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아내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 - 제3의 詩 4
전윤호 / 문학세계사 / 199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제 아내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역설과 아이러니를 녹여낸시들

 

전윤호 시인의 작품들은 일상적인 쉬운 말들로 쉽게 쓴 것 처럼 보이지만 그건 아마도 읽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일거다. 작가는 그 한 편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실험과 고민을 했을까?

 

이 시집 <이제 아내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발칙한(?)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시집에 적힌 시들은 도발적이고 환상적이며 기묘한 얘기들을 담고 있다. 여러 시인들이 기기묘묘한 소재를 다루며 기기묘묘한 단어를 사용하고 기기묘묘한 감상을 얘기하고 있는데 그런 초현실주의 적인 느낌과는 또다른 느낌이다. 이 시인의 시집에는 현실이 존재한다. 작가는 굳건히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으며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자신이 무엇에 좌절하며 누구에게 무슨 메시지를 던지고 싶어하는지도 잘 안다. 남은 건 본인이 느끼는 것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다. 그 방법론적인 도구로서 시인은 "시"라는 형태를 취했다. 시란 직설적일 수도 있지만 뭔가 상징을 내포하고 있을 때가 더욱 독자에게 크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 시집에서는 알 수 없는 괴물같은, 이상하고 기묘한 소재들이나 생각들이 등장한다. 시체가 나오기도 하고 49제를 맞이한 "어떤 죽은 사람"의 말이 나오기도 한다. 아내가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상한 생각, 직장에서 겨드랑이가 자꾸 간지럽다는, 그래서 날개가 돋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들...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 같은 환상적인 사건들이 독자를 기다린다.

 

거기까지. 앞서 말한대로 그런 환상적 사건들은 시적 장치들이다. 환상이나 미학적인 견지에서 시를 아름답고 멋지게 보이기 위한 장치라기보다는 현실을 더 두드러지게 보이게 하도록 하는 나름 "요상한" 상징들이다.

 

개인적으로 직장에 다니면서 좌절을 겪어봤고 나라는 인간이 어떤 일에 적합한 인간인지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해본 나이다보니, 특별히 직장이라는 소재, 주변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에 대한 부적응적인 느낌들... 그런 점들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시 들이 가슴에 많이 와 닿았다. 게다가 재미있지 않은가? 여러가지 희안한 소재들. 아름답고 처량맞고 기분을 다운시키는 정제된 느낌보다는 가라앉은 마음을 들뜨게 만들 수 있는 시들. 나로서는 어쩌면 시의 모범을 보는 느낌이었다. 현란한 시어로 독자를 오히려 미로에 빠지게 만드는 시들에게 치어 있다가 재미있는 한편의 스토리텔링 단편들을 보는 느낌이었다.

 

뭔가 평소에도 남들이 안 하는 이상한 공상에 잘 빠지거나

이세상의 신기한 것들에 끊임없은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특히 창작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꼭 봤으면 좋겠다.

머리속에서 재미있는 생각들이 무럭무럭 솟아날 수 있을 것이다.

 

음... 이게 개인적인 생각만은 아니면 좋겠는데...

뭐, 어쨌거나 난 그랬다.

그래서 이 책을 조금 더 샀다. 주변에 그런 지인들에게 선물해주고 싶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