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만약'이라는 가정이 이루어질 수 없어 매우 슬프지만, 만약 평화로운 세상에 김시습이 태어났다면 뛰어난 학자가 되었음이 분명하다. 세살 적에 글을 지을 줄 알았고, 다섯 살에 시와 산문을 지었다. 세종이 그 뛰어난 재능에 비단을 하사하고 장성하면 크게 쓰리라 약조까지 내렸다는 사실은 매월당이 학자로서의 가능성이 높았음을 증명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였다. 신하가 왕의 권위를 찬탈하는 현실에서 절망하고 분노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불의하고 결함으로 가득찬 이 세계에 물들지 않고 고결한 정신과 신념을 믿으며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것 뿐이었다. 김시습이 바라던 이상과 저만치 멀어진 세상, 그렇지만 비관만하며 자신의 신념을 저버릴 수 없었던 그 시기, 그는 금오신화를 통해 현실에서 실현되지 않았던 사랑이나 정의와 같은 진리들이 인간 세상 밖이나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실현됨으로써 그가 바랬던 신념을 간접적으로나마 표현하였다. 소설속 인물 모두가 현실에는 결함이 있음을 자각하고 아픔을 느낀다. 그들은 현실에서 완전한 가치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함으로써 슬픔을 느끼고 우리 역시 소설을 통해 그 슬픔에 공감한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그러한 자각은 현실에서의 도피를 유도하지 않으며 오히려 현실에 살면서 현실을 부정하는 자기 혁신을 요구한다. 지금이 아무리 절망적이더라도 인간은 자신의 신념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 신념을 지키며 고군분투하다 보면 언제가는 그 진리가 실현되리라. 나는 아직까지 이상적인 세계를 보지 못했다. 시각에 따라 다르지만 괴롭고 슬픈 일들은 항상 내 주변을 노리고 있다. 프레디 머큐리가 노래했듯이 매일 죽음(고통)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할까? 아니면 괴로운 진리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야할까? 많은 고민을 안겨준 김시습의 '금오신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