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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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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읽어야지 생각만 했던 작가 필립 로스. 울분을 읽다 내 스타일이 아니라 책을 덮었는데, 이번 기회에 네메시스로 그의 작품 세계 푹 빠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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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인을 기다리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4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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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쿳시의 소설 <야만인을 기다리며>는 사실 정여울 작가의 소개글을 읽고 알게 되었다. 그녀는 이 소설을 "이해할 수 없는 타자에 대한, 이방인에 대한 불가능한 사랑의 아름다운 통찰, 비극적인 통찰"이 담긴 소설이라고 소개한다. 그래서 나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정여울 작가의 소개글이 의아하게 다가온다. 사랑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혹시 제국의 치안판사 '나'가 눈먼 야만인 여자를 향한 감정을 사랑으로 바라보는 건가. 이때부터 나는 이 소설에 대해 혼란을 갖기 시작한다. 이해할 수 없는 타자에 대한 사랑을 그린 소설로 읽어야 할지, 정치소설로 읽어야 할지.


사실 나는 이 소설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어떻게 읽어내야 할지 모르겠다. 문장은 짧고 명료하지만 은유적이고 모호하게 느껴졌다. 갈피를 잡을 수 없어 더듬더듬 읽어나갔다. 무엇하나 확실하게 느낄 수 없었다. 그저 눈보라가 치는 회색의 변경 시내가 생각날 뿐이다. 시내에서 동냥하는 야만인 여자를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온 치안판사는 그녀와 함께 생활한다. 그녀의 몸을 씻겨주고, 어루만지며 "황홀경"에 빠지고, "도끼로 찍힌 것처럼 잠에 압도"되기도 한다. 그는 그녀를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온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동정심 때문인가, 낯선 여인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을까.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변태적)욕망에 이끌려 그녀를 데려 온 것일까. 어느 날 그는 그녀와 함께 하는 생활을 하다 그녀를 야만인 부족에게 데려다주려고 한다. 자신을 수행할 세 명의 사람과 함께. 지난한 여정이다. 열이틀 동안이나 되는 여정의 끝에 드디어 만난 야만인 부족에게 그녀를 떠나보낸다. 허무하게. 그녀와 지낸 몇 달 동안 그는 "그녀의 몸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처음부터 나의 욕망은 그런 방향이 아니었다."라고 말한다. 위선적이다. 눈먼 야만인 여자를 부족에게 데려다주고 변경으로 돌아온 그는 반역행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히고 그 뒤로는 온갖 고문에 시달린다. "한가로운 변경에서 은퇴할 날을 기다리"는 제국의 치안판사에서 하루아침에 반역자로 몰린 그는 수난을 당한 뒤 변경 시내를 떠돌아다니는 비렁뱅이가 된다. 그의 자기희생(그렇게 여겨지는 것이었다면)은 야만인들을 구원해주지 못했다. 그의 수난에 조소가 떠오른다. 나는 소설을 읽으며 그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확실하게 구분하고 싶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그는 나를 불편하게 하는 존재였다. 소설을 읽고 난 뒤에 확실하고 선명하게 잡히는 건 없었다. 소설의 배경인 변경의 시내가 뿌옇게 떠올랐다. 눈보라가 치는 회색의 광장이. 한번 읽어서는 이해할 수 없는 소설이다. 나는 단순히 제국과 야만인의 이분법적 대립을 이야기한 소설이라고 이해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이해할 수 없는 이방인에 대한 사랑이야기도 아닌 것 같다. 나는 이해되지 않는 혼란스러움을 남겨둔 채 이 소설을 내버려두고 싶다. 섣부른 해석은 피하고 싶다.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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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작가는 말했다. 밑줄 친 데가 하나도 없는, 읽으면서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는 책을 최고의 소설이라고. 나에게도 그런 책이 한 권 있는데, 바로 《위대한 개츠비》이다. 작가의 말대로 나는 밑줄 그을 새도 없이 읽어나갔다. 내리막길에서 달려내려가며 내 의지대로 쉽게 멈춰지지 않는 다리처럼 독서를 멈출 수 없었다(좀 과장스러운 비유일까). 내게 책읽기의 강렬함을 일깨워준 책. 하지만 강렬했던 독서 경험은 추억이 되어버렸다. 그 뒤로 나는 (안타깝게도!) 어떤 책을 읽어도 그러한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없었다. 많은 책들을 사고 빌렸지만,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던 만큼의 몰입은커녕 눈으로 글자를 훑을 뿐이다. 나는 책과 나 사이에 “모종의 화학적 반응”(p.204 다니엘 페나크, 소설처럼, 문학과 지성사)이 일어나길 기다리고 있지만, 좀처럼 그런 반응은 찾아들지 않는다. 기쁨에서 쾌락으로 치솟던 독서가 (읽기의)괴로움, 강박, 의무감으로 변해가고 있다. 아, 괴롭다. 언제쯤이면 나는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던 그 강렬한 독서를 다시 할 수 있을까. 언제쯤이면... 오라!! 문학이여!!!!! 


