 민주주의 제도를 갖추고 형식적인 민주주의의 틀을 완성하는 정상화의 과정이었다고 보는데전연 수긍하기 어렵다그것은 거칠게 말해 민주주의와 압제라는 틀로 그간의 한국사회운동을 소급적으로 그것도 아주 빈약하게 재단하기 때문이다그의 논리에 따르자면 노동자들이 정치조직을 결성하고 새로운 경제체제를 꿈꾸고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서적을 공공연하게 읽고자 했던 염원은 모두 그저 민주화일 뿐이다그것이 자신의 통치 기반을 정당화하려는 이른바 민주화 세력의 주장이라면 모를까 진보적인 사회학자가 할 소리는 아닐 것이다.

간단히 말해보자통혁당은인혁당은남민전은 그저 민주화운동 세력이었을까몇 해 전 쓸쓸히 자신의 차디찬 골방에서 목숨을 잃은 어느 마지막 여자 빨치산 할머니는 그냥 민주화 운동 세력의 일원이었을까민주화라는 것은 그 투쟁과 운동에 가담하고 있던 자들의 신념과 희망을 백지상태로 돌려놓은 채그들을 순전히 국가폭력의 희생자로 환원해도 좋은 것일까오랜 동안 영어의 몸에 있다 출소한 어느 사회주의 투사를 권위주의적 정치의 피해자로 박제화 시켜 놓고붓글씨나 쓰고 동양사상이나 풀이하는 좋은 어른으로 재갈을 물려놓고그것을 모시는 것이라고 시치미를 떼도 좋은 것일까제 정신이라면 아마 그렇게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서동진 <혁명가인가 피해자인가 - 우리 시대정치적 이데올로기의 한 가지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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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화 운동'이라는 라벨로 다채로웠던 사회혁명운동들을 묶는 것은 일종의 모독이다다소 맥락이 다르지만 이 이야기는 독립운동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독립운동은 건국운동이기도 했다때문에 독립운동가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단순히 일제 식민지를 벗어나는 것을 넘어서식민지 이후 어떤 이념의 국가를 건설하느냐도 포함되는 일이었다여기에는 이념이 중요하고이념은 차이를 만들어낸다김일성도 김구도이범석도 여운형도 박헌영도 독립운동이라는 카테고리에서는 동일했다그러나 우리가 조금만 공부를 해보면 알 수 있듯 그 방법론은 해방 이후까지를 생각해본다면 엄청난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그리고 그 차이는 결코 쓸데없는 갈등이 아니었다김구가 세우려는 나라와 여운형이 세우려는 나라박헌영이 세우려는 나라는 결코 같지 않았다이처럼 그 모든 다양한 시도들을 독립운동만으로 묶는 것은 수많은 가능성을 압살하는 일이 아닐까.


3.그런데 좀 더 삐뚤어진 생각을 가지고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개혁진영의 지지자들이 흔히 말하듯 '친일파'가 정권을 잡지 않고 '독립운동 세력'이 정권을 잡았다면 어땠을까친일파 청산 실패가 한국 현대사 비극이라 믿는 이들은 마치 한국의 모든 문제가 친일파로부터 비롯된 듯이 말한다그러나 사실 이미 국민국가 건설이 진행되는 시점에서 더이상 일제에 대한 저항 여부가 더 나은 국가를 세울수 있느냐에 대한 유일한 판단기준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문제는 '어떤 세력'인가이다. 이는 단순히 '독립운동가출신의 이승만이 어떤 말로를 겪었는지만 생각해봐도 자명해지는 일이다이런 생각은 이 책에 펼쳐진 족청계 주요 인물들의 사상적 계보를 보고 있자면 더욱 힘을 얻는다족청계의 단장 이범석은 지금 친일파 출신들을 공격하는 논리로 보자면 더할나위없는 순혈 독립운동가 출신이었다그러나 그는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감명깊게 읽고독일의 일사불란함에 감명받았던반공 군대를 세우고자 했던 사람이기도 했다그리고 결국 이승만에게 충성을 바쳐 그의 부패에 일조했던 인물이기도 했다.


 그와 족청계가 권력을 잃지 않고 이승만 정권과 명운을 같이 했다면지금의 한국과는 좀 다른 나라가 됐었을까혹은 이범석의 족청계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던 장준하가 권력을 잡았다면아니한때는 백색테러의 선봉장이었던 김구가 권력을 잡았다면그 세계가 과연 우리가 그토록 싫어하는 박정희/전두환의 세계와 얼마나 다른 것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독립운동가 출신의 김일성의 세계가 박정희의 세계만큼이나 끔찍한 것이었듯이 말이다.


