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읽었다 - 각 분야 전문가가 말하는 영역별 책읽기
이권우 외 지음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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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은, 그리고 진정한 독서는 '정보' 제공에 그치지 않는다.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자극하여 생각하도록 만든다. 그렇게 단기적으로는 우리의 생각을, 장기적으로는 인생을 바꾼다.

p.8


책을 어느 정도 읽다보니 내가 잘 읽을 수 있는 영역과 잘 알고 싶지만 도무지 알수 없는 영역이 어느 정도 분간된다. 앞의 구분에 포함되는 것은 소설, 역사이고 뒤쪽 구분에 포함되는 대표적인 영역은 시와 철학이다. 잘 알고픈 마음과 달리 시는 아무리 읽어도 맥락이 포착되기 힘들고 철학의 경우는 각 분파의 주장이 읽고 나면 모두 뒤섞여버리는 증상을 보인다. 시는 과감히 읽기를 포기했지만 철학은 어떻게든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어떤 책이든 잘 읽어야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그 '잘'이란 걸 어떻게 하면 성취할 수 있단 말인가. 인생을 바꾸는 거창한 독서의 효과는 미래의 일로 미루고 일단 '잘' 읽는 것부터 시도해보고 싶다.


경희대학교 출판문화원에서 나온 『나는 이렇게 읽었다』 는 각 분야 전문가가 알려주는 책읽기의 방법을 담은 책이다. 책의 분야는 교양, 문학, 인문고전, 사회과학, 자연과학, 예술로 나누었다. 전문가들은 "각자의 체험에서 시작하여 특정 분야의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그 영역의 책을 읽는 방법, 추천 도서 순으로" 각자의 비법을 전수하고 있다. 이권우 도서평론가가 교양 영역을 맡고 나머지 다른 영역은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교수진이 담당했다. (이권우 도서평론가도 경희대 국문과 졸업생이다.) 이권우 도서평론가의 글은 『책읽기의 달인 호모부커스』와 『각주와 이크의 책읽기』에서 읽은 적이 있다. 나름의 위트와 쉬운 글쓰기였다는 기억이 있다. 『오래된 연장통』으로 알게된 자연과학 영역을 저술한 전중환 교수의 글도 기대됐다.


분야별 읽는 법은 각 저자의 독서 경험에 대한 고백으로 시작한다. 이권우 저자는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영혼의 충만함을 느꼈고, 고봉준 교수는 직업으로서의 읽기와 여가로서의 읽기를 비교한다. 인상적인 서두는 자연과학 담당인 전중환 교수의 것이었다. 전중환 교수는 대학 새내기 시절 전공 분야 책임에도 『이기적 유전자』를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적었다. 나중에 배경 지식이 많이 쌓인 후 원서로 읽었을 때 이 책이 "수정처럼 투명하게 잘 쓰인 책임을 알게" 됐다고 한다. 전중환 교수는 읽기가 쌓이는 효과에 대해 말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번역의 문제가 떠올랐다. 처음 읽을 때 영어 원서를 읽었어도 이해하기 어려웠을까. 나중에 읽을 때 한글 번역본으로 읽었다면 원서로 읽을 때만큼 명징하게 이해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다.


교양 도서는 "지식의 기초체력을 키우는" 책이며 "좀 더 넓은 분야를 아우르고자" 읽는 책이다. 저자는 자신의 수준에 맞는 책을 골라 읽되 속도전을 경계하라고 말한다. "책제목을 읽으면서 그 책의 전체 주제를 짐작"해본 후 서문을 읽고 번역서인 경우 번역자의 후기를 읽으라고 권한다. 목차 또한 꼼꼼히 살필 부분이다. 책 내용 요약의 결정판이기 때문이다. 모티머 애들러의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에 근거해 분석하며 본문을 읽는 방법도 소개한다.


고봉준 교수는 문학을 읽어야 이유를 "타인의 삶에 다가"가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문학은 우리를 타인의 삶으로 데려간다. (…) 문학이 우리에게 타인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가져다주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렇지만 최소한 타인에게 가장 근접한 지점까지 데려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p.61


작품에서 느낀 "공감"과 "감동"은 "타인에 대한 연민이나 동정과 달리 타인의 삶과 나의 삶을 겹쳐 놓"는 일이다. 타인의 삶을 경험하면서 '나'를 성찰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문학을 읽는 이유다. 


소설을 제대로 읽기 위한 방법은 세 가지다. '첫 문장'에 집중할 것, 작품이 겨냥하는 바를 발견할 것, 작가가 말하지 않는 것과 제목에 주목할 것. 


작가는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한다. 이 때문에 문학작품에서는 작가가 말한 것보다 말하지 않은 것, 말할 수 있음에도 끝끝내 침묵한 것을 아는 일이 중요하다.

p.73


인문고전 읽기를 소개한 전호근 교수는 의외의 발견이었다. 서양고전 쪽으로 편독이 심한 터라 알지 못했던 저자다. 인문고전 읽기의 방법은 둘째치고 저자의 문맥 구성과 문장이 정말 좋았다. 저자는 "책을 읽을 때 상상력이 커지고 자유도가 높"아진다며 다른 매체와 비교되는 책읽기의 장점을 강조한다. "모름지기 책이란 천천히 읽어야 매일같이 읽을 수 있고 제맛을 느낄 수 있는 법"이라는 말은 깊이 새겨야 할 경구다. 


