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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버린 생각
김명렬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01년 8월
평점 :
절판
책을 펴는 순간 절로 마음이 푸근해지는 사진과 함께 여행이 시작된다. 나는 이것을 길과 지명을 따라 이동하는 여행이 아닌 생각과 마음으로의 여행이라 말하고 싶다.
여행은 사람 마음을 알지 못할 희망과 기대에 들뜨게 만든다. 연인과의 이별 후에 쓸쓸하지만 혼자서라도 떠나는 여행이나, 어디를 옮겨가도 덥기는 마찬가지이지만 부득불 수많은 인파에 휩쓸리려는 피서까지 일상의 공간을 떠난다는 일은 설레는 일임에 분명하다. 우리에게 여행이란 식견을 넓히고 새로운 문화·환경에의 경험이기보다는 이렇듯 일상을 떠나는 자유와 변화의 의미가 크다. 그 뒤에는 항상 경제적인 부분과 시간이 맞물려 쉽게 움직일 수 없다는 족쇄로 인해 여행에 대한 갈망만 남을 뿐이지만......
그래서 여행이란 것을 한 번 하게 되면 속된 말로 뿌리를 뽑아야 직성이 풀린다. 어떻게 낸 시간이고 돈인데 본전은 다 찾아야된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슬금슬금 고개를 드는 것이다.
해외여행이 보편화된 지금 우리의 여행방식은 두 가지가 있지 않을까? 하나는 유레일 패스를 이용한 평범한 - 밤에는 기차에서 자고 눈뜨면서부터 도시 구석구석을 뒤지고 돌아다닌다. 단 한 순간도 헛된(?) 시간을 보내면 안된다. - 기차여행일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도시마다 오래도록 기거하며 한량처럼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는 것이다.
전자는 여행 후 다리품 팔았던 부지런함과 여전히 텔레비전에 나오는 에펠탑, 트레비 분수를 떠올릴테고 후자는 그 도시의 아침 공기와 뿌옇게 퍼지는 햇살, 빨간 지붕과 느릿느릿 걷던 돌길과 같은 개인의 감흥이 남을 것이다.
여행은 생산적인 활동이 아닌 소비적인 활동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한 손에 빵을 들었으면 다른 손엔 빵이 아닌 장미꽃을 들라고도 이야기한다. 조금 왜곡하자면 후자의 여행을 선호한다는 말이 아닐까. (나 역시 그의 의견에 한 표를 던진다.)
많은 것을 담고자 하면 결국 하나도 얻지 못한다. 다시 한 번 떠남을 위한 길 위에 선다면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리라. 내가 알고 있는 고속도로의 빠름을 버리고 국도를 이용하며 '2박 3일간 경주 모두 둘러보기'와 같은 목표도 버리리라. 만나는 사람들에게 넉살 좋게 알은 체를 하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리라. 내게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무의미하게(?) 사용하고 길가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스치듯 지나가는 산까지 모두 눈에 넣어 오리라.
그렇게 '나'만을 고집하는 '나'는 버려지고 그 빈자리에 새롭게 태어나는 내가 채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