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9)

난 술에 취하는 거 좋아한다.
그냥 얼큰 달큰한 그 취한 느낌이 좋다.

소주는 소주라서 좋고,
와인은 와인이라 좋다.
맥주는 맥주라서 좋고,
위스키는 위스키라서,
브랜디는 브랜디라서,
진은 진이라서
보드카는 보드카라서
럼은 럼이라 좋다.

소주는 이런 저런 사람 냄새나서 좋고,
사람들 옹기종기 머리 맞댄 시장 뒷골목 뒷고기 집에도
돈 냄새 물씬 나는 고급 요리 집에도
입은 옷 찢어져도, 온 몸에 뭔가 품고 화려한 옷 입고 있어도
이리저리 어느자리에서든 별 무리없이 어울려 좋다. 
바다 냄새 물씬 풍기며, 달콤하게 고소하게 혀에 착착 들러붙는
내가 좋아하는 생선회랑 찰떡궁합이라 더욱 좋다.
그리고 때마침 내가 회 먹으러 간 날, 세월을 잘못 먹은 생선 덕분에
내 좋아하는 회에서 약간 비릿내가 나더라도 소주 한잔 털어 넣고
캬~하며, 잊을 수 있어 좋다.
 
와인은 성숙한 포도향이 나서 좋다.
기왕 이면 로제 와인이나 화이트 와인보다는 레드 와인이 좋다.
붉은 포도색이 제대로 나서 좋다. 투명하면서도 짙은....

또 기왕이면 샤또로 시작해서 츠로 끝나는
향과 맛이 일품이라는 그 와인 병째 맛 보는 게
앞으로의 남은 내 와인인생에 거는 희망이다. ㅋㅋ

맥주는 골라먹는 재미가 있어 좋다.
디엔에이나 후치 같은 단 맛 나는 맥주도 좋고,
아사히, 밀러라이트, 코로나처럼 그냥 깔끔한 맛도 좋고
바이젠 이든 둔켈 이든 하우스 맥주도 좋지만,
무엇보다 찐한 흑맥주가 좋다.
쓰면 쓸수록 더욱더  좋다.
혀뿌리부터 혀끝까지 쏴하고 감싸는
쓴맛이 일품이다.
무엇보다 진짜, 사내다운 사내 냄새나는 것 같아 좋다

위스키는 증류향이 나서 좋다.
스카치든 아이리쉬든 캐나디언이든
아메리칸이 든 다 괜찮지만,
허무하게 이름이 드높은,
발렌타인 몇 년 산 마시고 있는 지에 따라
내 등급까지 매겨지는 것 같아 피하고 싶기도 하다. 
확실히 세월 묻은 게 깊이 있기는 하드만...

브랜디는 와인보다 더 깊은 포도향이 나는 게 좋다
물론 사과 ,체리, 살구로도 만들지만
포도로 만든 꼬냑이 최고 좋다.
사실 난 헤네시 광이다.
친구 집 가서 비워버린 술도 헤네시였다.
ㅎㅎㅎ... 그거 참.....침 넘어가는데
혀위에서 아래로 감아돌며 목구멍을 타고 스르르 넘어가는 느낌이 가히 일품이다.
그리고 그 병에 있던 V.O.S.P. 네 글자 중에
V. S. 이 두 글자 정도는 미리 마신 맥주 한 캔에 취해
못 본 걸로 해야겠다 생각도 했다.
맥주 캔도 제일 큰 사이즈였자나 넌 취해서 안보여 하고~~헤헤

그리고 위스키, 브랜디, 럼, 진, 보드카를 기주로
각양각색, 형형색색 예쁜 Cocktail도 아기자기해서 좋다.
Shake, Chilling, Frosting, No-mixing....
만드는 방법도, 즐기는 방법도 다양해서 좋다
칵테일 만드는 법도 꼭 배워 볼꺼다.
우울한 날이나, 의미 있는 날이나...
이것저것 섞고 흔드는 칵테일 만드는 과정의 재미를 느끼다 보면...
조금은 더 즐겁고 특별해 질 것 같다.

