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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
반디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2월
평점 :
품절
고발.
단편집.
현재 북한에서 살고 있는 작가가 반출시킨 원고란다.
무겁고 어두운 우리네 현실도 싫은데,
구태여 북녘땅의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까지 알고 싶지 않았다.
기대감 제로.
일부러 '북한' 이라는 전제조건을 떼고 읽는다.
문학 작품으로만 보자, 재미난 이야기로만 읽어내자, 이런 맘으로 읽는다.
그래서였을까?
재미나다.
한결같이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만 나오니 더 좋다.
처한 상황은 욕이 절로 나오고 분노가 치밀지만 악인에 의해 벌어지는 사건이 아니다.
체제와 제도가 그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을 따름.
그들이 순수하고 때묻지 않았기에 처한 현실이 더 가슴아프고 애통하다.
분노하고 한탄하지만 원망하지 않는 건 희망이 없어서임을 알기에 처연하다.
땔감이 없어 외투를 입고 입김이 나오는 냉골 방에서 지내는 사람,
조문하기 위해 꽃을 따러 산으로 다니다 뱀에 물려 죽는 사람,
밥을 지으면 연기가 피어오르는 정감어린(?) 집,
옷에서 기어다니는 '이',
기차역에서 빵 하나를 사기 위해 발길에 치이는 일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닌 일상.......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만 같다.
낯선 단어와 문어체 문장 사이에 삐져나오는 정감어린 말투가 옛날 이야기 그 자체다.
옛날 이야기와 다른 것이 있다면 이것은 "현재" 시제라는 것, 내 동포라 불리는 사람들의 '현실'이라는 것.
그리하여 '고발'일 수 밖에 없다.
고발이라는 제목을 작가가 지었을까?
정말 반디(작가)는 그들이 처한 현실을 낱낱이 파헤쳐 세상 사람들에게 고발하고 싶었던 걸까?
내가 처한 현실에 대한 자각은 했으나 어쩌지 못하는 막막함과 체념이 전해지는데?
그에겐 고발이 아닐지 모르나 우리에겐 고발로 전해지는 북녘땅의 현실.
이제 나는,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커다란 숙제를 떠안은 기분이다.
한 번에 몰아 읽지 않기를 권한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고 몰입도가 상당히 좋아서 깜짝 놀랐으나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기 때문.
나는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크게 신경쓰면서 읽지 않는데, 생소한 어휘를 쉽게 넘기지 못한다면 각오하고 봐야 한다.
고발.
낯 모르는 사람에게도 후원하는 세상인데
독재 아래 고통받는 이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것 정도는 해야겠단 생각을 해본다.
정치라면 자꾸 외면하게 되지만 이건 정치가 아니라 인권 문제라고 생각의 방향을 바꿔본다.
'읽는 일'에 부대끼지 않는다면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