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나두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삶이 지겹다. 힘들게 눈 뜨자마자 머리를 감을 것인가 말 것인가로 시작되는 고민. 황금같은 아침시간 2, 3분을 그렇게 허비함을 자책하며 서둘러 출근. 어제와 같은 업무, 어제 만났던 사람들, 간혹 새로운(?) 얼굴을 본다 해도 따져보면 다들 안 지 5년은 족히 되는 - 무조건 깊어만 지는 인간관계의 소유자들. 그래서일까? 무료함의 끝에 서면 다른 돌파구를 찾기보단 결혼을 생각한다.(사실 인생에서 이만한 이벤트는 없다.) 흔히들 말하는 결혼적령기를 놓친 대부분의 사람이 지루하게 산다고 해서, 그 주인공과 친구 모두가(서른 셋 동갑의 미혼여성) 그냥 들여다 보기에도 지겹게 묘사되는 것은 너무나 작위적이다. 이것은 마치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의 삶이 지루하다는 공식을 뽑아내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작가 배수아는 결혼을 나약함이라고 표현한다. 나 역시 그에 동감한다. 무료함과 지루함, 일상에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만 생기면 느닷없이 결혼이 하고 싶어진다. 삶에 대한 전투력 상실이 엉뚱한 방향으로 튀는거지.

이 나약함을 감추기 위해서일까? 유경은 냉소적이다.(독신여성이 주인공인 소설에선 거의 다 이렇지만.) 사람을 바라보는 것도, 결혼을 생각하는 것도, 사랑에 대해서도, 심지어 자신 앞에 놓인 문제에서조차 방관하며 냉소를 흘린다.(하지만 이상하게 섹스에 관해서는 관대(?)하다. 성에 대해 관대하다는 것이 자유와 당당함의 상징인양.) 헌데 그녀가 특별히 냉소를 내뿜을만한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뭐든 눈에 띄기만 하면 팔짱끼고 엇보기는 하지만 그 대상이 일관되지도 않는다. 마치 결혼 적령기를 놓친, 노처녀라고 불리는 이들의, 역시나 히스테리라고 불리는 그 무엇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처음 읽을 땐 놀라움 그 자체였다. 내뱉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잠언같았고, 나이 든 미혼 여성이 보아야 할 필독서 같았지만 뒷심이 부족했다. 결국 유경은 남자가 그리웠던 것인가!! 그동안의 것들은 결국 자기합리화였단 말인가!! 결혼으로부터 자유로운듯 어설픈 페미니스트처럼 시작되서 결국엔 남자에게로 돌아가는 이 모순은 과연 무엇인가!! 온통 풀 수 없는 숙제만 하나 가득 떠안은 기분이다. 서른 셋의 미혼여성의 삶은 생명력 넘치는 파랑일 수도 있는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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