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문화사 살림지식총서 259
고형욱 지음 / 살림 / 200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와인은 그저 비싼 술이라는 생각을 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와인을 마시려면 다른 술보다 훨씬 비싼 값을 치러야 했다. 하지만 요즘은 저렴한 가격으로도 얼마든지 와인을 구입할 수 있고, 어디에서든 와인을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 그래서 언젠가 부터는 나처럼 평범한 사람도 집에 맥주가 아닌 와인을 항상 사놓을 정도로 와인이 부담이 없는 술이 되었다. 하지만 소주나 맥주와 달리 와인은 알기가 참 어려운 술이었다. 알려고 하면 할수록 더 어려워 도무지 알기 힘든 그런 술이었다. 그저 와인이 다른 술에 비해 분위기도 있고 맛도 좋기 때문에 와인을 좋아할 뿐 말이다. 그런 면에서 와인은 이성과도 같았다. 나와 다른 성을 가진 상대방을 온전히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지만, 그저 같이 있으면 좋으니까 자꾸 연락하고 만나는 그런 사이.

 

그래도 언젠가는 와인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다. 와인을 좋아하면서 와인에 대해 너무 모르는 것도 와인에 대해 예의가 아닌 것도 같고, 정말로 와인에 대해 알고 싶고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와인의 역사는 너무나 길었고, 와인의 문화는 너무나 방대했다. <와인의 문화사>라는 제목으로 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와인이 폭넓고 깊이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갖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했다. 그래서 와인에 대해 안다는 것은 지리와 역사, 문화, 종교 등 많은 걸 안다는 것이라는 지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와인에 대해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 많은 것들을 다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와인, 참 어려운 술이다.

 

 

그리스는 전 국토의 80% 정도가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토지는 비옥하지 않았지만 햇살은 따사로웠고, 대기는 투명했다. 시인들은 대지의 아름다움을 찬양했다. 여름에는 뜨겁고 건조한 날씨가 이어졌지만, 겨울에는 이따금씩 큰 비가 내리거나 폭풍우가 휘몰아쳤다. 물은 귀했다. 사시사철 물이 흐르는 강은 드물었으며 메마른 탓에 강과 샘물은 신성하게 여겼다. 그리스에서 세 가지 필수 식품이라 할 수 있는 탓에 밀보다는 보리 경작에 더 적합했고, 언덕에서는 올리브나무와 포도나무가 잘 자랐다. 사람들은 이를 신성하게 생각했다. 데메테르 여신은 인간들에게 빵을, 디오니소스는 와인을, 아테나 여신은 올리브나무를 선사함으로써 아테네의 수호신이 되었다. 지중해 세계에서 이 세 가지 식품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는지는 부연하지 않더라도 충분할 것이다.

- <와인의 문화사> p18 중에서  

와인은 피를 상징했고, 여자가 다른 피를 마시는 것은 다른 남자와 간통을 저지르는 것을 상징했다. 또한 와인이 낙태를 시킨다고 믿기도 했다. 여성에게 와인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가장은 집에 돌아오면 부인이나 딸이 와인을 마셨는지 확인하기 위해 입 냄새를 맡아볼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여기서 오늘날의 키스라는 관습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 <와인의 문화사> p35 중에서  

다른 이야기들은 그래도 자세히만 모를 뿐 어느 정도 알 듯 한 이야기들이었는데, 여자가 와인을 마셨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입 냄새를 맡아보려 한 것이 지금의 키스가 되었다니 너무나 놀라웠다. 과연 정말일까 싶어 책을 읽다 찾아보기 까지 했는데, 그것은 정말이었다. 키스는 본래 지금처럼 사랑을 확인하고 표현하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의심을 품고 검사하기 위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원시시대에는 사냥 갔던 남자가 집에 있던 여자들이 음식을 먹었는지 확인하려 하던 행동이 나중에 그리스 시대에는 남자들이 여자가 술을 마셨는지 확인하는 행동으로 이어진 것이 키스의 유래였다. 당시 와인이 갖고 있던 상징 때문이었다고는 하나, 그리스 시대의 여자들은 와인도 마음대로 마시지 못하고 마신 걸 들키기라도 하는 날에는 죽임을 당하기까지 했다니 참으로 안타까웠다. 그리고 내가 그리스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예수께서 빵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 <와인의 문화사> p43 중에서  

