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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의 영화 - 공선옥 소설집
공선옥 지음 / 창비 / 2019년 8월
평점 :
처음 등장하는 작품은 "행사작가".
단편은 짧은 시간 안에 결판(?)을 봐야 해서 사건의 흐름이나 화자가 처음부터 뚜렷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뻔한 소설이 아니라는듯, 주인공의 성별부터 모호한 시작.
주어지는 정보는 애매모호한데 화자가 남자라는 확신을 주는 문체.
소설의 이야기보다 그 문체에 빠져든다.
두 번째 소설 "순수한 사람"을 읽으면 더 깊이 빠져들게 된다.
기어이 걸음을 돌려 라면값을 받아주고 가는 딸의 모습 어디에서도 '행사작가'의 아저씨 작가 모습은 보이지 않는 것.
남자 작가가 쓰는 남자 등장인물의 사실감과 여자 작가가 쓰는 여자 등장인물의 사실감이 느껴지는 미묘함에 짜릿하다. ㅎㅎㅎ
그 짜릿함 위로, 무거운 소재와 주제를 다루는 작품이 뒤를 잇는다.
5.18의 광주는 그나마 최근.
나도 처음 들어본 그것 - 사루마다(팬티, 잠방이)를 입지 않는 12세 소녀와 독일로 간 광부, 간호사가 등장하고
도시에 나가 버스 안내양을 하다 폐병에 걸려 돌아온 언니의 얘기는 이미 우려먹을대로 우려낸 옛날 이야기같다..
이런 소설을 사람들이 읽으려고 할까?
이젠 교과서에도 다루지 않는 소설이 아닐까?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에서 다루니 추천도서도 되지 않을 거 같은데.
좀 더 밝고 재미난 이야기를 썼으면 좋았을 걸......... 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만난 작가의 말.
"이야기였고 울음이었고 끝내 노래가 되었다" 더니만 나도 참을 수 없는 울음이 난다. ㅠㅠ
은주의 영화가 아니었던 은주의 영화가 결국 은주의 영화가 되었듯(작품은 직접 읽어보시길),
공선옥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고 우리의 이야기였다.
지나갔으니까, 익숙하니까, 여러 사람이 했으니까, 누구나 알고 있으니까, 요즘 애들한텐 생소하니까..........
그러니까,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그 의미를 재단하고 평가할 자격을 누가 나에게 주었는가.
나는 그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면 그만인 것을.
소설을 재미와 '돈' 이 되겠는가로 바라보고 있었던 내 잠재의식에 철퇴를 가한 소설, 은주의 영화.
마음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다.
< 작가의 말, 중 >
이 소설들이 지금 세상의 어느 누구에게 가닿아서 그에게 어떤 식으로 말을 걸까.
말을 걸 수나 있을까?
혹은 누가 이 소설들에 말을 걸어오기나 할까?
소설이라는 물건이 세상에 의미가 있기는 할까?
나는 혹시 노래를 익혀 밤무대 가수로 사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소설이 세상에서 그리 유용한 물건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기는 해도 어쨌거나 그럼에도 아랑곳없이 나는 앞으로 사는 동안은 소설을 쓰면서 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