저자는 "고전의 진정한 힘"이 "역사 속에서 독자들을 만남으로써 시대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책"이기 때문이라고 쓴다. 때문에 역사적으로 참고할 만한 해설이 많고 저자의 의도를 명확히 하기위해 해설을 함께 읽으라고 권한다. 그리고 매우 적확한 사례를 제시한다.


엉뚱한 소크라테스를 만나면 악을 정당화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고 《논어》를 잘못 읽으면 나라를 팔아먹는 배신을 저지를 수도 있다. 실제로 어떤 이(윤봉길)은 《논어》를 읽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는데, 어떤 이(이완용)는 《논어》를 읽고 나라를 팔았다. 인문고전을 읽을 때 길잡이가 필요한 까닭이다.

p.104


'사전을 옆에 두고 읽어라', '반복해서 읽고 필사하고 머릿속에 기억하라', '눈으로만 읽지 말고 입으로 소리 내어 읽어라', '입을 넘어 몸으로 읽어라', '책을 덮고 탄식하거나 눈물 흘릴 줄 알아야', '나를 성찰하며 읽어라', '멋진 문장을 찾아라', '자료형 고전은 빠르게 읽어라', '비판하면서 읽어라', '읽었으면 읽은대로 실천하라', '좋은 스승을 찾아 배워라' 등이 저자가 제시한 인문고전 읽기의 방법이다. 그중 무엇보다 '좋은 벗을 찾아 함께 읽어라'라는 대목이 머리에 박혔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책읽기의 방법이라니 누구나 한 번 도전해봐야 하겠다. 


좋은 벗을 얻어 함께 수행할 수 있다면 인생의 모든 것을 이룬 것이다.

-석가모니

p.117, 


이병주 교수는 독서를 "나와 우리의 삶을 읽어내는 과정이자, 삶에서 비롯된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지난한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사회과학도서 읽기의 방법을 실제 사회 현상의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사회과학도서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저자의 입장과 질문 파악하기', '개념 이해하기, 개념화 과정 비판적으로 이해하기', '사회를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과정으로 이해하기, 사회과학책의 내용을 구체적인 장면으로 그려보기'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아주 진지한 책읽기에 관한 제언이다. 사회과학 책을 읽을 때 저자의 입장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대목이 인상에 남았다. 사회과학은 객관성을 찾는 자연과학과 달리 인간 사이의 현상을 또 다른 인간이 연구하기 때문이다. 기억하고 적용해야할 지점이다.


전중환 교수의 '자연과학도서 읽는 법'은 가장 경쾌한 장이다. 서술태도가 무겁지 않아 앞 부분을 읽으면서 독서에 부여했던 큰 무게를 좀 덜어낼 수 있었다. 특히 과학도서를 읽는 독자를 위로하는 문장이 반가웠다.(눈물 날뻔 했다.)


평소 교양서적을 상당히 읽는 여러분이 생전 처음으로 과학교양서를 집어 들었는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이는 여러분의 잘못이 아니다. 그건 저자나 번역자의 잘못일 확률이 높다.

p.203


심지어 "전문용어를 잔뜩 섞어가며 자기주장을 길게 늘어놓는 과학책은 집어 던지시라"며 "여러분은 하나도 잘못한 것이 없다"고 말해준다.(그래, 던지면 되는 거였다!) 


저자는 수전 와이즈 바우어의 『독서의 즐거움』에서 독서의 세 단계를 차용해 자연과학도서 읽기에 적용했다. 이해단계에서는 객관적으로 해석하는 책과 저자의 이론을 내세우는 책을 구별해 읽을 것을 권하면서 개요읽기 번역서의 경우 번역자와 한국어판 제목을 확인하고 이해가 안되더라도 끝까지 읽으라고 말한다. 평가단계에서는 핵심 주제를 한단락으로 정리해보고 저자의 요약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은유의 경우,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공유하는 특성에 주의해야 하며 저자의 가설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적절한지 살펴야 한다. 의견 표현 단계에서는 같은 주제를 다룬 다른 책과 비교해 읽기를 제시한다.


'예술도서 읽는 법'을 담당한 윤민희 교수의 독서법에서 주목할 부분은 '예술도서의 맥락 읽기'다. 저자는 다섯 권의 도서를 중심으로 예술도서의 맥을 짚는 방법을 소개한다. 서양미술사와 한국미술사, 1인 예술가를 다룬 모노그래프, 유명 예술도서를 모은 책, 미술 작품 분석 방법론과 글쓰기에 대한 책의 구성과 내용을 서술한다. 


저자들은 "독서에 있어 이 책에 제시된 내용이 유일한 방식이 아니라 첫 번째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라고 그 이후에는 "독자 스스로 자신만의 책 읽는 방법"을 찾기를 권한다.  각 저자가 각 장의 말미에 써놓은 주옥같은 필독서들만 다 읽어도 책읽기에 대한 목마름은 어느 정도 가실 듯하다. 그 목록은 아주, 아주 길고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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