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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여행 에세이, 개정판
김형경 지음 / 사람풍경 / 2012년 3월
평점 :
김형경 작가의 ‘사람풍경’을 한 마디로 표현하라면 ‘공감’ 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그리고 잘 지은 잡곡밥과도 같다고 말하고 싶다. 작가는 자신이 두 발로 돌아다니며 보고 느낀 여행이라는 흰 쌀밥에 사람들의 마음을 이루는 키워드들을 알맞게 섞어서 정성스레 밥을 지었다. 특히나 작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이 책을 이루는 모든 문장에서 묻어나는 게 좋았다. 나는 정말 좋은 밥을 한 끼 먹은 것처럼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었다.
시중에 파는 정신분석학 책이나 심리학 책 중에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부류가 있는 데, 그 책들은 대체로 이런 형식을 띄고 있다. 사람들이 흔히 겪는 심리적인 문제나 고민거리들로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식의 질문을 만들어 각 장의 제목을 구성한 뒤 그러한 현상이 생기는 이유와 대처법을 적어놓은 책들 말이다. 대다수가 이러하다. 하지만 그런 책들은 글쎄, 마치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줄 것만 같은 전능한 제목과는 달리 마음에 잘 와 닿지는 않는 것 같다. 그 까닭은 저자 ‘자신’을 마치 이 문제들과는 별개인 사람처럼 배제시킨 채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얼굴 없는 해결 자처럼 수많은 고민거리와 문제들 뒤에 숨어서 해결책만을 제시하고 있다. 힘들어 하고 있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해답이 아니라 ‘공감’이라는 작은 숨통인데 말이다.
김형경 작가의 <사람풍경> 곳곳에는 작가의 여행담, 인간의 마음에 대한 얘기와 함께, 작가 자신이 내적으로 고통스러웠던 순간들, 그 때 그녀가 한 사유들과 결국 그 생각들이 다다른 종착점 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그래서 이 책에서 더욱 진정성이 느껴지고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려면, 자기 생각이 드러나야 하고, 자기 생각이 드러나려면 결국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데, 그건 어쩌면 작가가 전문 심리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 한 게 아니었나 싶다. 작가도 작품 서문에 “비전문가로서 편리했던 점은 어떤 이론이나 주장이든 마음에 드는 대로 내 것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라고 말한다.
어렸을 때 아프면 엄마는 내게 엄마만의 비법으로 나를 치료해주곤 했다. 감기 기운이 오기 시작 할 때에는 아침저녁으로 목을 소금물로 씻으라고 하셨고, 종기에는 무조건 고약을 붙여주셨는데 모두 진짜 효과가 있어서 내가 정말 싫어하면서도 맹신하는 치료법들이다. 그런데 현재 의학을 공부하는 학생인 내가 진짜 의사가 되고 나면 환자들에게 소금물로 목을 씻으라고 처방하거나 농양이 있는 부위에 고약을 붙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객관적이고 근거중심’이라는 것이 현대 의학의 본질이자 한계가 아닌가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예술가들이 부럽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작품을 통해 자유롭게 드러내면서 ‘공감’이라는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소통 법을 통해 사람들의 영혼을 치유한다.
공감으로 글을 열었으니, 작가가 공감에 대해 이야기 하는 부분을 인용해보려 한다.
“ 인간 심리와 행위의 배면에 대해 어설프게 이해하기 시작하던 초기에는 한동안 그런 고민을 했다. 친절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이익에 필요한 행동일 뿐이고, 칭찬은 소극적 시기심이거나 타인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려는 방어 의식이고, 연민이란 타인을 가엾게 여기는 우월감의 표현이며, 선행은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회적 보험 상품일 뿐이며, 그런 것들이 사실이라면 대체 타인과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고 관계 맺어야 하는 것일까. 그런 고민 끝에 만난 단어가 공감이었다.
공감은 연민이나 동감과도 구분되는 감정이라고 한다. 연민은 자신이 상대방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을 전제로 한 감정이고, 동감은 객관적 태도를 잃고 상대방에게 휩쓸리기 쉬운 감정이다. 반면 공감은 중립적이고 비판단적인 태도로 상대방의 내면을 고스란히 함께 느끼는 것이라 한다. 한 인간의 비통, 애착, 공포, 분노, 그리하여 인간이 그토록 나약하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느끼는 상태이다. 인정과 지지 역시 공감이 전제 되어야 실천할 수 있는 삶의 덕목일 것이다.”
사실 그런데 공감은 이 책의 스물일곱 개의 단원 중에서 단 하나의 단원의 주제일 뿐이다. 단지 개인적으로 그 단원이 특히나 와 닿았고, 내가 이 책을 처음부터 정독해 읽으면서 작가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며) 밑줄 그은 순간들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강조해서 얘기했을 뿐이다.
어쨌거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와 함께 내 마음 속의 의문들을 하나씩 풀어가는 재미에 빠질 수 있었다. 난제들을 모조리 풀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책 속의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 정신에 ‘정상’의 개념은 없으며, 생이란 그 모든 정신의 부조화와 갈등을 끊임없이 조절해 나가는 과정일 뿐임을 알게 되었다.” 정도? 나는 아무리 좋았던 책도 한 번 읽고 나면 다시 잘 읽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왠지 두고두고 또 읽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