아 중국술도 좋다.
화주 만들어 먹다가 눈썹하고 앞머리 태운 기억이 있어 좋다
그리고 화주 만들어 먹던 날 함께 했던 이들과의
소중하고 따듯한 좋은 추억들이 있어 참 좋다.
아 벌써 여러 술에 취한거 같다.

마셔도 마셔도 끝없이 들어간다고 붙은 블랙홀.
아무리 마셔도 얼굴색 하나도 안 변한다고 붙은 인조인간.
내 평생에 한번, 무리로 덤벼들어 다이 됐다가 붙은 식물인간.
술 덕분에 생긴 소중한 경험들 그리고 별명들....

어쨌든 이제는 나를 즐겁게 해주는 술에 대한 예의로
술을 더 잘 즐기기로 했다.

어떤 술이든...
내가 그 술에 얼큰하게 ,온통, 흠뻑 취해서 좋았던 그 기분
잘 기억해서...
콜라에 쏟아 붓기로 했다. 왜 콜라에게 그런 영광을 ?
라이트 콜라, 체리콜라, 레몬콜라...
맛대로, 제조회사별로, 사이즈별로...
골라먹는 재미도 있고,
김빠지면 맛도 덜해 나름대로 기간별로 등급도 매길 수 있다.
술 보다 돈도 싸고.
아무리 과콜해도 그 다음날 머리도 안 아프다.  
아무리 과콜해도 막 살아버린 느낌도 안들고,
아무리 과콜해도 이성을 잃고 정신을 잃어버린 기분도 안든다

단 주의점...과콜하고 양치질 안 하면 이색이 누렇게 변한다.

그리고..가끔 그 기분이 가물거릴 때쯤에는
내가 망가져 버려도, 혹은 뭘 좀 게워내더라도
뭔 술을 그렇게 처마시냐...소리하면서도
망가진 내 모습.. 망가졌다 생각 않고,
풀풀 냄새풍기며 실감나게 김 내며 퍼져있는
내가 쏟아내 버린 속엣 것에도
그냥 묵묵한 시선으로 등 두드려 줄 수 있는
그런 부담없는 동무 옆에서
미친 듯 취해보면 된다.

아주 만약.. 그랬던 내 동무
자기 눈 안에 너무 커버린 다른 용무를 보느라,
나를 잠시 보아줄 시선이 시간이 당장 없더라도,
그런 동무 있음에 내 주사(酒使)가 더욱 빛나서 좋고
다음에 또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어 또 좋다.

그래도 그 기분이 너무나 그리울 때는
그냥 그때 기분에 맞는 음악 틀어놓고,
미친 듯이 또 한번, 혼자 취해보면 된다. 그러면...
혹시라도 참고 있던 뜨거운 것을 잘 못 참고 힘 조율을 잘못하여
친구 머리통이나 가슴팍에 게워내고는
친구 머리카락에, 가슴팍에 아무리 씻어도
어쩔 수 없이 ...은근하게 약올리듯 마음을 괴롭힐 냄새에 기분에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사과, 거듭 사과 할 필요도 없다. 
내 주둥이는 내 머리통에 달렸으니 내 머리통에 게워낼 걱정없고  
내 입에서 삐져 나와 목을 타고 흘러 가슴팍을 적실수도 있으나
보통 참고 참던 그것들은 폭발력을 가지므로...
제 몸에 온통 다 묻히기도 힘들다.
묻히려고 애쓰더라도,
그 만취한 정신에도 아주 원초적인 반사정신으로 속엣 것을 피하는
자신의 몸의 신비에 감탄할 지도 모르겠다.
혹시라도 코로 나올 수도, 나오다가 목에 걸릴 수도 있다.
열나게 쓰리고 따갑지만, 괜찮다. 그냥 잠시 참으면 되니까 

이랬든 저랬든 술은 술이고, 그런 술이 좋다
주도를 스스로 만들어 낸 내가 대견해 좋고
그것도 세월따라 나름의 재미있는 역사가 생겨 좋다.
그런 주도를 확실한 주도로 이끄는....
내 사랑하는 술들이 있어 좋다  

