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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 뒤라스가 펼쳐 보이는 프랑스판 ‘부부의 세계’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0년 8월
평점 :
뒤라스 책이 연이어 재번역되어 나오는 가운데, 사랑하는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또한 재번역되어 나온다고 해서 3년 전 적었던 어설픈 책 리뷰를 다시 꺼내본다. 뒤라스의 연인 얀이 이 책을 읽고 나서, 다른 모든 도서들을 뒤로하고 뒤라스만을 읽게 했던 바로 그 책.
2017.06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소설이다. 먼저 작가의 약력에 관해 간단히 소개하겠다. 뒤라스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지 않은 1943년 데뷔하여 전후와 21세기 이전까지 소설가, 극작가, 시나리오 작가, 수필가, 실험영화 감독 등으로 장르와 경계를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벌인 예술가이다. 그는 프랑스인 부모 사이에서, 프랑스의 식민지이던 베트남 근교 지아딘에서 출생하였다. 이 식민지에서 살아가는 지배 계급으로서의 삶은 일반적인 추측과는 다르게 순탄하지 않았는데,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한 가운데서의 생활과 가족들 사이의 갈등 등은 이후에도 뒤라스 예술의 주요한 테마가 된다. 18세에 프랑스로 건너간 뒤라스는 학업을 마치고 세계대전 당시에 프랑스의 공산당원이 되어서 레지스탕스의 일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그의 남편은 독일의 전쟁포로로 잡혀가 강제수용소에서 고통받고, 이 역시 그의 소설 <고통> 속에 나타난다. 이후로도 뒤라스는 공산당에서는 탈퇴하지만, 여전히 사회 참여적인 활동을 벌이며 그러한 메세지들을 담은 실험적인 텍스트들과 극들을 써 나간다. 또한 주목할 만한 것은 페미니스트로서의 뒤라스의 이력이다. 1970년대 뒤라스는 보부아르, 잔 모로 등과 함께 ‘343인의 선언문’을 통하여 낙태와 피임운동 등 여성 인권을 옹호하기 위한 운동에 적극 동참하였으며, 마법사sorciere의 그룹원으로 함께하며 페미니즘 운동가로서의 활동을 한다.[1]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은 그의 초기작 가운데 하나이고, 다섯 번째 소설이다. 1953년이라는 발표 년도에서 추정해 볼 수 있듯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끝난 지 10년이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쓰여졌고, 전쟁의 참상과 피해를 뒤라스만의 방식으로 다루고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소설의 배경은 이탈리아 지중해의 작은 마을, 30여채의 집이 있는 산과 강과 바다로 둘러싸인 마을이다. 주인공들은 프랑스인들이고, 이 마을에 바캉스를 와 있다. 이 마을에서 벌어진 비극이 소설이 시작한지 단 두페이지 만에 제시된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사흘 전, 정확히 사흘 반 전에 한 청년이 루디의 별장 뒷산에서 지뢰를 밟아 폭사했었다.’) 여기에서 이야기는 두 갈래로 나뉘어지고, 합쳐 지기도 하며 함께 진행된다. a)첫 번째 이야기는 주인공인 ‘사라’가 겪는 다른 사람들 과의 관계에 관한 감정들이 중심을 이룬다. b)두 번째 이야기는 지뢰 제거 작업을 하다 폭사당한 청년의 노부모들이 밤낮없이 계속하여 산 위의 유해 옆에 머물러 있으면서 그의 사망신고서에 서명하기를 거부하며 전개되는 일들이다.
첫 번째로 다룰 주제는 뒤라스가 바라본 전후사회이다. 그러기 위해 자세하게 살펴볼 것은 b)두 번째 이야기이다.
