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 리쿠를 처음으로 만났던 건.."밤의 피크닉"이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여타의 다른 일본 작가들과 달리 이 책에서는 안타까운 순수함 같은 것이 느껴졌었다. 왠지 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소망함이라고나 할까.
이전에도 무라카미 하루키 같이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글이나 요시모토 바나나 처럼 사물에서 혹은 장소에서 오는 단순한 감흥 같은 것들을 일깨워주는 글들에 대해서 남모르는 기쁨을 느끼고 있었지만 온다 리쿠라는 이 작가는 하루키와 바나나를 묘하게 섞어놓은 듯 하면서도 전혀 다른 느낌.. 밤의 피크닉을 다 읽었을 때 내 맘속에 피어나던 아련한 그리움 같은 것들은 이 작가를 기억해둬야 할 이름으로 내 머리속에 각인시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몇달 후, 신간 구매목록을 작성하기 위해 인터넷 서점을 서핑하던 중 나는 온다 리쿠의 신작을 발견하게 되었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 .. 왠지 제목에서부터 미스터리어스한 느낌과 밤의 피크닉을 접했을 때의 기분 좋은 아련함이 떠오르면서 마구 구매욕구를 충동질했다.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돈을 주고 사는 것보다 서점에 서서 읽거나 도서관을 주로 이용했던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만큼 강렬한 충동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삼월"은.. 내 손안에 들어와 있었다.
"삼월"은 동명의 책을 둘러싼 네 가지의 미스테리어스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전설로만 전해져 내려오는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제목의 수수께끼 같은 책. 책 속에 살아숨쉬고 있는 에피소드들 하나하나가 사람을 묘하게 자극한달까. 아무에게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를 건드려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언뜻 언뜻 섬뜩함을 느끼면서 그것이 책 때문이 아니라 내 자신 속에 아무도 모르게 감춰두었다고 생각했던 음침함이라는 것을 깨달아 가는 기분.
"삼월"을 읽으며 나는 온다 리쿠를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느낌을 가진 사람이 나 혼자만이 아니었던 듯 왠지 최근에 온다 리쿠의 여러 작품들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오고 있다.
"삼월"의 네 가지 에피소드 중..두 가지 에피소드를 확장, 발전, 변형 시킨 이야기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와 "흑과 다의 환상" 그리고 밤의 피크닉과 삼월이 묘하게 얽힌 듯한 소설 네버랜드.
온다 리쿠의 데뷔작 여섯번째 사요코, 책을 읽으면 그 책의 내용을 모두 기억하는 등 다양한 초능력에 관한 판타지적 이야기 도코노시리즈 빛의 제국 그리고 굽이치는 강가에서 라는 조금 독특한 제목.
밤의 피크닉 이후.. 온다 리쿠의 책을 모두 샀다..
왠지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 같은..
읽을 때마다 새롭고 신비하고 놀랍고 섬뜩한 느낌을 주는 기묘한 책. 온다 리쿠의 책 속에서 나는 태고적부터 간직해 온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내 마음 속 어딘가의 한 부분이 사정없이 까발려지는 느낌이 든다. 그 느낌은 어딘가 모르게 시원하기도 하고 어떨때는 부끄럽기도 하다. 온다 리쿠의 책을 갑자기 구매하게 된 것도 그런 느낌 때문일테지..
내가 글을 쓰고 있다면..글을 쓴다면 온다 리쿠처럼 쓰고 싶다..
사람이라는 것이 언제나 선한 생각만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악한 쪽에 가깝다고 할까. 하나님께서 선하게 창조하셨지만 원죄를 통해 악해졌다. 그래서일까. 온다 리쿠의 책에서는 평범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죄악을 짊어진 인물들이 항상 화자이고 등장인물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들이 결코 녹록치 않기에 자신을 포장하고 본모습을 가면으로 애써 감춰가며 위선 속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을 온다 리쿠는 설명해주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나조차 모르는 내 안의 악하고 더러운 부분..
내가 알고 있으면서도 사회적 지위와 위치 때문에 드러내지 못하는 불성실하고 잔인한 부분. 온다 리쿠의 책을 읽으며 그런 사람이 나 하나뿐만은 아니구나. 다른 이들도 나처럼 똑같이 가면속에서, 자신을 감추며 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에 맘이 편해지는 면도 있는 것 같다.
아마..앞으로도 쭉 온다 리쿠의 책은 구매하고 싶은 충동을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이번 월급을 받고도 금방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흑과 다의 환상, 네버랜드를 샀으니까. 그리고 다른 책들.. 여섯번째 사요코와 빛의 제국, 굽이치는 강가에서를 살 수 없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말이다.
내 이런 느낌을 지금 써두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온다 리쿠. 닮고 싶은 작가. 내면을 파헤치는 작가. 인간 본성의 어두움을 스스로 깨닫게 만드는 작가. 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