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아메리카 JGB 걸작선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 지음,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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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초두, 미합중국이 붕괴되었다…

『헬로 아메리카』 中


『헬로 아메리카』는 1981년에 초판이 발행된 소설이다. 에너지 고갈과 인위적인 환경 변화로 사람이 살 수 없게 된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떠나는 원정대의 행로를 그린다. 책을 읽기 시작한 후 몇 페이지 못가 애잔함이 느껴지는 문장을 발견했다.


웨인의 눈길은 도시의 나이 든 가부장이라 할 수 있는 옛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머물렀다. 세계무역센터의 쌍둥이 기둥도, 월가에 군림하며 네온사인으로 메카 방향을 가리킨다는 200층짜리 OPEC 타워도 보였다.

p.10


2020년 뉴욕 스카이라인에서는 지워진 세계무역센터가 밸러드의 소설 속 폐허 속에는 여전히 건재했다. 모든 거주민이 떠나고 광석 먼지만 가득한 도시에서도 굳건히 서있으리라 믿었던 초고층 빌딩이 종교를 앞세운 갈등으로 파괴된 것이다.


소설은 북아메리카 대륙 멸망 이후에 도착한 탐험가들의 모험기다. 물 속에 가라앉은 자유의 여신상은 더 이상 미국의 자유가 이전같은 모습이 아님을 상징한다. 미국은 탈출 행렬에서 낙오한 소수의 사람들이 '원주민'이 되어 태고적 부족 사회의 모습으로 사는 곳이 되었다. 유럽의 원정대에 밀항한 주인공 웨인은 꿈으로 가득한 인물이다. 떠나기 전에 친부를 찾는다는 이유를 앞세운 탈출의 열망을 가졌다면 멸망의 잔해 위에 상륙한 뒤에는 '원정대 대장'을 목표도 했다가 '미국 45대 대통령'의 꿈을 꾼다. 등장인물들은 각자가 미국 땅에서 이루고자 하는 숨겨진 속내를 가지고 있다. 미국 대륙을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는 탐험 또는 방랑 속에서 서로의 욕망은 상대를 돕기도 부딪히기도 한다.


원정대 일행은 원시림으로 변한 사막의 도시 라스베가스에서 북미에 마지막으로 남은 문명지를 발견한다. 그곳은 타인을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질병"으로 여기는 맨슨이 다스리는 도시다. 그는 자신이 세운 왕국을 타인의 손에서 지키기 위해 미대륙 전체를 희생시키려 한다. 광기에 휩싸인 맨슨의 모습은 재난의 상황에서도 혼자만의 천국에 갖힌 지도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그는 모두가 갈망하는 에너지를 자신의 환상을 실현하는데 소모하고 파괴할지언정 자신만의 국가를 나눌 여지는 고려하지 않았다. 이런 맨슨이 미국 초대 대통령 워싱턴의 모습을 한 로봇에게 살해당하는 모습에서 작가의 아이러니를 발견할 수 있었다. 권력이 권력을 응징하는 모습인 동시에 권력자의 모습을 본 뜬 가짜가 살아있는 권력을 처벌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정당하지 못한 지도자의 자리는 인형의 힘에도 위태로운 법이라 해석해보면 어떨까.


모든 희망을 버리고 예고된 죽음을 바라보던 웨인은 천신만고 끝에 죽음의 도시에서 탈출한다. 그리고 다시 꿈을 꾼다.


벌써 그는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었다. (…) 언젠가 백악관에 당당히 입성해서, 자신을 예비한 행동이라는 것도 모르고 열심히 청소했던 그 집무실에 앉으리라. 수정으로 빚어낸 비행기를 타고 취임식 자리에 도착해서, 최초로 비행기 위에서 취임 선서를 하는 대통령이 되리라. 옛 꿈은 죽었다. (…) 새로운 꿈을, 진짜 미래에 어울리는 꿈을 꿀 때가 되었다. 선라이트 플라이어 편대의 초대 대통령이 되는 꿈을.

p.364


'아메리칸드림'은 계속된다. 재연 재해와 인간의 욕망으로 초토화된 땅에서도. 밸러드는 "아메리칸드림에 숨겨진 논리를 따라가면 결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핵 룰렛을 즐기는 맨슨 대통력으로 이어질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작은 기회만 있어도 "낙관론과 자신감"을 버리지 않는 웨인이 제45대 대통령이 되는 옛 꿈이 아니라 "진짜 미래"의 "초대 대통령이 되는 꿈"을 이루는 것이 작금에 걸맞는 '아메리칸드림'일 듯 싶다.


#도서모임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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