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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역사 - 상 - 제8판
니콜라스 V.랴자노프스키.마크 D. 스타인버그 지음, 조호연 옮김 / 까치 / 2011년 10월
평점 :
올해의 첫 책. 연말에 시작해서 지금 끝났다. 하는 일도 없으면서 (상하권 합쳐) 천 페이지에 3주나 걸렸다는 건 어지간히 지겹다는 뜻. 여기저기 구멍나 있던 시대의 정보를 메운 것은 매우 유익했으나 왜 항상 유익한 것은 즐거움과는 반비례하는가. 즐기는 자를 이길 방법이 없기는 하겠으나 과연 그 즐기는 자가 있는지 의문이다. 있다면 무운을 빈다. 내게 성적이의제기를 신청한 학생들은 선생들도 공부하기 싫어 몸부림친다는 사실에 적절한 위안을 받기를 바란다.
여튼 러시아 역사를 훑어보며 새삼 느끼는 것은 정말 폭력의 스케일이 남다르다는 것. 극소수 엘리트나 통치자 개인에게 너무 많은 것이 달려 있다는 것. 그 극소수가 어떻게든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보겠다고 거기 살 대다수의 사람들을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으로 몹시 괴롭혔다는 것. 그 대다수는 상당한 인내심과 이상주의를 갖고 '더 나은 삶'을 기다렸다는 것. 몹시 고통스러운 혁명이나 개혁이 멈추면 아주 고질적인 부패로 이어진다는 것. 이도저도 안되면 국뽕으로 타개한다는 것. 후진적인 것들은 골고루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책은 2010년까지를 다루고 있으니 그후 10년은 별개로 친다 해도 말이다. 요즘 러시아의 젊은이들은 또 조금 다르긴 하다... 그렇게 치면 한국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교양있고 양심적인데... 너무 착하고 순진해서 좀 그렇다. 엘리트 그룹은 제정 러시아의 무지막지한 부패관료들보다 영리하고 효율적이고 체면을 차리지 않는만큼 더 악랄하다. 러시아의 거부들은 구 소련의 관료나 당원 출신으로 과거의 국영기업들을 사유화하고 권력에 밀착해서 엄청난 부를 만들었지만 지금 한국의 권력은 과거의 권력으로 키운 기업의 뒤치다꺼리를 하는데 바쁘다. 어느쪽이 더 나쁜가. 전자는 사이즈가 커서 피해규모가 막대하고 후자는 민주주의의 껍질을 벗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것이 가증스럽다. 내 나라는 내가 사는 나라이므로 남의 나라보다 더 나쁘다. 끝없는 국가폭력과 비틀린 민족적 자긍심의 역사를 아주아주 간략하게 요약한 천 페이지가 참 버겁더라는 이야기. 혼자 버겁기 싫어서 담벼락에 써붙여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