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무의 일기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 지음, 이재형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트리스탄과 이졸데 이야기는 중세 유럽의 최대 연애담이다. 12세기 중엽 프랑스에서 켈트인들의 전설을 소재로 하여 쓰여진 이야기인데, 그 사랑과 죽음의 강렬함과 아름다움 때문에 전 유럽에 보급되고 서구 연애문학의 전형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바그너의 악극으로도 유명하다.

 

이 책의 저자인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는 1960년 니스에서 태어났으며 1994년 <편도승차권>이라는 작품으로 프랑스 최고 문학상인 콩쿠르 상을 수상한 작가이다. 그의 소설들은 2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는데, <금지된 삶>, <반 기숙생>, <언노운>, <지미의 복음>, <빛의 집>, <결혼 입회인들> 등 다양하다. 그의 2011년 최신작인 『어느 나무의 일기』는 3백년을 살아온 나무(트리스탕)를 주인공으로 하는 놀랍고 감동적인 이야기로, ‘나무의 해’를 선포한 유네스코 프랑스와 공동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이를 널리 알리는 등,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에 관한 메시지를 독자와 사회에 전하고 있는 작품이다.

 

역자인 이재형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상명대, 강원대, 한국외국어대에서 강사로 일했으며, 현재는 프랑스에 머물며 프랑스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중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나=나무’의 이름은 트리스탕이며 삼백년이 다 된 배나무이다. 돌풍에 의해 마침내 자신에게 이름을 지어준 조르주 란 박사의 정원에 쓰러지면서 그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트리스탕의 옆에는 이졸드라는 나무가 한 그루 더 있다. 이졸드의 꼭대기에는 안테나가 세워져 있는데, 이는 사람들에게 TV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세상의 문화, 정보, 오락등의 원천을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한다. 트리스탕은 한 자리에 서서 세계의 흐름을 바라보고, 인간들의 감정을 읽어내며 교감하기도 한다. 역사를 고스란히 읽어내고 겪어낸 것이다. 죽어서야 사랑을 이룬 전설의 연인들인 트리스탕과 이졸드라는 이름을 갖게 된 나무들. 이들의 이야기가 전설적인 연인들의 이름을 갖게 된 이유가 책의 말미에 나와 있어 아하! 하고 이해의 장을 넓혀준다.

 

프랑스 궁정에 의해 살해당한 루이 15세의 사생아였던 쌍둥이들의 뱃속에 있던 독이 묻은 배의 씨앗에서 자라난 나무들이 바로 그들이었던 것이다. 어린 두 영혼이 죽음의 씨앗에서 삶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는 그들 자신이(쌍둥이) 지상에 남아 있기 위하여 나무를 통해 자기 생각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묘한 매력에 빠져 든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던 것 같다. 비록 나무의 몸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어느 특정한 한 사람의 이야기로 읽혀진 것 말이다. 시공을 넘나들며 트리스탕의 의식 속을 여행하는 재미가 역사의 현장에 내가 서 있는 것처럼 실감났던 이유도 그 나무에 숨겨진 그 비밀스런 탄생의 사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작가가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바로 자연과 인간의 오묘한 공존에 관한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자신의 판단이나 감정을 상대방에게 전혀 강요하지 않는 트리스탕의 균형적인 의식은 더욱 감동적이었는데, 내가 본받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중세 최고의 연애담이라고 일컬어지는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여 작가가 그려낸 세계는 온 인류를 아우르는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낯 선 작가의 낯 선 작품을 통해 뜻밖의 보물을 건져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유쾌하다. 소설임에도 픽션같은 느낌이 강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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