예수 이전까지 피는 신에 속한 것이었다. 예수의 행동은 기존의 인식에 비하면 가히 혁명성을 띤 것이었다. 피는 권력을 강화하는 데 이용되었으며 종교적인 비유이기도 했다. 인간과 짐승의 피는 종교 의식에 사용되었으며, 신에게 속죄의 제물로 바쳐지고 있었다. 예수의 시절까지도 신에게 속죄의 제물로 바쳐지고 있었다. 예수의 시절까지도 짐승들을 신에게 바쳤다. 곳곳에서 피를 사용하고 있었으나 예수를 통해서 피를 사용하던 의식은 혁신되었다. 더 이상 짐승을 죽여서 제단에 피를 뿌리는 행위는 필요치 않게 된 것이다. 육신은 빵으로, 피는 와인으로 대치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생명을 빼앗아 신에게 기원하는 행동은 이로써 종말을 고하게 된다.

- <와인의 문화사> p45 중에서 - 

디오니소스가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났듯이 예수 또한 마찬가지다. 와인의 역사에서 오시리스와 디오니소스, 그리고 예수는 유사한 길을 걷는다. 바로 죽임을 당하고 부활하는 과정이다. 이집트의 오시리스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가 지녔던 같은 상징성을 예수 또한 갖고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예수는 부활한 오시리스, 디오니소스와 같은 인상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들은 포도나무와 동일한 존재가 된다.

- <와인의 문화사> p47 중에서 -

또 한 가지 놀라웠던 것은 와인과 종교 간의 연관성이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와인에 대해 갖고 있는 이야기들은 오히려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기독교에서 와인에 대해 갖고 있는 이야기들은 새롭게 다가왔다. 기독교적으로 와인과 포도나무에 갖고 있는 의미가 상당하다는 것 역시 새삼 놀라웠고 말이다. 천주교와 달리 개신교에서는 술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편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대해 때론 지나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와인과 포도나무에 대해 성경에 적힌 글들을 보니, 어찌 보면 개신교에서는 와인과 술에 대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기도 하겠다 싶었다. 성경적인 해석에 있어서도 여태 의견이 분분하다고 하니, 기독교에서 와인이 갖고 있는 의미나 뜻이 참으로 심오하구나 싶었다.

 

알면 알수록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은 와인. 그 안에 담긴 역사, 문화, 종교, 정치, 지리, 삶 등 와인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와인에 대해 자꾸 빠져드는 것은 아닐까. 그냥 마시기는 쉽지만, 알고 마시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와인.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말이 와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인 듯하다. 와인에 대해 알수록 그저 입으로만 맛을 느끼는 와인이 아닌, 와인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들까지도 보고 느낄 수 있게 되니 말이다. 이 책 한 권으로는 와인이 갖고 있는 많은 것들을 다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와인이 갖고 있는 다양성과 깊이를 조금이나마 맛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관심만 갖고 있던 와인에 대해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서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루이 15세를 알현한 자리에서 왕은 리슐리외의 젊어진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물었다. “아니 공은 어찌 된 게 보르도로 떠나기 전보다 25년은 젊어 보인단 말이오?” 리슐리외가 황송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폐하, 제가 젊어지는 샘물이라도 찾았겠습니까? 저는 기운을 돋우어 주는 샤토 라피트 Lafite라는 와인을 찾았습니다. 그 맛은 마치 올림푸스의 신들이 마신다는 암브로시아 같았사옵니다.”

- <와인의 문화사> p88 중에서 - 


​        


- 연필과 지우개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