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행복을 파는 곳.. 구멍가게.. 내가 어릴 때도 동네마다 구멍가게가 있었다. 그 당시엔 이마트나 롯데마트 같은 대형 마트도 없었던 것같다. 그저 구멍가게에서 사먹는 군것질이 최고였을 꺼다. 나 역시.. ㅎㅎㅎ
하지만 초등학교 가기 전까지만 해도 절대 혼자 구멍가게에 가지 않았다. 수줍음이 너무 심해서.. 어찌나 심했던지, 할머지가 손에 돈을 쥐어 주시면서 혼자 가서 먹고 싶은 거 사라고 하셔도 절대 안갔다. 혼자 가는 게 너무 무서워(?)서? 그 모습에 엄마는 걱정이 되셨는지. 나중에 학교는 어떻게 갈래 하셨다. 다행이 학교는 혼자 다닐 수 있었는데, 부끄럼도 많이 타고 수줍음도 많이 타서 발표 같은 건 절대 안했었다. 다른 아이들은 서로 할려고 난리 칠 때도 난 선생님이 시키실까봐 숨곤 했었다. ㅋㅋ
한번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집에 일이 있어서 일찍 조퇴를 해야했는데 수줍음을 많이 타서 도저히 선생님한테 말을 할 수가 없는 거다. 그때는 선생님 책상이 교실에 있어서 쉬는 시간에도 선생님이 교실에 계셨는데.. 가서 말씀만 드리면 될 껄.. 무섭다고 말을 못하고 있었다. 다행히.. 오빠가 같은 학교라 오빠가 대신 선생님한테 말씀드려준다면서 갔다가 오빠까지 혼나고 말았다. 그런 말도 혼자서 못하면 어떻하냐고.. 결국 내가 벌벌 떨면서 선생님한테 말씀드리고 나서야 조퇴를 할 수 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뭐.. 아직도 그때의 수줌음이 많이 남아있어서.. 어쩔 땐 심하게 수줌음을 탄다. 낮도 가리고.. 특히 사람이 많은 자리에서는 어떻게 하면 모면할 수 있을까 할 때도 있고.. 많은 사람의 시선이 나한테 집중되는게 아직도 무섭다. ^^;; 그러니.. 말을 길게 해본적이 있어야지.. 지금도 말하는게 서투르다.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 것도 어렵고. ^^;; 어릴 때 말도 너무 없고 그런게 지금도 어느 정도는 영향을 주는 것 같다.
형따라 학교까지 따라갔다는 아이 이야기를 보면서 문득 생각이 났다. 난 오빠따라 학교는 안갔지만, 오빠 주산학원이나 컴퓨터 학원은 따라가 본적이 있다. 게다가 컴퓨터 학원에서 가는 소풍까지도.. 그때 아마.. 눈썰매장이랑 자연농원을 갔었지? ㅋㅋ 기억은 잘 안나는데 오빠도 귀찮아했던가.. 싶다. 가물..
출퇴근 길 버스에서 이 책을 읽었는데 눈물이 나서 몇번이나 책을 덮었는지 모른다. 버스에서 책읽다가 훌쩍이는 건.. 좀.. 웃기니까.. ㅋㅋㅋ 나도 어릴 때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이 책처럼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동스러운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적어도 구멍가게 집보다는 여유가 있는 삶이였기 때문일까? 우리 집이 구멍가게 집처럼 하루살이 생활이였으면 어땠을까? 나는 이렇게 크지 못했을 것같아. 성격도 더 까탈스러워지지 않았을까? 많은 형제들한테 치이고, 집안일도 해야하고.. 흐미~ 생각만해도... 까마득...
난 서울서 자라서 서울서 컸기 때문에 특별히 고향이랄 만한 곳이 없다. 그저 예전에 살았던 집을 가끔 찾아가 보는 정도랄까? 얼마전 지나다가 예전에 살던 집을 지나치게 되었다. 그대로 인 것 같기도 하고.. 조금 달라진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변해가면서도 내가 살았던 곳은 예전 그대로 이길 바라는 건 너무 큰 욕심일까..? 10년이 지나도 예전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다.. 언제든 찾아가 볼 수 있게.. ^^;
내가 어린 시절 이야기를 쓴다면... 음. 우리집.. 정도의 제목이 되겠지? 우리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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