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만화가, 차니 거북이 만동화 문고
최금락 지음, 박해찬 그림 / 거북이북스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어른이 동화를 쓰고, 어린이가 만화를 그린 기발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 삽화를 그린 어린이는 초등 6학년생이다. 아이의 그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한 색칠에 균형잡힌 연출을 하고 있다. 이 삽화들이 어린이가 그린 것임을 짐작케 하는 것은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는 기발하고 재미있는 상상력 뿐이다. 나도 만화를 그리지만 어린이들의 상상력과 발상력은 한계가 없다. 이 책을 보면 특히 그런 점을 느끼게 된다.




더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한가지 느껴지는 건 '행복감'이다. 동심이 가질 수 있는 행복한 상상, 낙관적 미래, 꾸밈없는 자기 표현. 오래전에 잊고 있던 어린 시절, 마음 한구석에 숨겨져 있던 나만의 그림 세상과 엉뚱한 상상의 기억이 다시 현재로 밀려 나온다. 나역시 어린 시절엔 만화를 많이 그렸다. 틈만 나면, 종이만 있으면 그림을 그려댔었고 혼자만의 상상에서 행복해 하곤 했다. 그러나 그래서 이 책이 더 염려스럽기도 하다. 학원과 게임, 사이버 세상에 찌든, 알 건 다 아는 요즘 어린이들이 이 책을 읽고 공감할 수 있을까?





이 책은 비유하자면 동화판 <<말괄량이 삐삐>>같은 책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어른들 눈치 안보고 재량껏(?) 하는 삐삐는 친구들의 우상이다. 삐삐가 부모가 외출한 사이 친구들과 온 집안을 어질러 놓고 하고 싶은 일을 하듯이, '괴짜만화가' 차니는 길거리 담벼락과 전신주에 재미있는 만화를 그리며 돌아다닌다. 학교 복도에 포스터를 붙이기도 하고 교실 칠판에 친구들 일러스트를 그리기도 한다. 만화가가 되겠다고 가족에게 폭탄선언을 하기도 한다. 삐삐를 싫어하는 어른들처럼 차니의 엄마도 질겁을 한다. 그러나 말괄량이 삐삐가 사는 마을에 심각한 악당이 없는 것 처럼, 차니가 사는 동네에도 심각한 어른들은 없다.





이 책은 만동화라는 새로운 형식을 취하고 있다. 동화책이되 어른들이 그린 숙련된 일러스트가 아니라 어린이가 그린 만화컷들을 사용하고 있다. 읽다 보면 만화인지 동화인지 실제 스토리인지 허구의 스토리인지 헛갈리기도 하다. 신선하지만 자연스럽다.





"행복한 어린 만화가 차니 이야기"라고 한마디로 말하면 좋겠다. 사실 아직 어린이의 마음을 어느 구석에서 버리지 못하고 있는 나로서는 차니가 참 부럽기도 하다. 어린 시절부터 만화가의 꿈을 자연스럽게 학교와 동네에서 키워나가고 스스로 만화를 그리면서 자신있어하고 행복해 하는 차니의 모습.





어린이는 어린이면서도 존중받아야 한다. 어리다고 자신의 진정한 꿈을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는 어리석지 않다. 그런 어린이의 바람직한 자기 '길찾기'를 보여주는 책이 바로 이 <<괴짜 만화가 차니>>가 아닐까 한다. 교육학적으로 보았을 때도 어린이를 자아를 가진 한 명의, 어른과 같은 질량을 가진 개체로서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 이책이 표방하는 숨겨진 그런 의미는 나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 학업에 찌든 어린이들이 이 책을 읽고 마음의 여유와 휴식을 갖고 자신이 원하는 것, 자신의 꿈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근데.. 왜 '괴짜 만화가'일까? 그건 책을 보면서 여기저기에 자유롭게 그려진 차니의 만화컷들을 보면서 알아보시라. 이쑤시개에서조차도 만화적 상상을 보여주는 차니의 작은 그림들은 소소하지만 큰 울림을 주는 재미를 느끼게 해줄 것이다. 사실 이 책을 보는 가장 큰 재미는 어린이가 직접 그린 만화들이다. 만화를 전공하는 사람들이 보더라도 신선한 충격을 받을 것 같다.





만화만 그려대던 차니는 어떻게 엄마의 반대를 무릅스고 계속 자기의 꿈을 향한 도전을 멈추지 않게 되었을까? 이 책의 결말은 현실과 허구가 교묘하게 맞물린다. 계속 책을 읽어 가면서 결말을 상상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모든 위인들이 큰 역경을 극복하면서 위인으로 거듭났다고 하는데 이 작은 소년은 어떻게 자신이 하고 싶은 소망을 이루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게 되었을까? 그 과정을 차근차근 읽어 가다 보면, 앞으로 만화가를 꿈꾸는 어린이들에게도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정석적으로 "꿈을 이루는 방법"을 알게 해줄 것 같다.





아마도 이 책이 제시하는 주제는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책의 한 구절을 소개해볼까 한다.


"만화는 마법같은 거야. ....(중략)...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도중에 그만두면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단다. 꾸준히 할 것. 될 때까지 계속 노력할 것. 무엇보다 즐겁게 할 것. 그렇게만 하면 차니는 최고의 만화가가 될 거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