4.물론 이 이야기는 박정희와 친일파를 싫어하고 김구를 찬양하는 이들에게는 끔찍하고 터무니없는 비약일 것이다그러나 나는 박정희가 됐건 누가 됐건 어차피 똑같았을 거라던가친일파 청산 실패는 신경 쓸 문제가 아니라는 냉소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나 자신도 개인적으로 여운형이 만든 독립국가라면 어땠을까 하는 쓸데없는 가정을 해보곤 한다내가 하고 싶은 말은 독립운동이라는 한 라벨만으로 모든것을 좋게 평가하기에는 실제 양상은 너무나 달랐고복잡했다는 것이다우리가 역사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결국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고 좀 더 세계시민에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 중 하나라면, 이런 복잡함들을 고려해야만 우리가 좀 더 좋은 선택을 할수 있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은 꼭 독립운동에 관한 것 만은 아니다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다민주화 운동 세력을 탄압하는 독재정권의 후예들정의로운 야권 세력과 대립하는 독재자의 딸친일파 출신과 독립운동가 출신...이러한 대립 구도로 정치와 사회를 판단하고정의로운 자신들에게 표를 달라는 말들은 너무나 잦다나는 실제로 그 대립항이 유효했던 시기에 그들이 행했던 일들을 존경하고 존중하며 감사하게 생각한다그러나 지금 이 세계에서 그런 간단 명료한 카테고리의 효능이란 '내가 곧 정의다'라는 쾌감 외에는 없는 것 같다오히려 실제 세계를 나아지게 하는 데는 방해가 될 뿐이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역사와 세계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다는 점을 실감하게 하는 책이다.


5.위에 말한 부분과 별개로 아래 인용한 부분들은 제헌의회 당시 노동법에 관한 논쟁에 관한 이야기인데 뭔가 건국 상황에서의 역동성이 느껴져 매우 재밌어 옮겨봤다무엇보다지금 오고가는 논쟁보다도 더 진일보한 논쟁이 이미 해방공간에서 이뤄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지닌 역동적인 세계였는지그리고 한국전쟁이 얼마나 많은 논쟁의 싹을 잘라냈는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국회에서 문시환은 적극적인 활동을 보였다특히 그가 중요시한 것은 노동 문제였다노동에 관한 조항인 헌법 제 17조를 심의하는 과정에서 문시환은 수정안을 제출했다그 내용은 제 1항을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와 의무가 있으며근로자는 노자협조와 생산증가를 위하여 법률의 정하는 범위 내에서 기업의 운영에 참가할 권리가 있다" 3항을 "기업주는 기업 이익의 일부를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임금 이외의 적당한 명목으로 근로자에게 균점 시켜야 한다"로 수정하자는 것이었다즉 노자협조와 생산 증가가 그 목적이긴 했지만 노동자의 기업 경영 참가와 이익 균점을 주장한 것이다.

..문시환은 노동자의 기업 경영 참가의 필요성을 경제적 민주주의로 설명하기도 했지만주목할 것은 이 조항이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본받은 것이 아니라면서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노동자의 경영 참가를 헌법으로 보장한 결과 산업 부흥과 공업력 향상을 성공시킬 수 있다고 말한 점이다..즉 문시환은 파시즘 체제를 모델로 이러한 조항을 제안한 것이다이에 대해 윤재욱은 절대적인 지지를 밝혔으며윤석구도 다시 이익균점의 필요성을 호소했다이재형 역시 국가는 국민의 생존권과 노동권을 보장해야 한다며그에 필요한 생산 증강을 위해서는 노동자의 경영 참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노일환은 노동자의 경영 참가가 오히려 노자 협조라는 명목하에 생산 증가를 위해 노동력 상품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반대했다...먼저 발언한 이윤영은 공산주의 헌법을 만드는 것도 우리 자유이지만 국제관계를 떠나서 살 수는 없기 때문에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며 냉전적인 관점에서 압력을 넣었다이유선은 8할 이상의 근로 대중의 생활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완전한 국가를 형성하지 못한다며 문시환 안을 지지했다."ㄷ


"족청 출신 의원들 가운데 약간 다른 방향성을 보인 사람이 강욱중이다강욱중은 헌법안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국회의 권한을 규정한 제 42조에 국회가 정부 불신임안을 결의할 수 있는 권한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또한 대법원장의 임명권이 대통령에게 있음을 규정한 제 77조에 대해 전체주의를 막기 위한 삼권분립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대법원장 및 대법관은 법률에 의해 선정된 다음에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으로 수정할 것을 주장했다."

"김수선은 헌법 논의 과정에서 민족자결권민족 통일민족의 균등 생활강력한 국방군을 헌법을 통해 획득해야 한다며 그것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화폐의 특권계급을 제재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강력한 행정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김수선을 비롯한 청구회 소속 의원들은 대체로 민족주의적이었으며한민당으로 대표되는 지주/자본가 집단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때로는 소장파와 공동 보조를 취하기도 했지만그들 인식의 바탕에는 강한 국가의 필요성이 있었다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입장은 여순 사건을 거쳐 국가보안법이 제정되는 과정에서 국가보안법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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