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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의 불시착
박소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0월
평점 :
요즘 직장인 하이퍼리얼리즘 소설들이 많이 보인다. 소설이라는 장르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일을 다루는 것이라는 (나만의) 인식을 넘어서, 훗날 10년 뒤쯤 다시 직장인 하이퍼리얼리즘 소설을 읽었을 때 "아, 이게 이 시대의 초상이구나." 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현실 그 자체인 소설들이 많이 나오는 것이 반갑다.
가제본서평단으로 소설집 <재능의 불시착> 첫 편인 <막내가 사라졌다>를 읽었다. 사건의 발단은 어느 날 회사 막내 강시준이 돌연 금일부로 퇴사하겠으니 퇴사 절차는 본인의 대리인이 가서 진행할 것이라며 전직원에게 문자만 띡 돌리고 그대로 잠적해버린 것. 갑분퇴도 놀라운데 "대리인"이라니? 살던 집으로 찾아가도 집주인은 이미 바꼈다는 말에 회사 식구들은 아연한다. 대리인이라고 해서 법적공방까지 벌여야 하는지 고민을 하며 직원들은 막내에게 했던 소위 "캥기는 짓"을 주인공에게 털어놓는다. 인신공격, 사적인 부탁을 하고 협조하지 않자 화낸 것, 심지어 성희롱까지. 시니컬한 강 과장은 보다 한 소리 한다.
"내일까지 두려움에 떨 사람들이 많아 보이네요. 그러게 회사 다닐 때나 상사고 선배지, 그만두면 아무 관계도 아닐 사람들끼리 진즉 기본 매너는 지키며 살면 좀 좋아요? 지금 여기에 다니고 있으니까 껌뻑 죽는 척 해주는 거지, 나가면 알게 뭐예요? 말도 제대로 안 섞어줄 동네 아저씨고 모르는 아줌마지."
주인공에게 본인이 시준에게 어떤 캥기는 짓을 했는지에 대해서 말을 하는 부분에서는 모두 본인을 변호하기 바쁘다. 민 대리는 시준에게 몇 번이나 프로세스를 알려줬는데 중요한 순간에 클라이언트 앞에서 빼먹어서 어떻게든 따끔하게 한 소리 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 따끔한 말이 지방대 운운하는 인신공격이라면?
나는 이게 회사 생활의 정수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 조직 내에서 나에게 상대 위에 군림할 수 있다는 위계질서를 부여할 때, 그것에 정당성을 누군가가 부여할 때, 사람들은 기본적인 예의도 잃고만다. 분명 밖에서 보면 다들 매너 있고 괜찮은 사람들일텐데, 신기하게 회사 안에만 들어오면 이상해지는 경우가 있다. 어떻게 알았냐구요? 저도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 소설에서 또 두드러진 점은 퇴사를 대행해주는 시스템의 존재이다. 퇴사 진행 대리인은 회사로 와서 의뢰인의 전언을 알려주고, 원만하게 해결을 하는 "해결사"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팀장을 비롯한 사측은 왜 이런 식으로 진행하냐고 말하지만, 책에 나온 것처럼 퇴사는 그냥 "의사표현"일 뿐이다. 더이상 이 회사에 다니고 싶지 않으니 재가 바랍니다. 하지만 뭔가 우리나라에서는 퇴사를 할 때 뭔가 우물쭈물하게 되고, 말을 어렵게 꺼내게 되는 그런 감이 없잖아 있다. 진짜, 저 퇴사 진행 업체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현실에서 떼돈을 벌지도.
그래서 박소연 작가님의 <재능의 불시착>은 더욱 가깝게 다가온다. 작가님이 원래 회사생활을 착실히 해오던 분이기에 이런 다큐급의 소설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뒤의 더 많은 부분을 읽고 생각해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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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까지 두려움에 떨 사람들이 많아 보이네요. 그러게 회사 다닐 때나 상사고 선배지, 그만두면 아무 관계도 아닐 사람들끼리 진즉 기본 매너는 지키며 살면 좀 좋아요? 지금 여기에 다니고 있으니까 껌뻑 죽는 척 해주는 거지, 나가면 알게 뭐예요? 말도 제대로 안 섞어줄 동네 아저씨고 모르는 아줌마지."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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