청년은 전쟁의 잔재가 종전 이후에도 모두 해결되지 않았기에 희생당한 사람이고, 소설 안에서도 명시되어 있듯 전쟁 이후에도 회복되지 못한 모든 것들에 대한 사회적인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사공은 이번의 죽음은 예사로운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한 청년이 희생되었고 그것이 물론 직접적인 전사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분명 그건 전쟁으로 인한 희생이라고, 마을이 상중이었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라고 설명해 주었다.’ p265) 실제로 국제 적십자 위원회 (ICRC)의 지뢰 매설수 및 피해현황자료에 따르면 전세계에 약 1억 1천만개의 지뢰가 존재하며, 매달 약 2000여명이 지뢰로 인한 피해를 입고 있다고 한다.[2]
청년의 이 사고, 각별히 전쟁 이후 변변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게 되어서 하게 된 직업 중 발생한 사고는 전후 빈곤세대를 살고 있는 당시의 젊은이들에게 아무 관계가 없는 먼 사람의 일이라고 할 지라도 가깝게 느껴질 수 있는 일 이었을 것이다. (‘”지뢰 탐지란 정말 못할 일이에요.(…)다른 할일을 찾아보려고 했었지요.” , 노인이 말했다. “그런데 군 제대 후에 다른 일은 찾을 수가 없었어요”, p244) 또한 작가는 청년의 희생이 전쟁 피해자들의 비극을 대변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고유한 정체성을 삭제한다. 청년의 이름도, 어떤 인생을 살았고 무엇을 좋아했는지에 관한 것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청년의 죽음에 관해 보이는 반응은 극단적으로 갈린다. 식료품상과 지나로 대표되는 무리의 사람들은 이 일을 자신의 일로 느낀다. 식료품상의 경우, 이 사고가 있은 후 자신의 생업인 식료품을 파는 일을 포기하다시피 한 채 밤낮 노부부의 곁에 함께 머물며 그들과 대화를 나눈다. 주인공 사라의 친구인 지나는 그들을 자주 방문하고, 매번 요리를 한 뒤 산길을 걸어 노부부에게 가져다 준다. 한편, 사라의 남편 쟈크와 친구 루디는 그 노부부들을 불편해한다. 또한 마을을 방문한 젊은이들은 노부부의 슬픔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며, 이 사건 때문에 마을의 무도회가 중지된 것에 대해서 불평한다. 사람들이 보이는 이 비극에 대한 무관심함, 다른 한편으로는 타인의 슬픔, 지나간 전쟁의 슬픔을 얼른 잊고자 하는 자기방어적 태도는 인간의 여러 이기적인 측면과 본성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이렇게 여러 캐릭터들이 그려내는 여러 이미지들이 모여 그려진 전후의 사회는 일관성 없이 다층적이다.
두 번째로 자세히 볼 주제는 당시의 뒤라스가 생각하고 있는 죽음의 개념이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속에서 어떻게 구체화되는지에 관해서이다.
먼저, 작품의 전반에 나타나 있는 '사망신고서'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을 살펴보겠다. 노부부가 끈질기게 거부하고있는 사망신고서는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왜 노부부는 끝까지 사망신고서에 서명하기를 거부하다가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 하게 되는 것일까? 소설 속 인물들은 사망신고서에 서명하지 않는 까닭으로 여러가지 이유를 추측해본다. 세관원은 노부부가 마을을 탓하고 있기에 서명에 거부한다고 생각한다. 사라와 친구들은 서명을 하지 않는 것이 세관원을 반대해서 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노파의 남편은 노파가 꼼짝할 힘이 없어서 서명을 못하고 있다는, 비극 앞에 놓인 인간이 대답할 법한, 이성의 영역을 벗어난 이유를 제시한다. 물론 노부부가 서명을 거부하는 데에는 위의 이유들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겠지만, 노부부는 논리 정연하게 정리하여 제시할 이유를 거부함으로써 아들의 사망이 확정된 세계, 이성 안에서 사고하고 작동된다고 생각되었지만, 결국은 참사를 일으킨 세계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 일에도 진척이 없어 보이고, 여전히 노부부는 산 위에서 사망 신고서에 서명하기를 거부하고 있는 가운데 일어난 건너편 산의 산불은 등장인물들에게 사건을 종식시킬 수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불은 재앙이지만, 사람들은 불이 다가온다면 노부부가 버틸 재간 없이 대피하지 않을까 하는 잔인한 희망을 가진다. 그러나 불은 잔인한 희망에 대한 시각적인 표지이자 맥거핀일 뿐, 어떠한 실제적인 역할도 하지 않은 채 소설의 종료와 함께 잊혀진다. 노부부는 서명을 하게 되지만, 그것은 불과는 어떠한 관계도 없이 일어난 개인들의 내면적 순응이다.
2차세계대전 종전 후, 노부부가 겪었던 죽음의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뒤라스의 삶 속에도 있었다. 뒤라스의 자전적 소설<고통> 속의 인물이자, 뒤라스의 첫 번째 남편이었던 로베르 앙텔므의 경우가 그러하다. <고통>은 1943~1945년, 나치에 의해 포로수용소에 정치 유형수로 끌려갔던 남편 로베르 앙텔므를 기다리는 동안 쓰인 뒤라스의 일기문이다.[3] 로베르 앙텔므의 생사가 불투명한 상황, 아무 연락도 얻지 못하고 매일 매일 고문을 당하듯 남편을 기다렸던 그 시기의, 사망신고서에 동의하지 못한 채 남편의 생명에 관련한 정보를 찾아 이곳 저곳을 헤메고 다녀야 했던 뒤라스의 모습이 노부부의 모습과 맞닿아 있다.