아, 저는 김석희씨가 번역한 위대한 개츠비(열림원)를 읽었습니다. 계속해서 개츠비 읽기에 실패하신 분들은 김석희씨가 번역한 《위대한 개츠비》를 추천합니다.


다 읽었는데 밑줄을 친 데가 하나도 없고, 그럼에도 사랑하게 되는 소설. 읽으면서 한 번도 멈춰 서지 않았다는 거잖아요? 걸린 데가 없었다는 거죠. 그런데도 왠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아름다운 것을 보았다는 느낌을 받는 거예요. 남에게 요약하거나 발췌하여 전달할 수 없다고 느낄 때, 그런 소설이 최고의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p.92


김영하, 《말하다》,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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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당연하게도, 가장 먼저 할 일은 쓰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쓰는 것을 계속해나가야한다. 누구의 흥미를 끌지 못할 때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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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 시공사 베른하르트 슐링크 작품선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시공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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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달에 걸린 15살의 미하엘은 "어느 월요일에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구토를(p.9)" 한다. "토하는 것 역시 내 인생에서는 처음 있는 일(p.10)" 이라고 하는 미하엘은 낯선 여자의 손길을 느낀다. 바로 한나다. 한나와 미하엘의 첫만남은 이렇게 시작된다. 한나의 집에 꽃을 들고 찾아간 미하엘은 그곳에서 당혹스러운 감정에 휘말리고 마는데, 그것은 그녀가 미하엘과 함께 외출하기 위해 부엌에서 옷을 갈아입는 장면을 목격한 뒤부터다. 


그녀는 한쪽 다리로 균형을 잡고 그 다리의 무릎 위에다 다른 쪽 다리의 발꿈치를 올려놓고 몸을 앞으로 구부리고서 돌돌 만 스타킹을 발가락 끝에 끼우고는 발가락 끝을 위자 위에 올려놓은 후 스타킹을 장딴지를 거쳐 무릎을 지나 허벅지까지 끌어올리고는 옆으로 머리를 숙여 스타킹 밴드에다 고정시켰다. p.22


나는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 그리고 처음에는 맨살로 창백한 모습을 보이다가 스타킹 속에서 비단처럼 은은하게 빛나던 그녀의 다리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p.23


그녀가 옷을 갈아입는 장면을 목격한 후 알 수없는 감정에 휘말린 그는 당혹감에 한나의 집을 뛰쳐나왔다. 일주일 뒤 다시 한나의 집을 찾은 미하엘은 그곳에서 처음으로 그녀와 육체관계를 맺는다.

"바로 이것 때문에 너는 여기 온 거야!"

"나는......" 

(...)

우리는 너무 가까이 서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벌거벗은 몸 앞에 완전히 압도당했다. "당신은 정말 아름다워요!"

(...)

그녀는 웃으면서 양팔로 나의 목을 끌어 안았다. 나도 그녀를 양팔로 끌어안았다. p.37


나는 두려웠다. 신체적 접촉이, 키스가, 그리고 내가 혹시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쩌나, 내가 그녀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어쩌나 하고. 그러나 우리가 잠시 끌어안고서, 내가 그녀의 몸 냄새를 맡고 그녀의 체온과 힘을 느끼고 나자,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손과 입을 통한 몸의 탐색, 입술들의 만남. p.37


첫번째 관계를 맺은 후 그녀에게 흠뻑 빠진 미하엘은 날마다 마지막 수업을 빼먹은 뒤 그녀를 찾아갔다. 그들의 사랑은 "책 읽어주기, 샤워, 사랑 행위 그러고 나서 잠시 같이 누워 있기. (p.60) 그들의 사랑은 매일 이런 만남의 의식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한나와 미하엘은 부활절 연휴에 나흘 간 자전거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한나와 미하엘은 서로 사소한 오해하나로 크게 싸우게 된다.(이 사소한 오해와 더불어 앞의 정황을 살펴보면 그녀가 혹시 글을 읽을 수 없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게 된다.) 