홍야홍야 알큰달큰 취한 기분으로...
이리저리 넘실넘실 거려 정신없는 듯 보이기도 하겠지만.
힘의 강약과 장단을 알고 구사하는...
취권의 달인... 권법(拳法)소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험한 무림세계를  평정하고, 결국 무림의 고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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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내장남 누나셋은, 하늘에서 내리는 1억개의 별을 보고, 후카츠 에리라는 배우가 넘 맘에 들어서 그녀의 다른 출연작들을 기웃거리다 발견한 드라마다. 그것도 2003년 최신작. ^^

첨엔,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은 후카츠 에리랑 코유키 밖에 모르겠고, 나이가 5살 연상이라는 것을 가족들에게 숨기고 결혼했다가 나중에 시누이들에게 들키면서 약점을 잡힌다-라고 소개되어있는 내용이 재미있을 것도 같고, 없을 것도 같고... 시누이들에게 구박을 받았더래요~~이런 우울하고 화나는 내용은 곤란한데-라며 볼까 말까 고민했었다. 그러다 남자 주인공 오카다 준이치가 v6의 멤버라는 사실을 검색을 통해서 알게 된 후, 사진을 보고, ‘음, 괜찮은데’라며, 일단 1편만 보고 괜찮으면 계속 보기로 결심하다!




 

 

 

 

 

 

 

 

 

 

1편은 정말 후카츠 에리의 개인기에 가까운 다양한 표정과 연기가 압권이다. 물론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이 과장된 듯 하면서도 현실적이기도 하고, 발랄하고 재밌는 내용과 더불어, 오카다 준이치와 후카츠 에리도 너무 귀엽고.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개의 별에서 불과 1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후카츠 에리가 왜그리 부쩍 나이들어 보이는지 좀 안타깝긴 하지만. ^^ 시어머니와 세 명의 시누이들의 캐릭터도 너무 분명해서, 거기서 나오는 웃음도 장난이 아니다. 기대치가 팟팟팟~ 올라가면서 끝까지 다 보기로 결정!! 이랄 것도 없이, 흠뻑 빠져들어서 정말 재밌게 봤다. ㅎㅎ


이 드라마는 음모, 배반, 함정, 이런 음험한 것들이 하나도 없는 밝고 귀여운 드라마다. 타이틀도 너무 동화적이면서 예쁘고. 초반 대부분은 후카츠 에리가 시누이들을 집에서 내보내려고 잔머리를 굴리다 실패하는 내용이지만, 정말 신나게 웃다가도 때로 따뜻한 가족애가 느껴지기도 하는, 정말 발랄하면서도 따뜻한 가족 드라마다. 마지막회는 눈물이 찔끔!할 정도로 감동적이기도 하고. 뭐, 계속 눈물 흘리게 두지 않고, 마지막은 또 폭소로 끝나긴 하지만. ^^ 보통의 일본 드라마와 다르게, 10회로 끝나는 것이 안타깝기조차 할 정도다. 보다보면 결론이 대충 어떻게 날거같다-라는 감이 오긴 하지만, 뭐 그렇게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오카다 준이치가 후카츠 에리랑 같이

가을동화 보다가 우는 장면도 꽤나 인상적. 정말로 우리나라 드라마가

일본서 인기 있나보구나. T^T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 오카다 준이치도 너무 좋아졌다. 예전에 ‘키사라즈 캐츠아이’라는 드라마가 한참 인기 많을때도, 나리미야 히로키랑 사쿠라이 쇼 나오는 것만 알았지, 오카다 준이치는 몰랐는데, 역시 존재를 인식하니까, 그 드라마의 주연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더군.

 

그래서 ‘키사라즈 캐츠아이’도 보고, 후카츠 에리의 이전작 ‘사랑의 힘’도 한번 봐볼까나~라고 생각중이다. ^^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개의 별과 분위기는 정 반대라 할 정도로 틀리지만, 역시나 훌륭한 드라마인거 같다. ㅎㅎ 기분좋~은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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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라주미힌 > 황산벌

기획은 좋은데 감독의 능력이 많이 딸리는 듯.
이야기가 좀 어수선하고, 특히 김유신 캐릭터가 말하는 주제의식도 불분명하고,
전체적으로 영화가 말하려는 내용과 구성이 따로 노는 느낌.