다음으로, 주인공 사라가 어부들을 보고 자연스럽게 연상한 죽은 오빠에 관해서이다. 사라는 본문 속 회상에서 조각배를 타고 죽은 오빠와 함께 오리사냥을 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사라는 '삶이란 그런 것이었다. 사라는 그러한 삶의 섭리에 익숙해졌다고 믿었으며 그런 생각에 맞춰 살려고 했다'고 오빠의 죽음을 받아들이려 했던 사투를, 죽음과 남겨진 사람 간의 사투를 벌인 것이라고 회고한다. 이 지점에서는 텍스트 외부의 맥락, 뒤라스가 실제로 겪었던 삶의 맥락을 함께 살펴보면 더욱 생생한 독해가 가능하다. 뒤라스는 위 글의 첫 문단에서 언급했듯 식민지의 가난한 지배계급으로 살았었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가정들과는 다르게 사교적 관계의 고립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고립된 가족은 가족 내에서 더욱 끈질긴 증오와 애정을 공유하게 된다. 뒤라스의 자전적 소설<연인>에서 그 관계가 분명히 명시되듯, 어머니를 향한 증오와 동정심, 첫째 오빠를 향한 살의, 둘째 오빠를 향한 애정으로 가족을 향한 감정들을 설명하고 있다. 그 중 둘째 오빠는 1942년 세계 2차대전 당시에 사이공에서 폐렴성 기관지염에 걸렸으나 약을 구하지 못해서 죽었다. 이 죽음은 뒤라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작은오빠의 죽음을 들은 뒤라스는 자신 역시 죽음을 결심할 정도로 커다란 충격을 받는다. [4] 이러한 맥락에서 소설 속 인물인 사라의 극복 투쟁과 작가인 뒤라스 자신이 겪었던 극복을 위한 투쟁 역시 맞닿아있다.
세 번째로 살펴볼 주제는 작품에서 읽어낼 수 있는 페미니즘 코드이다. 이 코드는 여러 인물들의 관계와 대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를 위해서 a) 첫 번째 이야기를 간략하게 설명하겠다. 첫 번째 이야기는 주인공인 ‘사라’가 겪는 다른 사람들 과의 관계에 관한 문제가 중심이 된다. 그는 쟈크라는 남편이 있고, 네 살 된 아이가 하나 있으며, 하녀와 함께 휴양지에서 지내고 있는 작가이다. 그러나 쟈크는 결혼한 이후에도 이미 여러 번 다른 여성과 만나고 있었으며, 지금은 부부 공통의 친구 다이아나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위태로운 관계 속에서 권태를 느낀 사라는 바캉스에서 만난 남자 쟝과의 만남을 시도한다. 부부관계의 문제 뿐만 아니라, 바캉스의 주최자이자 마을 모든 사람들의 접점이 되어주고 있는 친구 루디가 사라에게 한 말도, 쉽게 잊히지 않고 사라를 괴롭히고 있다. 루디는 자기 나름대로 아내인 지나와 고전적이자 종속적인 부부관계를 수행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불만을 느끼고 있다.
