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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 ㅣ 레전드 시리즈 1
마리 루 지음, 이지수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하루가 지난다는 건 새로운 24시간이 온다는 의미잖아. 그리고 또 뭐든지 새로운 가능성이 생겨난다는 뜻이기도 해.
사람은 순간에 살고 순간에 죽지. 그날그날을 열심히 즐기며 사는 거야."
트와일라잇 시리즈, 헝거게임 시리즈, 윙스 등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독자들이 아끼는 판타지 소설들을 많이 출간하고 있는 북폴리오 에서 또 새로운 작품을 내놓았다. 제목은 무려 "레전드!!" 전설. 이라는 뜻이다. 마치 헝거게임 내의 11구역 조공인이었던 루를 연상시키는 이름의 마리 루 작가.
레전드에서는 모든 것이 강력하게 통제되는 또 다른 미래세계를 그리고 있다. 책속에 등장하는 국가는 리퍼블릭이라는 이름의 사회인데, 이곳에서는 10살이면 모두가 일정한 트라이얼 이라는 이름의 테스트를 받게 된다. 트라이얼의 만점은 1,500점이며 1,300점 이상은 리퍼블릭의 군대와 각종 주요기관에서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하게 되지만 1,000점 이하의 사람들은 국가저해요소로 규정되어 어딘지도 모르는 수용소로 끌려가게 된다.
여기 "데이"라는 이름을 지닌 한 소년이 있다. 트라이얼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실험대상으로 전락했다가 병원 지하의 시체 안치실에 버려졌으나 생명을 부지하고 나와 지금은 리퍼블릭의 내부에 숨겨진 아무도 모르게 진행되는 음모를 밝히려고 노력하고 있다.
여기 또 한 명의 소녀가 있다. 그녀는 박사이자 과학자인 부모님 밑에서 자랐지만 부모님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인해 목숨을 잃은 뒤, 장교인 오빠와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트라이얼 테스트에서 무려 1,500점. 그러니까 만점을 받은 리퍼블릭에서 유일한 인물이다. 소녀의 이름은 준. 준은 대학에서 늘 사고뭉치 취급을 받는다. 그리고 한 사건으로 인해 준의 오빠가 데이에 의해 죽게 되는 일이 발생한다. 이 일로 군에 최연소 픽업을 받게 된 준은 데이를 찾아 복수하려는 일념을 품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준은 놀라운 리퍼블릭의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
마치 헝거게임의 캐피톨 같은 국가 느낌의 리퍼블릭, 한편으로는 인카세론이 생각나기도 하였던 것은 인카세론의 감옥에서 태어난 소년과 교도소장의 딸이 한 마음을 품게 되었던 것처럼 각자 전혀 다른 환경의 소년 데이와 소녀 준이 만나서 교감을 하게 되는 스토리 때문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데이와 준의 싸움이 블러드 레드 로드나 헝거게임의 주인공처럼 강인하고 내면의 힘을 가진 캐릭터들이라는 점에서 그동안 북폴리오에서 출간해온 작품들이 많은 부분에서 일맥상통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3부작이라고 하니 앞으로 또 이들에게 어떤 일들이 전개될지도 궁금하다.
그리고 베일에 가려진 리퍼블릭의 음모를 준과 데이가 합심하여 끊어낼 수 있을지 또 그 과정이 어떻게 펼쳐질지 다음권을 기다리는 마음이 생겼다.
특히 트라이얼 테스트 점수로 인생이 결정되는 리퍼블릭의 이야기가 우리 학생들이 겪고 있는 내신, 등급, 수능 등의 점수에 의해서 그들의 삶이 결정되는 것처럼 점점 양극단화되어 가는 사회를 그대로 묘사하는 것 같아서 더욱 더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지금도 수많은 아이가 자살을 하고, 자신의 생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스트레스를 약한 아이에게 집단적인 폭력과 따돌림을 통해서 풀고 있는 이 현실이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이는 것은 왜일까.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조기교육을 한다는 명목으로 수많은 학원을 보내 다섯 살짜리 아이가 일기에 학원을 다섯개나 다녀야 해서 죽고 싶다고 일기를 썼다는 등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리는데, 이렇게 가다가는 우리 나라 역시 리퍼블릭보다 더욱 삭막한 국가로 변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이다. 사람은 누구나 존귀하게 태어나며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과 각 사람만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런 것들을 인정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선행학습만을 강조하고 대학입시에 목숨을 걸게 하고, 그런 사회의 분위기가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 어쩌면 요즘 묻지마 범죄가 점점 흉포한 양상으로 전개되며 늘어나는 까닭도 이러한 숨쉴 틈 없는 환경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준처럼, 데이처럼 우리 아이들이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지각있는 누군가가 교육정책을 제대로 세웠으면 좋겠다. 한 해 한 해 모르모트처럼 이거 했다 저거 했다 하면서 점점 아이들의 고통만 늘리지 않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레전드를 읽으면서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길 기대했는데 곧이어 출간될 두번째의 혹은 세번째의 레전드에서는 답답한 마음이 뻥 뚫리는 결말이 있길 바래본다.
"사람은 빛 속에 살려고 노력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