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술 - 로마의 현자 에픽테토스에게 배우는 슬기롭게 사는 법
샤론 르벨 엮음, 정영목 옮김 / 싱긋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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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간결하게 요약된 이 책을 읽기 전에 몇 가지를 먼저 이해하고 있으면 좋을 듯하다. 이 책은 노예 출신의 스토아 철학자인 에픽테토스의 사상을 발췌하여 현대적으로 해석하였는데, 여기에서 ‘노예’와 ‘스토아 철학’이라는 키워드를 그 이해의 배경으로 삼으면 좋을 것 같다.

 

에픽테토스는 55년 경 로마의 동쪽 변경 지역의 노예로 태어났다. 그의 주인은 네로의 행정 비서관이었는데, 에픽테토스의 지적 재능을 알아보고는 로마로 유학을 보냈다. 이후 노예 신분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되었으며, 로마에서 철학을 가르쳤지만 철학자들의 영향력에 위협을 느낀 황제에게 추방당했다. 니코폴리스라는 지역에서 철학 학교를 세우고 여생을 보냈는데, 그의 유명한 제자 가운데에는 <명상록>으로 유명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있다. 스토아 학파는 전기와 중기, 후기로 시대구분을 하는데, 에픽테토스는 후기의 대표적인 철학자이다. 이 시기의 스토아 학파의 특징은 이론이나 논쟁보다도 실천 철학이 부각되었던 것에 있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시대에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컸던 것이다.

 

행복한 삶에 관한 현학적이고 이론적인 수많은 언설들은 귀족적인 관념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에픽테토스는 특정 집단이 아닌 보통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를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명료하고 실천 가능한 철학을 하였는데, 그 바탕에는 노예 출신이라는 점이 영향을 주었지 않았을까, 나아가 이것이 후기 스토아 학파의 특징에 작용하지 않았을까. 에픽테토스에게는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구분’이 매우 중요했다. 이 책에서도 가장 첫머리에 소개되어 있는 그의 어록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라”이다. ‘프로하이레시스’라는 고대 철학 개념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을 뜻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윤리학의 핵심 개념으로 정립하였으나 이후 철학적 논의의 중심에서 밀려나 오래도록 주목받지 못했고, 다시 에픽테토스에 의해 중요한 철학적 개념으로 전면 부상하였다.

 

잘 살기 위해서는,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과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과의 판별이 매우 중요하다. 에픽테토스는 이 둘의 경계선을 매우 뚜렷하다고 보았는데, 사람들이 이 둘을 판별해내지 못하는 이유를 잘못된 가치판단에서 찾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 실려 있는 어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선함과 도덕을 추구해야 하는 까닭을 역설하는 것이다. 도덕은 태생이 고귀한 사람만이 자연적으로 타고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품성과 행동은 우연이나 운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매일매일 노력을 통해 점진적으로 다듬어나가야 하는 것이고, 그렇게 도덕적 가치판단을 갖춤으로써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구분’이 가능해지고, 궁극적으로는 자유롭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것이다.

 

에픽테토스는 이론이 아닌 실천을 중요하게 여겨서인지 직접 글을 남기지 않았다. 대신 역사가인 그의 제자가 그의 철학적 요점을 <어록>이라는 책으로 남겼다. 그리고 다시 그 책에서 핵심 원리만 간단하게 옮긴 것이 바로 <편람>이다. 아마도 배경 이해가 없이 바로 이 책을 읽는다면 편람의 간소함에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에픽테토스가 강조하는 지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이해하고 접근하면 간략한 한 문장에서도 깊은 생각을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동양 고전 가운데 <채근담>이라는 책이 있다. 제목은 ‘나물 뿌리를 씹을 수 있다면 세상 모든 일을 다 이룰 수 있다’라는 의미이다. 나물 뿌리는 처음 씹으면 특별한 맛을 느끼지 못하지만 계속 씹을수록 그 특유의 깊은 맛이 느껴진다고 한다. 첫인상은 소박하지만, 읽을수록 그 단순한 문장에서 우러나는 풍미를 느낄 수 있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이 책도 그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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