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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멘트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1년 10월
평점 :
"사랑은 늘 가장 중요한 발견이다. 계속 줄어드는 인생의 시간. 그 시간의 흐름을 줄이는 사랑이 없다면,
인생이라는 머나먼 여정에 진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 없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삶을 견딜 수 있을까?"
작가인 토마스 네스비트는 어느 날 아침 20년도 넘게 해 오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을 이혼서류를 아내인 잔으로부터 받는다. 생활리듬이 완전히 달라 아내와 딸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한 것을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큰 쇼크를 받은 토마스는 혼자 훌쩍 여행을 떠난다. 텅 빈 스키장에서 혼자 활강을 시작한 토마스는 눈 앞에 나타난 나무를 들이받을 뻔하다가 겨우 살아나게 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토마스는 유책배우자로 기재되어 있는 자신의 이혼서류를 보며 수없이 싸워대던 부모님을 떠올린다.
잠시 후 그에게 도착한 소포 하나. 소포 위에 쓰여진 이름 페트라 두스만. 그는 첫눈에 자신의 사람이라고 느꼈던 그 때의 시간을 회상하는데..
첫 책을 출판하고 여행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할 즈음, '베를린'이라는 책을 기획하여 서독과 동독의 경계인 베를린 장벽 앞으로 글을 쓰러 간다.
여행기를 씀과 동시에 생활비 해결을 위해 국영방송인 <라디오리버티>에서 일을 얻으러 갔다가 그녀를 만난다. 원고 번역가였던 페트라 두스만.
운명적으로 만난 베를린에서의 룸메이트 게이 화가인 알스테어와 그의 일생에 유일한 한 번뿐이었던 뜨거운 사랑의 기억 페트라 두스만에 얽힌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전작인 <빅 픽처>, <위험한 관계들> 에서도 느꼈지만 독자의 구미를 정확히 알고 있고, 글의 호흡이라던가 이런 것들도 참 탁월한 감각이 있는 작가라는 생각을 했다. 단순한 흥미 위주에서 더하여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그의 책이 그래서 읽는 내내 심심치 않고 즐거울 수 있는 것 같다. 필생의 사랑.. 이라는 것이 정말 존재할까? 그리고 이런 식으로.. 필생의 사랑은 완벽하게 그 사랑을 이룰 수 없는 걸까?
어쩌면 필생의 사랑이라고 느꼈던 것도 결혼을 하고 생활이 되면 그냥 평범하고 무덤덤한 사랑이 되어버리는 걸까?
어떤 여자에게도 충실할 수 없었던, 부모님에게서 받은 상처로 가정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한 평범한 남자가 그저 이루지 못한 한 번의 사랑을 필생의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던 걸까? 어쨌든 사랑이라면.. 사랑은 뭔가 특별해야 하는 것일까..?
그냥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순간.. 지나치는 사람들, 그 사이에서 찾을 수 있는 사랑. 혹은 오랜 시간 사랑했지만 너무나도 사랑해서 마치 순간처럼 느껴지는 사랑.
글쎄... 나는 이 책의 제목인 Moment 외에도 이 책의 핵심구절은 사랑은 늘 가장 중요한 발견이라는 것..인 거 같다.
p.568
우리가 순간을 붙잡지 못한다면 그 순간은 그저 '하나의 순간'에 불과할 뿐이야. 그런 인생은 단지 의미 없는 시간의 흐름일 뿐이라 생각해. 주어진 생명이 다할 때까지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뿐인 순간들의 합.
p.573
인간도 도시처럼 겉모습을 싹 바꿀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을 존재하게 만든 과거의 이야기를 바꿀 수는 없다.
복잡한 인생의 순간순간이 수없이 모여 이루어진 이야기. 즐거움과 두려움, 의욕과 무기력, 빛과 어둠.
그동안 살면서 겪은 일들이 모여 존재하는 게 인간이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그 모두를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
우리에게 결핍된 것, 간절히 바랐지만 결코 손에 넣을 수 없었던 것, 전혀 바라지 않았지만 결국 가지게 된 것, 찾아내고 잃어버린 것, 그 모두를.
p.574
우리는 운명을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긴다. 하지만 운명을 조종하는 건 언제나 자기 자신이다.
자기도 모르는 새, 자신의 바람과 달리, 우리는 자기 자신의 운명을 조종한다.
아무리 끔찍한 비극과 맞닥뜨려도 우리는 그 비극에 걸려 넘어질지 아니면 넘어서서 앞으로 나아갈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비극에 맞설지 피할지도 선택할 수 있다.
p.590
어쨌든 인생은 선택이다. 우리는 늘 자신이 선택한 시나리오로 스스로를 설득해야 하고, 앞으로 전진해야 하고,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어야 한다. 아니, 적어도 우리에게 주어진 이 길지 않은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들어야 하고, 어느 정도는 뜻대로 완성해 가야 한다.
p.591
이제 나는 고속도로에 있다. 어둡고 추운 밤이다. 이제 나는 혼자 차를 몰고 북쪽으로 가고 있다. 이제 나는 혼자다.
고속도로는 넓고 깨끗하다. 몇 시간 뒤면 동이 틀 것이다.
하루, 또 하루. 수많은 가능성, 수많은 권태,
선택이 전부일 수도 있다. 선택이란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해피엔드로 끝날 수도 있다. 비극으로 끝날 수도 있다.
그러나 길은 늘 앞으로 뻗어 있다. 우리는 싫든 좋든 그 길을 지나가야 한다.
우리는 그 길을 어떻게 지나가는가? 지나가는 도중에 누구를 만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