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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공장 베네치아 - 16세기 책의 혁명과 지식의 탄생
알레산드로 마르초 마뇨 지음, 김정하 옮김 / 책세상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5/0525/pimg_7706021001211931.jpg)
조선시대와 비슷한 무렵의 유럽, 특히 베네치아의 서적문화는 어땠을까. '책공장'이라는 표현이 심상치 않다.
지금의 베네토주의 주도(州都) 베네치아 하면 먼저 물이 떠오르는데, 라틴어로 '계속해서 오라'는 의미라고 한다. 물 위를 떠다니는 곤돌라와 메르체리에 거리의 공예품들을 꼭 가서 보고 싶다. 이 메르체리에 거리에는 예나 지금이나 상점과 여행객들로 가득했다고 하는데, 이 거리가 수백년간 존속해왔다는 점도 부럽다. 당시 이 거리에서 여행객들을 가장 경탄하게 한 것이 바로 서점이었다고 하는데, 청나라의 서점가인 유리창(琉璃廠)과 비견할 수 있지 않을까. 연경을 방문했던 조선 문인들이 유리창에서 경탄했다는 그 모습과 다르지 않았을것 같다.
참고로 이 책에서 소개하는 당시의 베네치아 공화국은 지금의 귀염둥이 도시 정도의 스케일이 아니었다. 5세기경 게르만족이 북이탈리아로 들어오면서, 일부 주민들이 야만족을 피해 해안가의 척박한 석호에 마을을 형성하면서 베네치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7세기에 이르러서는 자체적으로 지도자를 뽑고 비잔티움 황제로부터 인정을 받아 자치를 시작하는데, 그 지도자를 도제(Doge)라고 한다. 쉽게 말해 총독인데 라틴어로 지도자를 뜻하는 '둑스(Dux)'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척박한 석호 위에 자리잡은 베네치아는 뛰어난 항해술과 상술을 활용해 중계무역과 상업을 통해 발전해갔고, 중세에 들어와서는 비잔티움 제국의 특혜를 업고 점차 강성해져 결국엔 비잔티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자적 세력으로 발돋움한다. 이후에는 아드리아해와 동지중해의 무역도시들을 잇달아 건설하여 15세기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전성기의 베네치아 영토는 이탈리아 북부와 오늘날의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그리스 및 크레타와 키프로스 같은 섬들에까지 이르러 거대한 국가와도 같았다. 당시 유럽에 인구 15만 명이 넘는 거대 도시가 세 곳이 있었는데 파리, 나폴리 그리고 베네치아였다고 하는데, 단순히 도시국가 수준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이처럼 지중해의 무역을 독점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베네치아로 몰렸는데, 이는 출판의 활성화를 위한 조건을 충족시키게 된다. 그 조건이란 바로 지식인들의 결집, 풍부한 자본 동원력 및 뛰어난 영업 활동이라고 이 책은 언급하고 있다. 다양한 언어와 문화,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어우러지면서, 이전 중세 유럽에서 주로 종교서적이 간행되어왔던 모습과 달리, 다양한 종류의 서적들, 즉 항해지도, 악보집,군사, 의학, 미용, 요리 서적 등이 세계 최초로 출판되었다. 심지어 최초의 포르노 서적 '음란한 소네트'가 탄생한 것도 베네치아라고 하는데(1525년 추정), '최초'라는 데에는 약간의 의문이 있지만, 아무튼 이 책에 나오는 16가지 체위 묘사는 다양한 방향에서 폭발적인 반응이 있었던것 같다. 얼마나 팔렸을지도 궁금한데 새로운 판본들의 제작도 끊이지 않았다고 하고, 1978년엔 경매에서 3만2,000달러에 팔렸다고도 한다.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해야할 인물은 아마도 '조반니 다 스피라'와 '알도 마누치오' 두 사람이 아닐까. 일단 조반니 다 스피라는 독일인으로 베네치아에 인쇄술을 들여온 사람이다. 주지하다시피 유럽에서 금속활자를 발명한 사람은 역시 독일인 요하네스 구텐베르크(1397~1468)였는데, 정작 출판시장이 최고로 발달한 곳은 베네치아가된 셈이다. 독일인은 유럽 전역 어디든 인쇄소를 설립할 여건을 제공할 도시를 찾아 떠돌아다녔다는데, 유목 성향을 가졌던 게르만족의 특성일까. 아무튼 조반니는 1496년 베네치아 총독에게 5년간 독접 허가를 받아 키케로의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를 찍었는데 불과 몇 개월 만에 죽었다고 한다.
다음 정말로 주목할 인물이 바로 알도 마누치오인데, '회화에 라파엘로가, 조각에 미켈란젤로가, 건축에 브루넬레스키가 있다면 출판에는 알도 마누치오가 있다'고 할 정도로 출판 역사에 있어서 한 획을 그은 혁신적인 인물로 평가된다고 한다. 몇 가지를 열거해보자면, 최초의 베스트셀러를 인쇄한 사람, 문고본을 만든 사람, 필기체 인쇄를 도입한 사람, 구두법에 혁신을 일으켜 세미콜론의 아버지로 불리고 어퍼스트로피와 악센트 부호를 도입한 사람, 독서가 취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자 근대적 의미에서 최초의 출판업자였다. 저자는 그의 직관력이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그의 영향력과 무관한 영역은 아마도 전자책 정도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의 디지털 시대에 출판계의 혁신가였던 그가 다시 태어난다면 전자책에 무엇을 구현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참고로 이 대목을 읽고서야 책 표지에 어퍼스트로피와 세미콜론이 들어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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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독서가 취미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정말 획기적이 아닐 수 없는데, 오늘날 수험생 이외에는 여가의 목적으로 독서를 즐기는 문화가 일반적이지만 당시엔 종교 관련 서적이나 교육용 서적이 주류를 이루었다. 비슷한 시기 조선을 떠올리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문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개인적으로 유럽 역사, 심지어 이탈리아 역사에는 익숙지 않아서 이 책을 읽는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다른 책의 문화를 접할 수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던것 같다. '베네치아의 출판 산업이 없었다면 책은 물론 현대 이탈리아어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저자의 태도에서 무한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책의 곳곳에서 다양성과 역동성이 느껴졌고 아울러 그와 같은 역사와 문화가 부럽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