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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1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서울의 중심부인 세종로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이순신 장군은 한 때 우리들 누구에게나 영웅이었을 것이다. 그는 누가 뭐라 해도 왜구로부터 조선을 지켜낸 명장이요 임진왜란이 배출시킨 스타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스타와 마찬가지로 영웅 이순신 역시 개인적인 사사로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 속에서 그의 인간적 고뇌다는 그의 전과만을 기록한다. (소설에서 그려진 것처럼) 마치 적의 잘려진 머릿수로만 전쟁을 평가했던 선조처럼 말이다.
우리가 국사시간에 달달 외웠던 명량 앞바다에서, 한산도 앞바다에서, 노량 앞바다에서 이순신은 무엇을 바라보며 무엇을 생각했을까? 한 나라의 장수로서 그 앞에 서 있는 적들은 당연히 베어져 마땅한 존재들이다. 그의 칼은 이순신의 존재를 위해서 국가의 존망을 위해서 더 많은 적을 베어야 한다. 그 때 적들은 그저 무찔러야 할 적으로만 존재한다. 그러나 그 죽음은 개별적인 죽음이다. 칼을 받았을 때의 고통도 바닷물에 휩쓸릴 때의 두려움도 모두 죽어가는 개인의 몫이다. 일본 장수로서, 조선의 군졸로서가 아닌 그저 나 자신의 생을 마감하는 내 몫인 것이다.
임금을 기만한 죄로 이순신은 국문을 당하나 백의종군하게 된다. 임금의 칼에 이순신이 죽으면 일본군은 임금을 향해 한강으로 올라간다. 이순신이 전쟁 중에 죽어도 일본군은 임금을 향해 한강으로 올라간다. 이순신의 존재는 자기 자신도, 임금도 아닌 적군에 의해 규정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적이 있기에 이순신은 존재하고, 적이 있기에 이순신은 존재하여야만 한다.
칼의 노래는 존재의 노래이다. 조선군 백만의 죽음은 백만이 하나의 묶음이 아니라 각기 한 개가 하나씩 모여 백만을 이루는 것이다. 이순신은 이순신으로 존재할 뿐 적이 있기에 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칼로 사람의 목은 벨 수 있으나 '죽음'은 베어서 없앨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쉽지 않은 책이었다. 우리 역사의 어두운 면을 바라보는 일은 머리와 가슴을 모두 무겁게 만든다. 그 혼돈과 분노 안에서 자기를 자기 자신의 모습 그대로로 지켜냈던 인간 이순신을 만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죽을 자리를 찾고 있었다. 그는 자연사하고 싶었다. 그의 자연사는 적의 손에 의해 맞이하는 죽음이었다. 전쟁의 영웅이 아닌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그에 순응하는 삶을 살고자 노력했고 자신이 원하던 죽음을 맞이하는 이순신과 그의 칼을 노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