"어떻게 그렇게 아무 말도 없이 간단히 가버릴 수 있어!"

(...)

"건드리지 마." 그녀는 원피스 위에 둘렀던 폭이 좁은 가죽 허리띠를 손에 들고 있다가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면서 내 얼굴을 향해 내리쳤다. 내 입술이 찢어졌고, 피 맛이 느껴졌다. 아프지는 않았다. 나는 정말로 깜짝 놀랐다. 그녀는 허리띠를 다시 한 번 높이 치켜들었다. p.75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예요? 왜 그렇게 화가 났었어요?"

(...)

"뭐가 잘못됐어요, 뭐가 잘못된 거예요? 넌 항상 멍청한 질문한 하는구나. 넌 그렇게 아무 말도 없이 간단히 가버리는 게 아냐."

"하지만 나는 당신한테 쪽지를......"

"쪽지라고?" p.76

미하엘은 한나와의 책 읽기와 샤워, 사랑 행위 그리고 나란히 눕기로 이어지는 그들의 의식을 그대로 유지하는 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가 고등학교 2학년으로 진급한 후에는 한나와 학교, 공부 주변만을 맴도는 생활에서 벗어나 있었다. 미하엘은 또래의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잦아졌고 자신의 또래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 점점 더 중요해져갔다. 그리고 그런 시간들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런 기분은 싹 사라졌다. 어느 순간 나는 숙제를 하고 배구를 하고 떠벌리며 여자애들하고 시시덕거리는 수영장의 여느 오후와 다름없는 분위기 속에 빨려 들어가 있었다. 우연히 고개를 들어 그녀의 모습을 발견한 그때 내가 무슨 일에 몰두하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녀는 이삼십 미터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 그녀는 내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나도 돌아보았다.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그녀의 얼굴 표정은 읽을 수 없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그녀에게로 달려가지 않았다. (...) 우리는 왜 여태껏 한 번도 우연히 만난 적이 없었던 걸까, 그리고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하는 등의 의문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다음 순간 나는 일어났다. 일어서느라 그녀에게서 시선을 뗀 그 짧은 순간에 그녀는 사라지고 없었다. p.106-107

수영장에서 마주친 한나와 미하엘.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한나가 오늘 아침에 전화를 걸었어요. 그래도 제때 전화를 했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을 대신 투입할 수 있었지요. 전화로 이젠 안 나올 거라고 하더군요. 영원히."


"2주 전에 그녀는 바로 여기에 앉아 있었어요. 지금 당신이 앉아 있는 의자에 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전차 운전사 교육을 받도록 해주겠다고 제안을 했지요. 그런데 그녀는 모든 것을 내팽개친 겁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법학생이 된 미하엘이 다시 그녀를 만난 것은 법정에서였다. 



책을 읽으면서 한나가 안타깝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다. 미하엘이 진즉에 그녀가 글을 읽을 수 없고, 쓸 줄 모르는 사람인 걸 알았다면, 그녀를 위해 글을 가르쳐 주었다면 그녀는 수용소 감시원이 아닌 전차 운전사로 평범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하지만 (소설 속)운명은 그렇게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지? 그리 쉽게, 주인공들을 행복한 삶을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지?(그럼 소설이 재미가 없으니깐.) 한나는 무지했고, 또 성실했다. 그녀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그저 자신의 임무에 충실했다. (여기서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뭐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그렇다고 그녀가 행한 일들을 단지 그녀가 무지했다는 이유만으로 용서할 수 있을까. 15세 소년과 36세의 한 여인의 사랑이야기가 이렇게 복잡하게 흘러가게 될지 누가 알아겠는가. 이 소설 이야기는 옳고/그름을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이야기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독자들은 '도덕적 판단을 중지'(밀란 쿤데라, 「배신당한 유언들」, 민음사)시키는 이 소설 앞에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 것일까.


15살과 36살의 사랑에 놀라고, 유대인 수용소까지 등장하니 더 놀랄 수밖에.

이 두 놀라움이 이야기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전개되는 소설을 읽으면서 놀라움이 먹먹함으로 그리고 씁쓸함으로 변하는 과정을 한번 느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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