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 세계사
펠리페 페르난데스아르메스토 외 지음, 이재만 옮김 / 교유서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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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세계사에 관한 책이 있다. 세계의 역사에는 주제와 시공간의 한계가 없기 때문에, 시중에서는 전쟁과 무기, 도시, 종교, 음식, 동식물, 금은보화, 건축 등 정말 다양한 주제의 세계사를 발견할 수 있다. 특정 시기와 주제의 역사를 다룬 세계사뿐만 아니라, 전 시대와 지역을 다룬 통사로서의 세계사도 다양하다. 지도로 역사 읽기에 특색이 있는 <아틀라스 세계사>라든지, 미국 하버드와 독일 체하베크 출판사가 합작한 <하버드-C.H.베크 세계사>, 이름 자체가 브랜드인 윌 듀런트의 <문명 이야기>, 1940년대 이래 서양사 개설서로 꾸준하게 사랑받는 <서양 문명의 역사> 등은 많이 알려진 책들이다. 이 책들 사이에서도 구성 체계의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두 가지 뚜렷한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서양'과 '문명' 중심의 서술이다. 물론 <하버드-C.H.베크 세계사>와 같이 비교적 최근에 출간되는 책들은 서양 중심적 세계관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책은 기존의 관점을 고수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대표적으로 <서양 문명의 역사>의 목차를 살펴보면 가장 전형적인 구성 체계를 확인할 수 있다. 20세기 이래 유행하던 세계사는 이른바 4대 문명의 탄생에서 시작하여 그리스와 로마의 세계를 다루고, 서유럽의 팽창과 종교, 문화의 발전에 이어 제국과 식민주의, 세계대전을 거쳐 지구촌으로 끝맺음한다. 


문명의 발상지에서 시작하는 세계사 개관도 무조건 나쁘다고 볼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무엇보다도 이런 도식화는 항상 접근이 쉽다는, 버리기 정말 아까운 장점이 있는 것 같다. 세계사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반듯한 계단을 밟고 고층으로 올라가듯이 중심지마다 같은 단계로 나아가는 역사진행 방식이 이해에 효율적일 수도 있다. 그런데 최근 <신세계사>를 저술한 쑨룽지라는 학자는 이 '4대 문명론'을 가리켜 '낡은 개념'이라고 설명하였다. 즉 4대 문명론은 '민족주의'의 수요에는 잘 부합하지만, 인류 문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데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최근 고고학에서는 문명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는다고도 한다. 쉬운 이해는 분명 선입견과 편견을 만드는 부작용도 일으키는 것 같다. 그래서 최근 트랜드는 기존의 서양중심주의와 문명론적 세계관에서 나아가 인류와 지구, 우주로 확장하는 이른바 '빅 히스토리'로 뻗어나가고 있는 것 같다.


바로 이 책, <옥스퍼드 세계사>도 이런 배경과 맥락에서 최근 트랜드에 꼭 맞는 구성체계를 갖추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더 좋을 것 같다. 마치 시공간의 제약이 없는 은하계의 관찰자와 같이 인류 역사 전체를 조망하고 세밀하게 묘사한다는 컨셉을 가지고 있다. 물론 실제 은하계의 관찰자라면 진정한 객관적 관찰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목표이기에, 이 책은 폴 세잔의 그림에서와 같이 다중의 시점으로써의 관찰을 시도했다. "이 책은 인간의 다양성과 관련된 주제들, 다양성을 에워싼 이야기들, 다양성을 관통하는 오솔길들을 살펴봄으로써 다양성 전체를 가능한 한 움켜쥐려는 시도다."


이 책은 지구라는 환경 안에서 마치 복잡하게 증대해가는 세포들을 관찰하는 듯하다. 다양하고 복잡한, 그러면서도 순환적인 인류 역사는 삶의 방식들이 어떻게 증식(발산)하고 만나는가(수렴)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특히, 그러한 '발산'과 '수렴'이 자연과 기후라는 환경에서 어떻게 성장하고 가속적으로 변하는지가 중요하게 다뤄진다. 구성체계가 신선하면서도 서술방식은 어렵지 않아 흥미를 가지고 읽을만하다. 무엇보다도 컨셉이 참 멋지지 않은가.


"우주의 망대에 올라선 은하계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계사"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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