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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갑이다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평점 :
이 책 제목은 처음에 들었을 때는 엄청 웃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까 내용은 웃기지는 않았다. 전혀 웃기는 내용이 아니었다.
미야베월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독특한 작품을 써온 작가는 이번에도 세상을 향한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민다.
이 책의 화자는 지갑이다.
주인님 또는 아가씨, 친구라 부르며 그들의 일상을 같이 동행해서 우리에게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려주는 지갑들이 주인공이다.
지갑이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게 정말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형사, 19살 직장여성, 초등학생 등등의 사람들이 처한 상황을 지갑들은 기막히게 묘사해간다.
나는 미야베 소설은 고구마 줄기랑 닮았다고 생각한다.
고구마를 캐보면 알겠지만 파다보면 계속 나온다. 그들은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어 고구마 하나를 캐면 두개 세 개가 되기 때문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어떤 하나의 사건으로 이어져 있고 - 뭐, 살인사건이다- 그들을 둘러싼 소용돌이는 태풍이 되어 커져간다.
그러고 보니까 두개 세 개 파다보면 어느 순간 고구마 산이 되는 것도 비슷하다.
태풍의 눈에는 과연 누가 있을까? 누가 범인일까?
읽다보면 결론은 좀 허무할 수도 있지만 나름대로 괜찮았다.
나는 여러 사람들 중에서 초등학생인 지갑의 이야기가 가장 좋았다.
좋은 것보다는 지갑과 함께 초등학생을 열렬히 응원했다고 해야 할까.
다 읽고 나니까 미야베의 모방범이 떠올랐다.
이 소설은 모방범의 원형이라 할 만큼 구조적으로는 비슷하다.
모방범은 나는 지갑이다에 비하면 블록버스터랄까. 더 커지고 더 세졌다. 더 진해지고 더 무거워졌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재미없다는 것은 아니다.
작가의 어린 시절을 보는 느낌이었다.
이미 어른인 사람을 알고 있는데 그 사람의 어린시절을 잠깐 훔쳐본 것 같은 느낌이다. 재미있었다.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