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 가장 짧은 영원한 만남 - 김형태 변호사 비망록
김형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한강북단을 넘어 용산을 몇 번이나 지나가면서도 큰 길의 그 넓은 공터가 용산참사의 현장인지 알지 못했다.

그 무간지옥을 겪고 나서도 대자본, 그 심부름꾼인 정권, 조합, 용역, 경찰, 검찰, 법원 아니 돈이 최고인 나와 우리 모두,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아무 제도도 바뀌지 않았다. 우리의 욕심도. 모두가 공범인 우리는 용산참사의 책임을 면제받고, 용산은 그저 책임질 사람이 없는 '참사'로 남았다. (p.162)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무슨 책임을 지녔었고, 무슨 책임을 면제받았을까.

 

 양평 생매장 사건, 치과의사 모녀 살인 사건, 젊은 이 넷을 바다에 빠뜨려 죽인 노인 사건, 서울 달동네 재개발, 용산참사, 최종길 교수 의문사 사건, 이내창 의문사 사건, 신호수 자살 위장 사건, JSA 김훈 중위 의문사 사건, 임수경·문규현 방북 사건, 비전향 장기수 이야기, 송두율 교수 사건, 재일 동포 간첩사건, 북파공작원 이야기, 인혁당·민청학련 재심, 보도연맹 사건, PD 수첩 광우병 보도 사건 등, 신문과 뉴스의 보도 그리고 형법과 헌법을 공부하면서 약간이나마 훑을 수 있었던, 한국 현대사를 뒤흔든 사건들을 맡았던 김형태 변호사가 비망록의 형식으로 쓴 책이다. 저자가 2001년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상임위원을 맡아 진상을 파헤친 사건들 이야기와, 1999년 10월 첫 특검이 출범하게 한 두 사건 중 하나,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의 검찰 특별 수사를 맡아 특검으로의 활동 이야기는 특히 흥미로웠다.

 

 참으로 답답한 사건들도 많았는데 민청학련 사건으로 대법원은 1974년 4월 8일 8명에 대한 사형을 확정했다. 놀라운 것은 선고 후 하루가 지나기 전에 처형이 끝났다는 사실이었다. 저자가 30년 후 재심 재판을 하며 압수한 사형집행 관련 공문서들을 보면, 대법원 판결이 선고되기도 전인 4월 8일 새벽 3시에 이미 군법회의 검찰부에 사형선고 통지가 접수된 걸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사형을 집행한 구치소에는 집행 후인 4월 9일 15시에 사형선고 통지가 왔다고 한다. 선고가 나기 전에 사형 통지가 나고, 통지도 오기 전에 집행한 것이었다. 재판도 없이 학살한 보도연맹 사건도 있다. 후 재심을 통해 국가로부터 민사 손해배상을 받았다지만 배상을 받았으면 받은 데로 끝이 나는 걸까. 애초에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에게도 책임이 생겼다가 면제되고, 사건들은 특별법에 의해 재심되어 배상 받고. 그럼에도 아직 많은 미결사건들은 언제쯤 그리고 어떻게 해야 설명되어야 하는 것들이 설명되는 것일까. 세상이 내 옆에서 굴러가는 것이 아니고 내가 눈을 감고 있는 것도 아니라면 나도 김형태 변호사처럼 있어야 하는 곳에 함께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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