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고 말할 때까지 - 기쁘게 살아낸 나의 일 년
수전 스펜서-웬델 & 브렛 위터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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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이라고 말할 때까지'는 세 아이의 엄마, 한 남자의 아내이자 법원 담당 기자로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던 수전 스펜서-웬델이라는 한 여성이 마흔넷에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지만, 절망하지 않고 소중한 사람들과 남은 생을 기쁘게 살아가기 위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를 담아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문장이 책을 읽는 내내 떠올랐고, 수전의 여정을 눈으로, 마음으로 따라가면서 그녀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렇다. 나에게 이 책은 수전의 이야기를 통해 수많은 '진짜 나'를 발견하는 여정이었다. 어떤 것에 감동하는지, 어떤 삶의 자세를 가지고 싶어하는지, 어떤 나이기를 원하는지, 진짜로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은 무엇인지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치료법도 없고, 치료약도 없는 ALS. 대개 처음 증상이 나타난 뒤 3년에서 5년 안에 죽는다, 고 책에 쓰여 있다. 루게릭병에 걸린 것을 인정할 수 없었던 수전은 처음 찾아간 신경과 의사가 히라야마병을 의심하자, "나는 그 병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구절이 너무 가슴 아파서 책을 읽기 시작한지 몇 분 지나지도 않았는데, 나는 울어버렸다. 그러나 페이지를 몇 장 더 넘기자 나의 울음을 단번에 멈추게 할 멋진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은 질병과 절망에 대한 책이 아니다. 내 멋진 마지막 한 해의 기록이다." 이 구절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눈으로 읽어내렸고 가슴을 약간 두근거리면서 다음 책장을 펄쳤다. 아이폰 터치스크린을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한 글자씩 눌러 이 책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알고서 읽었기 때문인지, 읽기에 어려운 책은 아니었으나 꽤나 느린 속도로 정성스럽게 책을 읽었다.

 

수전이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서 자살을 염두에 두기도 했을 때, 자신의 죽는 방식이  가족이 즐겁게 살아가는 능력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자신은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금세 알아채는 수전이 멋있었다. 끊임없이 나라면 수전처럼 행동하고 생각할 수 있겠냐고 나 자신에게 되물으면서 이 책을 읽어내려갔는데, 나라면? 과연 나라면? 저런 상황을 맞딱뜨렸을 때 수전처럼 의연한 태도를 견지할 수 있었을까? 수전처럼 꿋꿋하게 웃을 수 있었을까? 수전처럼, 자신의 병이 유전병이 아니어서 자식들에게 유전되지 않을 거라는 사실만으로 안도하고 평화로워질 수 있을까? 입양아였던 수전이 40년 만에 생모와 만났을 때처럼, 만약 내가 수전이었다면 생모 엘런을 원망하지 않고 담백하게 마주할 수 있을까? 내가 수전이라면 이 책을 끝까지 완성할 수 있었을까? 내가 수전이라면.. 어땠을까?

 

"삶은, 가장 기대하지 않은 순간에, 그렇게 완벽하다." 이 문장은 정말이지 이 책의 모든 주제를 하나로 집약시킨 명문 같다. 수전은 ALS라는 무서운 병에 걸려 무엇도 기대할 수 없는 순간의 벽에 부딪쳤지만, 완벽한 삶을 살아냈고 자신의 존엄과 소중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지켜냈다.

 

책의 중간즈음 '누구든 자기가 사랑하는 것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기록해두어야 한다.'라는 수전의 아이폰에서 찾은 2012년 3월의 글이 나온다. 친구가 써준 손편지처럼 소소하지만 수전을 기쁘게 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그때그때 기록한 건데, 그 부분을 읽으니 내가 사랑하는 것에 대한 기록욕구가 샘솟아서 수전을 따라 나도 몇 가지 생각나는대로 기록해두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 - 가족들 손톱손질해주기(내가 손톱손질을 정성껏 해주면 다들 사랑받는 느낌이 든다고 말해준다), 좋아하는 노래 흥얼거릴 때, 가을밤 청량한 밤공기, 왁자지껄 웃으며 즐기는 야구연습, 진하고 달콤한 치즈케이크, 홍대의 한 카페에서 새로 맛본 바밤바 쉐이크, 아직은 뚱땅거리는 게 전부인 우쿨렐레 연주 등등.

 

책에 가끔씩 인용문이 등장하는데 특히 인상적이었던 노자의 말, "가진 것에 만족하라. 있는 그대로에 기뻐하라. 부족한 것이 없음을 깨달을 때 온 세상이 당신의 것이다." 행복에 대한 간결한 핵심이 바로 가진 것 그대로에 만족하고 기뻐하는 마음이겠구나. 아니라고 생각되면 하지 말고, 스스로 옳다고 느끼는 것을 하라는 말 역시 나에게 명징한 깨달음을 주었다.

 

세런디피티(Serendipity). 행운. 뜻밖의 기쁨을 발견하는 소질. 나는 '안녕이라고 말할 때까지'에서 얻은 단 하나의 교훈이랄까, 명언을 이야기하라면 단연 '세런디피티'를 꼽을 것이다. 이와 함께 이 책에서 보았던 많고 많은 말들 중에서도 나의 가슴을 울렸던 문장을 하나 이야기해달라고 누군가 나에게 청한다면, 이 말을 꼭 들려주고 싶다.

 

"나는 아직 떠나지 않았다. 내게는 오늘이 있다. 내게는 더 줄 것이 남았다. 끝이 다가오지만 나는 절망하지 않는다."

 

수전 스펜서-웬델의 '안녕이라고 말할 때까지'는 내가 근래 들어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여운이 오래 남는 책이다. 내가 느낀 감동과 여운을 다른 이들도 많이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리뷰를 쓰기 시작했다.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 - 기쁘게 살아낸 수전의 일 년 동안의 기록 - 덕분에 나와 당신의 삶에도 기적 같은 단비가 내리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이 길은 결코 단순하지 않아. 수수께끼처럼 꼬여 있지. 난 인생도 보고 사랑도 봤어. 우리의 미친 의심들이 내지르는 목소리들이 내게 크게 외치지.짐을 꾸려 여기를 떠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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