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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1 - 서울 격동의 50년과 나의 증언 ㅣ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1
손정목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회고록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글들은 대체로 해명 내지는 자기합리화의 경향성을 띠고 있다. 근래 대중매체에서 다루어진 사례를 보면 사극 징비록의 바탕이 된 류성룡의 <징비록>이라든지, 영화 사도에서 참고문헌으로 다룬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이 균형 있는 시각을 요한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비판을 받는 사안의 경우 당사자가 해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공평의 관점에서 매우 타당하나, 오로지 일방의 주장을 토대로 사안을 이해하고 평가한다면 불균형이 발생한다. 손정목 선생님의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의 경우에도 이러한 관점에서 읽어볼 필요가 있다.
서문을 보면 저자가 종종 받는 질문을 요약해 놓았는데, 구체적으로는 여의도와 강남개발 문제, 올림픽시설이 잠실에 집중된 이유, 서울대공원이 과천에 위치하게된 이유, 광주대단지는 왜 그렇게 성의 없이 조성되었는지, 지하철 2호선은 왜 순환선으로 계획되었는지, 개포목동고덕상계동의 대형 아파트단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을 열거하고 있다. 결국 모든 질문들은 근본적으로 '서울을 왜 이상적인 도시계획으로 설계하지 못했는가'로 귀결될 수 있을것 같다. 저자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서울 도시계획에 관한 비판이 좀 억울하다는 느낌도 드는것 같다. 마치 '당시 내가 몇 살이었는지 알아? 왜 나한테 그래?'라고 반문하는것 같다. 아무래도 저자가 6~70년대의 서울 도시계획의 대표적인 인물이라 당시 사정을 묻는 것은 어쩔 수 없으리라 생각이 든다.
사실 도시계획 측면에서 서울은 미관도 좋지 않고 편의성도 뛰어나지 않다. 그 원인에는 다양한 요소가 있지만, 그 가운데 한 가지에 대해서 말하자면 '거대블록'이다. <길모퉁이 건축>이라는 책에서는 서울의 도시블록을 '공룡블록'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해외 도시와 서울의 블록을 잘 비교하고 있으며, 특히 강남의 거대 블록은 '인식의 관성'과 '산업화 시대의 개발 논리'가 복합된 결과라며 비판하고 있다. 아마도 손정목 선생님은 이와 같은 비판을 염두에 두고 6.25전쟁과 서울 재건 과정에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고 보인다. '이상적인 도시계획'이란 무엇인가. 르코르뷔지애를 불러 폐허가 된 서울을 이상적인 도시로 설계해달라. 다만 몇 가지 조건이 있는데, 예산은 없고, 사례비도 없으며, 계획 기간은 3개월 이내로 해야 한다. 과연 세계적인 도시계획가는 어떻게 대답할까.
사람들은 머릿속에 기왕 폐허가 된 서울을 재건하는데 구획이 가지런하며 도로는 넓고, 업무상업유통주거 등의 기능이 적절하게 배합된 시가지와 그 안에 공원녹지 등이 넉넉하게 고려된 여유 있는 도시를 그려볼 것이다. 그러나 전쟁 직후의 현실은 그러한 이상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었다. 재정 부족도 문제지만 촉박한 시간도 가장 큰 변수였다. 시간이 지체된다면 피난을 갔던 시민들이 돌아와 원래의 집터에 다시 집을 지어 살게되면 구획정리는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가장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데, 원대한 이상을 품고 도시를 설계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해명은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라 충분히 납득이 가지만, 강남개발을 비롯한 서울의 확장은 어떨까.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더라도 당시 사람들이 서울을 그리는 시야가 좁았던 것은 사실이고, 관료와 도시계획자들의 '인식의 관성'과 '산업화 시대의 개발논리'의 비판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책은 2003년 5권까지 완간된 이후 2013년과 2014년에 개정판이 다시 출간되었다. 구판의 경우 박스세트로 판매되었기 때문에 신판도 박스세트가 나올까 계속 기다렸는데, 한 1년 기다리다가 직접 문의해보니 세트 계획은 없다는 답변이 왔다. 결국 작년에 1권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1권에는 전쟁전후 사정과 복구과정, 군사정권의 4대 의혹 가운데 하나인 워커힐 건설, 세운상가의 짧은 영광과 퍼부어진 비난, 한강종합개발 이야기가 실려 있고, 2권 이후로도 서울의 개발 역사가 고스란히 소개되고 있다. 이야기 과정에서 대단히 많은 실명이 거론된다. 이미 알고 있는 인물도 있고 전혀 알지 못했던 인물도 등장한다. 아마 누군가에겐 이 책의 출간이 불편한 작업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과거의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거나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현실에서, 이처럼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체계화하여 후세에 남기는 작업은 정말 의미가 크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