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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구는 어쩌다 수학을 좋아하게 되었나 - 이상하고 규칙적인 수학 마을로 가는 안내서 ㅣ 내 멋대로 읽고 십대 1
민성혜 지음, 배수경 감수 / 갈매나무 / 2015년 7월
평점 :
수학은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수학이란 말을 들으면 머리에 쥐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흥미나 재미를 느끼기 전에 우선 답을 찾아야 한다는 부담감, 그리고 답을 찾는 복잡한 과정을 떠올릴 것이다.
답이란 게 찾아도 찾아도 좀처럼 나오질 않으니, 수학이란 ‘뭐 이런 거’ 정도일까?
수학이 재미있다고 한다면 ‘대체 뭐가?’라는 질문이 돌아올 것 같다. 그런데 실제로 재미있었다면? 그런데도 점수는 늘 바닥이었다면? 재미있는데도 어려운 이유를 몰라 그 때문에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다면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책에 나오는 구봉구처럼 ‘일반인 예정자’였다. 구봉구처럼 ‘슈퍼 가서 계산만 할 줄 알면 되는 거 아니냐’고 투덜거린 적도 있다. 싱크로율 백 퍼센트다.
그런 주제에 수수께끼를 푸는 듯한 설렘, 어쨌든 답이 있다는 확실함, 어려운 문제를 풀었을 때 느끼는 통쾌함……. 그런 것 때문에 수학을 재미있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학을 맘껏 즐기지 못했던 건 순전히 ‘점수’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모든 걸 말해주는 결과가 점수였으니까.
나도 ‘규칙적으로 증가하는 토끼’를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구봉구를 따라 여행하다 보니, ‘역시 수학은 재미있는 학문’이었다. 이해가 좀 더디면 어떤가? 재미있는데. 학교에서도 이렇게 쉽게 설명해 줬다면 좋았을 텐데.
이차방정식을 외우라고 하기 전에 왜 그런 식이 탄생했는지 이야기해 주는 수학 선생님이 있었다면 아마 수학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면적 구하기 문제에 푹 빠져 있을 때는 진도 따위 좀 안 나가도 되지 않았을까? 그냥 재미있으면 안 되는 걸까?
예전에도 수학 관련 동화를 읽은 적은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제목을 들어봤을, 수학 동화의 대표 주자격인 그 책은, 상당히 불친절했다. 기본 지식이 없는데 느닷없이 피보나치수열이 등장했을 때 얼마나 당황했던지! 탄생 과정을 생략하고 값을 구하라던 이차방정식과 뭐가 다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책은 결국 책장에서 퇴출해 버렸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친절하다. 수학마을 아이들은 숫자로 놀이를 하고, 무덤에 들어간 수학자들은 살아서 인간적인 고뇌를 한다. 숫자 하나, 수학 개념 하나가 탄생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보여준다. 그런 모습들이 우스워서 쉼 없이 킬킬거리며 웃다가, 그 덕분에 우리가 당연한 듯 편리한 숫자를 쓰고 있다는 생각에 고마움이 들기도 한다. 당연한 줄 알았던 수학이라는 세계를 탐험하며 너무나 새삼스러운 사실들에 감탄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아라비아 숫자가 사실은 인도 숫자라는 걸 처음 알았다. (예전에 들은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기억에 없으니 처음 안 것이라고 우겨야겠다.) 0이라는 개념이 생김으로써 수학계가 뒤집히고 인류 생활이 비약적으로 편리해졌다는 사실도 크게 와 닿은 적이 없지만, 구봉구를 따라다니다가 새삼 0의 소중함을 깨닫기도 했다. 0이라는 숫자가 없었다면 아마 슈퍼 가서 과자 하나 사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진작 토끼 씨를 만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릴 적, 딱 구봉구 나이에만 토끼 씨를 만났으면 수학 천재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망상까지 하게 된다. 그래도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토끼 씨를 만났으니 다행이다. 적어도 수학이 재미있다는 생각이 틀린 게 아니었다는 걸 확인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낭만적인, 너무나 낭만적인 수학마을로 가는 안내서
수학이 낭만적이라고? 그렇다. 조금만 시각을 달리하면 수학은 창작이고 예술이며 낭만적이다. 어떤 예술가들보다 고뇌하고 고통스러워하며 수 개념을 만들고 규칙을 찾아냈으니 수학은 창작이고 예술이다. 행성이 돌아가는 소리로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학문은 수학뿐이니, 이처럼 예술적이고 낭만적인 게 또 있을까 싶다. 수학은 또 우주이기도 하다. 끝을 알 수 없고 무궁무진하다.
예술적이고 낭만적인 수학마을에는 수학에 관한 모든 것이 존재한다. 수 개념의 탄생부터 수학의 발전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결코 어려운 개념도 아니고 지루한 수학 수업 시간도 아니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많은 이들의 노력에서 나온 결과물이며, 지금도 그렇게 노력하는 수학자들이 있다는 것 등등, 참 많은 것들을 깨닫게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곳이 수학마을이다.
무엇보다 큰 발견은 수학자들이 결코 우리를 괴롭히려고 수학 규칙을 만들거나 발견해 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웃음을 멈출 수 없는 건지도 모른다.
어디에나 있지만 본 적 없는 수학 마을
토끼 씨 말대로 수학마을은 어디에나 있는 것 같은데, 마을로 가는 문을 발견하기는 그리 쉽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구봉구와 함께 여행을 했으니 새로운 수학마을로 가는 문을 발견하기가 더 쉬워지지 않을까? 어쩐지 수학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잊어도 될 것 같은 용기가 마구 솟아나니 말이다. (갑자기 수학 예찬을 하게 만든 게 수학 선생님이 아니라 국어 선생님이라는 게 반어적이다.)
나도 800번 서가를 거의 벗어난 적 없지만, 앞으로는 400번 서가 근처를 어슬렁거릴지도 모르겠다. 혹시나 재활용 마크가 나타나면서 토끼 씨가 불쑥 찾아올지도 모를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