신나게 욕지거리하면서 웃기려고하다가
마지막에는 꼭 점잖빼는 식상한 플롯은 여전하고,
(하나도 제대로 못 보여주면서 이것저것 다 보여주려는건 과욕)
무엇보다도 영화의 클라이막스가 없다는 점이 제일 아쉽다.

 

이준익 감독이 만들어 논 영화들을 쭈욱 보니...
달마야 놀자, 공포택시, 아나키스트, 간첩 리철진, 키드캅.
자신의 스타일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느낌이 든다.


이거 하나는 명대사...
'호랭이는 가죽 떔시 디지고, 사람은 이름 땜시 디진다'

 

뇌물의 정의도 확실하게 짚어준다.
"아따 아부지. 원래 제가 뇌물을 잘 안당께요. 원래 뇌물이라는 것은 이거이 뇌물이어라, 하고 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선물이라고 주는 것이지요. 원래 받으면 안 되는 것이니 저짝에서는 당연히 거절하고, 이쪽은 자꾸 권하고, 또 사양하고 다시 권하고, 그렇게 밀고 당기는 동안 이심전심이라고 주고받는 양자의 마음이 살살 통하는 것이, 바로 뇌물의 묘미어라."


차라리 영화 홍보 할때처럼 좀더 만화기법을 두드러지게 썼으면 재미있지 않았을까...
예를들어 벌교삼인방의 특징을 에니메이션이나 CG로 과장하는 식으로....
전투씬에서는 다들 칼들고 흐느적거리며 시늉하는 사람들 투성이니
하려면 확실하게 하든가. 어설프게 하려면 확실하게 어설프던가.

 

솔직히 사투리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뭐라고 외쳐대기는 하는데...
대충 뉘앙스는 알겠지만, 차라리 자막처리 하지 ㅡ.ㅡ;
책에서도 각주로 용어 설명해주듯이 사투리의 맛을 재미있게 전달하는
제작진의 배려와 스킬이 부족했다.

 

오로지 기획~! 하나 믿고 만든 것 같은데..

(물론 연기잘하는 배우들 몇명 나오기는 했지만)
TV 코미디에서도 몇번 나왔었던 '사투리 사극' 수준가지고
영화라 하면 좀 '거시기'하지.

 

 

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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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고나서 나에게 정착된 두가지 경향이 있다. 첫번째는 이제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게 굉장히 힘들어졌기에, 기존에 있던 친구들을 유지, 보수, 관리하며 여생을 살아야겠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만나서 불편한 사람을 억지로 보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불편한 자리에 나가 억지로 만든티가 역력한 웃음을 짓곤 했는데, 이제 그런 짓을 하기가 귀챦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지라 때로는 만나기 싫은 사람도 봐야 하지만, 앞으론 피할 수 있으면 피하겠다는 얘기다.

두번째 원칙에 너무 충실해져서인지 최근 들어서 친구를 만나면 단점만 보이고, 그래서 안만나는 친구들이 늘어나는 느낌이다. 엊그제 얘기. 초등학교 때부터 만나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야구를 보잔다. 20분쯤 고민하다 "간만에 연락했는데..."란 맘에 그러자고 했다. 두산이 안타를 4개인가 치고 7-0으로 지는 바람에 경기 자체는 하나도 재미가 없었는데, 엘지팬인 내 친구 두명, 특히나 엘지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친구 하나는 신이 났다. 날도 덥고해서 집에 가고픈 날 붙잡더니 "술이나 한잔 하자"고 한다. 그러자고 했다. 간만에 만났으니깐.

술마시는 건 사실 별 문제가 아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문제는 장소다. 이것들은 만나기만 하면 단란주점으로 날 끌고간다. 몇번 끌려가 봤지만 사실 난 단란주점에서는 어떠한 재미도 못느낀다. 돈 10만원에 여성이 두시간 동안 성적으로 착취를 당하는 것도 영 맘이 불편하지만, 파트너로 나온 여자의 손도 안잡는 내가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내가 손을 안잡는 건 그런 맘이 없어서가 아니라, 친구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러고 싶지가 않아서다). 정말 웃기는 건 계산을 할때다. 카드로 계산을 하면서 그 친구는 늘 이런다. "야, N분의 1이야" 머리숫자대로 똑같이 내잔 말이다. 난 그게 싫다. 싫다는 사람을 끌고 갔으면 지가 돈을 내던지 하지, 두시간 동안 우두커니 앉아 여자랑 몇마디 주고받고선 30만원씩 내라는 게 잘 용납이 안되었다.

