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견문록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세계음식기행 지식여행자 6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조금씩 아껴 있던 미식견문록!

책의 형식은 1악장, 2악장, 3악장과 같이 음악의 형식으로 편집되어 있다. 요네하라 마리 자신이 통역을 하면서 즐기던 음식들과 그 음식의 역사적 유래, 음식을 다시 맛 보기 위해 지인들을 총 동원하여 음식을 구하는 이야기, '에키벤은 팔각 도시락으로 ...'라고 말하고 일주일 뒤 세상을 뒤로 한 대식가 바나나 삼촌 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먹어보지 않은 음식에 얽힌 뒷이야기가 재미있을까, 라는 걱정도 있었는데 그것도 재담과 얽히면 글로서는 맛깔스러운 하나의 에세이로 탄생한다. 책의 첫 장을 여는 이야기, 러시아의 맛없는 통조림 '여행자의 아침식사'는 친구와 이야기하며 몇 번이나 깔깔거렸던 부분이다.

   
 

남자가 숲속에서 곰을 만났다. 곰은 당장 남자에게 물었다.  

"넌 뭐 하는 놈이냐?"  

"여행자인데요."  

"아니, 여행자는 나다. 넌 여행자의 아침식사고."

 
   

'여행자의 아침식사'라는 말만 나오면 러시아인들은 왜 그렇게 자지러지는 걸까? 마리 여사는 이 우스갯소리가 퍼지게 된 연유를 러시아의 상황을 들어 풀어낸다.

   
  동화풍 우스개의 반전 부분이 맛없는 통조림 이름과 우연히 일치한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인기 없는 통조림을 야유하려고 일부러 만들어낸 얘기라는 사실을 알고는 조금 감동했다. 그들은 맛이 없어 통 안 팔리는 통조림을 계속 생산하는 데 드는 막대한 낭비와 헛수고를 멈추고 맛을 개선하려 노력하기보다, 생산과 판매를 방치한 채 풍자하고 야유하는 우스개를 만드는 쪽에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러시아인의 기막히게 비생산적인 열정, 그야말로 지극히 문학적인 재능에 감탄을 금치 못 하겠다.  
   

러시아인의 이러한 유머는 끔찍했던 농민혁명을 눈물나게 웃긴 소설로 재현한 푸쉬킨의 '대위의 딸'에서 경험한 바 있지만, 이 일화를 통해 어쩐지 훨씬 더 잘 알게 된 느낌이었다.

동화나 민담을 좋아하는 내게 제일 재미있던 것은 역시 2악장! 이었는데,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식이다.

   
 

인종차별적인 표현이 문제가 되어 서점에서 자취를 감추어버린 동화 중에 '꼬마 깜둥이 삼보'가 있다. 나와 같은 세대라면 다들 한 번쯤은 읽었을 인기 있던 동화다. 정글에 사는 흑인 소년이 사나운 호랑이에게 입고 있던 옷가지를 하나둘씩 모두 빼앗기다가 호랑이들끼리 싸우는 바람에 결국 모두 되찾아 온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가장 볼 만한 장면은 나무 위로 도망간 삼보를 쫓아 호랑이들이 야자수 아래에서돌다가, 서로 꼬리를 물고 원이 되어 점점 속도가 빨라지는 바람에 녹아서 버터가 되는 장면이 아닐까. 이런 황당무계함이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삼보네 엄마는 호랑이들이 녹아서 만들어진 버터를 듬뿍 넣어 핫케이크를 구워준다. 

"엄마, 나도 핫케이크 구워줘요!"

 
   

본래 팬케이크는 미국인들이 즐겨 먹는 음식. 유럽에서는 팬케이크는 거의 먹지 않는다. 이야기의 시작은 인도를 다녀온 영국의 여사가 쓴 거라고 하니, 여기서 말하는 핫케이크는 '난'을 영국식의 팬케이크로 번역한 것을 다시 일본식으로 '핫케이크'로 고쳐 쓴 것. 삼보, 맘보, 깜보 등의 이름은 남미의 것이고, 그림에서 완전히 흑인의 얼굴로 그려놓은 것과 다르게 본래는 인도 사람의 이야기다.

이렇게 한 가지 이야기만 해도 멀고 먼 곳을 돌아온다는 것.

이 밖에도 일본 민담인 '주먹밥이 데굴데굴', 안데르센의 '빵을 밟은 소녀' 등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빵을 밟은 소녀'에 나오는 소녀는 왜 흰 빵을 밟았던 것일까? 검은 빵과 흰 빵은 맛이 어떻게 다르고, 전쟁 때 군사들은 왜 그렇게 검은 빵을 그리워했던 걸까? 보드카는 언제부터 국제적으로 러시아의 배타적 브랜드가 되었을까? 감자는 왜 악마의 음식이었을까?

고양이 키우는 이야기, 프라하에서 지냈던 이야기, 음식에 대한 이야기, 통역에 대한 이야기, 독서에 대한 이야기(암으로 사망하기 전에는 암에 대한 서적들을 찾아 읽은 기록 역시 포함되어 있다고한다) 등 요네하라 마리는 자신의 인생을 이뤘던 테마들을 차곡차곡 정리해나갔다. 이렇게 인생과 밀착되어 있는 글쓰기의 매력을 누가 거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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