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뿌리
김중미 지음 / 검둥소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동두천은 말이야. 사람들을 떠나보내지 않는 곳이야. 여기 살던 사람들에게 동두천은 특별한 흔적을 남기는 거 같아. 나는 여길 떠날 기회가 있었고, 얼마든지 여길 잊고 살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아니더라고. 너랑 너희 엄마, 해자가 여기 동두천에서 질기고 독하게 사는 동안, 윤희 언니가 미국에서 눈물겹게 사는 동안 나도 그렇게 아프면서 살았어. 왜냐하면 동두천은 현실이거든. 이 땅 어디를 가도 지워버릴 수 없는. 그래서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된 거야."

"나는 아주 어린 나이에 세상이 음지와 양지로 나뉘어 있다는 걸 알았다. 그 때는 보산리 기지촌과 생연리가 바로 그 음지와 양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두천을 떠나 좀 더 자란 뒤에는 동두천이 이 땅의 음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자란 뒤에는 이 세상의 양지는 모두 음지를 딛고 서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음지와 양지는 서로 갈라놓을 수 없는 한몸이었다. 그랬다. 동두천은, 그 그림자는 바로 내 자신이었다."

괭이부리말 아이들, 꽃섬고개 친구들의 작가 김중미 씨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퍼 낸 책 한 권.
동두천 미군부대 옆 기지촌과 양색시와 흔히들 튀기라고 불리는 혼혈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중학교 2학년때까지 동두천에서 살다가 이사를 갔었다고 하는 김중미 씨는 그곳에서 경험했던 여러가지 일들과 그 이후의 일들, 그리고 대한민국이 성장하면서 겉으로 새마을운동과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내던 그 시기에 그 성장을 뒷받침하던 희망없이 우울하고 불우해 보이는 그들의 삶을 통해 우리의 성장이 단지 행복한 바탕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동두천이나 이태원 같은 미군부대가 집결해 있던 곳의 희생들이 얼마나 컸는지도 보여주고 있고. 여전히 이주노동자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코시안들에 대한 나 아닌, 남에 대한 편견으로 똘똘 뭉친 이 사회의 한 단면을 잘 드러내 주고 있는 것 같다. 나 역시도 이러한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이고 하다못해 지하철만 타도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우루루 타고 있으면 왠지 몸이 사려지고 움찔거리게 되니..나도 얼마나 편견에 사로잡힌 인간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들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니..참 이중적인 마음인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뮤지컬 빨래의 이주노동자 솔롱고와 나영이 겪은 일들이 생각나기도 했고. 드라마 슬픈연가에서 기지촌에 양색시 마담 엄마를 두었던 권상우의 슬픈 눈빛이 생각나기도 했다. 이것 또한 우리의 모습인 것을.. 감추고 덮고 숨기고.. 결국 사람을 사람이지 않게 하고..인간을 인간이지 못하게 하는 손가락질과 각종 편견들..마음을 달리 먹는다고 해도 실제 행동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에..그냥.. 아파하고. 조금 더 이해하려 노력하는 방법밖에 없는 게 아닐까 싶다.
김중미 작가의 이 책은..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 셈이라고 해야겠다.
여전히 편견에 사로잡힌 인간이어서 그런 내가 꽤나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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