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소설로 그린 자화상 2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199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뭐든지 누가 하라고 시키면 하기 싫어지는 법이다. 맨날 하던 짓도 멍석 깔아주면 안 하더라고 이 책을 산 지는 아주 오래 되었는데 사자마자 방송에서 이 책을 보라고 난리(?)를 쳐서 팽개쳐 두었었다. 이제 좀 그 분위기가 잠잠해지나 싶어서 꺼내들었는데 오랜 시간을 기다린 보람도 없이 이틀만에 모두 읽어버렸다. 이 허탈함이라니.....

오랜 시간 기다렸다가 보는 공연은 재미가 있든 없든 허탈하다. 이 짧은 걸 보려고 그렇게 가슴 졸였었나 싶은 데다가 재미까지 있어버리면 아쉬움이 더해져서 몸둘 바를 모르게 만든다. '그 많던 싱아~~~' 가 바로 그 경우다. 푸욱 빠져서 읽다보니 벌써 끝이 나는 이야기. 사람 애간장 녹이는 클라이막스도, 팽팽한 긴장감도, 특별한 이야기도 없는데, 더구나 50년 전의 이야기들이라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도 아닌데 정신없이 빠져들게 된다.

작가 박완서는 나의 어머니 세대도 아닌 할머니 세대다. 그런 분의 자전적 이야기라 하니 당연히 옛날 이야기 정도로 '있을 법 하군'의 수긍이면 족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자꾸만 눈 앞에 그림이 그려진다. 논밭이 펼쳐진 박적골이며 덜커덩 거리는 옛날 기차, 사대문 안과 밖의 전혀 다른 풍경들, 물지게 퍼다 날르는 달동네 사람들까지 모두 내가 겪어 낸 일들처럼 자세하게 떠오른다. 겪지 않은 것을 겪은 것처럼 만들어 내는 이것을 작가의 힘이라고 하는걸까?

많은 얘기를 하지도 않는다. 정말 필요한 말만 적당히 하고 만다. 간결하다 못해 똑똑 끊어진다는 느낌까지 드는 글. 할머니 박완서가 소녀 박완서의 눈으로 세상을 그려내는 방법이리라. 뿐만 아니라 어쩌면 그렇게 어릴 적 마음, 느낌, 생각을 하나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지. 마치 내 어릴 적 동무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향수에 빠져드는 것 같다.

나도 궁금하다. 지천으로 있던 그 많은 싱아는 누가 다 먹어버린걸까? 아직도 그곳엔 잘 익은(?) 싱아가 널려 있지는 않을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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