시놉시스만 보고 판단하자면 불륜 소설을 쉽게 연상할 수 있지만, 뒤라스가 불륜소설의 통속적인 플롯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여성들의 자기결정권, 특별히 성적 자기결정권이다. 소설에 나타난 여성 인물들-사라, 다이아나-는 결혼했다는 것에 도덕적 구속을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만들어 나갈 관계들을 결정한다. 남편도 인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낯선 상대와 함께 잠자리를 가지는 사라의 모습이나, 부부인 사라와 쟈크 모두의 친구이면서 쟈크와의 성적 관계를 지속해가는 다이아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모든 관계의 주체는 여성이며, 남성들은 여성의 시선에서 성적으로 대상화된다. 또한 남성 인물 쟈크는 소설 속에서 '당신이나 나나 같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렇지' 라는 대사를 통해서 여성의 성욕이 흔히 감춰지거나 드러내지 않아야 할 것으로 터부시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 역시 남성과 마찬가지로 성적 욕망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수용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뒤라스는 개인들의 자유로운 사고가 선행되어도 사회의 통념은 이를 뒤따르지 않고 여성을 억압하고 있다는 상황을 드러내는데, 남성인 쟈크의 경우 빈번하게 다른 여성들을 만났지만, 사라의 경우 딱 한차례에 불과하였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명시한다. 또한, 가부장제의 질서 속에 어느정도 편입되어 있으면서도 어느 면에서는 결혼관계에 얽매여 있지 않은 복합적인 여성 인물 지나를 제시함으로써 드러낸다. 지나는 소설 속 몇몇 부분에서, 자기 검열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네가 한 남자하고만 섹스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네가 섹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야." 사라는 말했다. "내 생각도 그래." 다이아나도 말했다. "둘 다 어쩌면 그렇게 창녀들 같은 소리를 하니." 지나가 말했다. "나는 쉰 명하고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사라는 말했다. p42) 그러면서도 지나는 타협할 수 없는 부분에서는 분명한 저항의사를 밝히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런 남자 하나 때문에 나를 취하게 만들 생각은 아니겠지? 그럴만한 가치도 없어. 내가 이미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 아니야. 내가 정말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그가 진짜 너무 한다고 느껴질 때 나는 떠나. 스무 살 때처럼 떠날 거라고. (...) 절대 이 사실을 잊으면 안돼. 언제나 스무 살 그 시절처럼 떠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p38)
사라의 친구 다이아나의 경우, 페미니스트의 전형성을 가진 인물로 그려진다. 우선 그는 독신주의자인 자신의 신념을 고수하며 자유로운 연애관계를 추구한다. 또한 (보부아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삶에 안주하는 것을 혐오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호텔에서 지내고 있다. 호텔은 익명성과 자유로운 삶이 보장될 수 있다는, 여성해방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공간이다. 사라 역시 다이아나의 경우처럼, 상징적인 맥락에서 호텔에서 만들어갈 또다른 생활을 꿈꾸는 모습이 그려진다. ('할 수 있었다면 그녀는 호텔에서 살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라는 더 이상 그녀 자신의 집, 아파트, 한 남자와의 공동 생활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젊었을 때 그녀는 그러한 것들을 갈망했었다. 이제 늙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만큼 그녀는 다른 방식으로 살고 싶었고, 이러한 시기를 다른 곳, 예를 들면 호텔의 익명성 안에서 보내기를 원했다.' p69)
뒤라스는 이렇듯 70년대에 본격적인 페미니즘 운동에 참여해 활동하기 전 집필한 1953년의 소설에서부터 페미니즘 소설가로서의 정체성을 이미 가지고 있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에 그려낸 페미니즘 소설로서의 한계 역시 찾아볼 수 있다. 그 한계는 결론 부분에 이르러서 드러난다. 제목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이 암시하는 것은 결국 이들이 바캉스가 열리고 있던 장소를 떠나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을 볼 수 있는) 또다른 장소를 찾아 떠난다는 것이며, 이는 바캉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종식시키고 또다른 새로운 상황을 향해 감으로써 변주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사라는 결국 낯선 남자와의 관계를 종료하고 남편 쟈크와 함께 또다른 여행지로 떠나는 것을 동의함으로써, 기존의 질서에 재편입 되고, 가정을 유지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은 1953년대 전후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여성으로서 뒤라스가 겪은 혼란과 보았던 죽음의 그림자들을 담고 있다. 본문 속 노부부를 해석하여 받아들이고 있는 사라의 생각을 보면, ("그녀는 받아들일 수 없음과 이해할 수 없음을 상징하는 거대한 힘의 화신이 된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이 될 수 있으면 이해하고 살려고 결심한 것처럼 어쩌면 그녀는 더 이상 이해하지 않기로 작정했는지도 모른다."p52) 이 시기는 더이상 뚜렷한 인과관계의 규칙 속에 얽매여 있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세상이 아님을 역설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쟁은 이미 일어났었고, 그 시기동안 인류가 파괴될 수 없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이 파괴되며 인간의 본성에 관해 재고해야만 하는 과제가 모두에게 닥쳐왔다. 뒤라스는 이 시대의 기억을 받아들일 수 없음의 시대, 이해할 수 없는 그 자체의 시대로 작정하여 남겨둠으로써, 휴머니즘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관한 물음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참고문헌 출처
[1]
이은숙(2008). '숲의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생태여성주의적 글쓴이. 한국프랑스학논집, 61, 357-376
[2]
국제 적십자 위원회 (ICRC)-지뢰 매설수 및 피해현황
[3]
지식을 만드는 지식 출판사 제공 <고통>책정보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057663)
[4] 김혜동(2002). <연인>을 중심으로 본 뒤라스와 그의 가족, 한국프랑스학논집, 20, 255-2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