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이야기 1
김용택 지음, 황헌만 사진 / 열림원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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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릴 때 시골에 살았다. 새마을 운동이 있기 좀 전에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시절.. 호롱불을 켜고 저녁을 먹고 오손도손 둘러앉아 정담을 나누다가, 온 식구가 한 방에서 이불을 펴고 잠들곤 했었다. 눈내린 겨울 새벽은 공기부터 다르다. 그 공기를 맛보며 설렘으로 눈을 떠 창호문을 보면 바깥이 어슴푸레한 사이로 하얀 세상이 비친다. 눈이다! 외치며 문을 열어젖히면, 이미 온 세상은 새하얀 눈 이불을 덮고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다. 봄날, 여름날, 가을날의 풍경들...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 그 정겨운 풍경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시골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김용택 시인, 그는 어쩌면 그리도 어린애 같은가.. 그의 동심은 웬만한 청소년들보다 오히려 더 어려 보인다. 그리고 자연에 대한, 시골 사람들에 대한 그의 애정은 너무나 곱고 다정하며 섬세하다. 집에서 분교까지 출퇴근길에 만나는 풍경들.. 들꽃들에 대한, 섬진강에 대한 그의 관심은 지독한 사랑이다. 사람끼리도 이만큼 사랑할 수 있을까. 그 모습들을 하나하나 섬세히 보아주고, 쓰다듬어주고, 누리고, 이름불러주고... 못내 그리워하고... 

나도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내심 믿고 있었는데, 그의 글을 읽으며, 그 믿음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내가 얼마나 자연을 사랑하지 않는지... 느끼고 부끄러웠다. 자연에 대한 그의 사랑이 사람에게는 안 가겠는가? 아이들에 대한, 이웃들에 대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그의 사랑은 여전하고 속깊다.

사라져가는 풍경들.. 사라져가는 고향들.. 이젠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시골 고향에 가면, 그때 함께 뛰놀던 동무들도 없고, 여름날 동네 정자(모종)에 누워 산들바람을 자장가삼아 코골며 낮잠에 빠져있던 어른들도 없다. 마을은 간혹 개짖는 소리뿐, 어린애들의 활기찬 소리는 들려오지 않고, 텅 비어버린 마을... 텅 비어버린 사람들로 인해... 다시 가는 고향은 늘 쓸쓸하기만 하다.

우리는 무얼 위해 살고 있는 걸까. 무얼 얻기 위해 이렇듯 치열하게 애쓰며 살고 있는 걸까. 얻은 것은 없이,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진실로 아름다운 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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