그래서 난 언제나 단란주점 가는 것에 저항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숫자의 논리'에 밀려 말처럼 끌려갔다. 그런데 그날 역시 그 친구들이 X-point라는 아주 후진 단란주점에 가잔다. 이번엔 좀 세게 버티었다. 십분 가량 싸우다 결국 타협을 본 게, 자기가 아는 Bar에 가잔다. 그동네에도 맥주를 마실 곳은 많았지만 굳이 차를 타고 그 Bar로 갔다. 아주 귀여운 사이즈의 양주 한병, 그리고 과일안주 하나. 술을 끊은 난 양주 한잔만 받아놓고선 물만 마셨고, 노래도 가능한 곳인지라 친구들은 노래도 몇곡 했다. 좀 화려해 보이는 Bar라 만만치는 않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막상 36만원이 나온 계산서를 보곤 좀 놀랐다. 노래 5곡을 부른 게 5만원이라나. 친구의 말이다. "N분의 1이야!"

내가 12만원을 내야 한다는 얘긴데, 그보다 더 많은 돈을 쓸 때도 물론 있지만 이번엔 왜이렇게 돈이 아까운지. 우아한 카페에 가서 맥주를 아무리 많이 마셔도 십만원이 안될테고, 좀 덜 우아한 곳-내가 좋아하는 양재동 바라든지-에 가서 양주 두병을 마신다 해도 그렇게까지 나오진 않을 것이다. 아, 돈아까와....

돈도 돈이지만, 그들과 있는 내내 맘이 편치 않았다. 가장 친한 친구라면 같이있는 것만으로 편해야 할텐데,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별로 없다. 둘다 사업을 하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업 얘기만 계속해 날 멍청하게 만든 것도 그렇고, 친구 차를 타고 오는 동안 계속 어디론가 전화만 해 굉장히 심심했다. 무료함을 달래려 나도 아는 애한테 전화를 했다가 잠자는 걸 깨워버렸다. 아무리 이쁜 여자라 해도 자다 일어난 목소리-"여-보-쇼?"-는 과히 이쁘지 않으며, 인간의 소리가 아닌 것처럼 들리기 마련이다. 물론 굉장히 미안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관계가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그건 내가 "재는 원래 그런 애야"라면서 친구의 특성을 인정하고 그걸 기꺼이 감내해 왔던 데 있다 (참고로 그 친구의 별명이 '파쇼' 혹은 '장군'이다). 그러던 것이 나이가 들고 사회적 지위가 조금 올라가자 내 인내력이 많이 감소했고, 그래서 그 단점들이 눈에 보이는 것이리라. 물론 나 자신도 그렇게 편한 인간이 아닐 것이며, 내 친구들 중에는 나의 그런 점을 알면서도 그러려니 하고 참은 애들이 많을 것이다. 30세가 넘어서 "너 이런 게 나쁘니 고쳐라"라고 말하는 것은 "우린 안맞아. 그러니 그만 만나자"라고 말하는 것과 같을 것이니깐.

편하기 짝이없는 친구 관계지만 그 관계를 잘 유지하는 건 이렇듯 어려운 일이다. 사소한 단점을 빌미로 인해 하나씩 하나씩 맘 속에서 지워 나간다면 내 주위에는 친구가 하나도 남지 않겠지. 친구의 단점을 보기보단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인내력을 키워 나가는 게 더 중요한 게 아닐까?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막상 가슴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그래서 갈수록 편협해지는 내 자신이 굉장히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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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Smila > Portrait of a Girl

Ivan Kramskoy, Portrait of a Girl, 1870, Watercolor on cardboard

화가가 그린 그의 딸. 막 알파벳을 배우기 시작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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