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 혼자여서 즐거운 밤의 밑줄사용법
백영옥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꽤 오랜 시간 하나, 둘씩 나눠 읽었다.

순간 집중해서 읽을 수 있는 책도 좋지만,

묵상하듯 천천히 읽으며 음미하는 이런 책도 참 좋다.

끝까지 다 읽기도 전에 주변에 선물했던 "빨강 머리 앤이 하는 말"의 작가 백영옥의 신작,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그냥 흘러넘쳐도 좋으련만.

채우지도, 넘치게 두지도 못하는 나를 본다.

초반.

사랑과 이별 이야기가 등장한다.

"어랏, 시류 편승인가?" 싶어 살짝 실망할 뻔!!!! 했으나 여러 이야기 주제 중 하나였다.

다행이다. ㅎㅎㅎㅎㅎ

내내 사랑, 이별 얘기만 했으면 정말 많이 상처받았을 거야.

주변의 신변잡기에서 시작되는 수필.

일상의 소소한 사건과 생각을 책 내용과 시를 인용해서 이야기한다.

유려한 말과 글솜씨를 뽐내서 밑줄을 긋고 기록하고 싶은 문장이 넘치는 다른 에세이와 달리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는 밑줄을 긋고 적어놔야겠다 싶은 문장을 찾기 어렵다.

그런데 평범한 그 문장이 모이면 푸근하고 따뜻하고 위로받는 느낌이 드니

문장을 적어두는 것이 아니라 책을 통째로 소장해야겠단 마음을 불러 일으키는 것.

웃음 코드도 어찌 이리 따뜻한지. ㅎㅎㅎ

언젠가 크리스마스 즈음 길에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드립니다' 라는 현수막을 보고 슬며시 웃기도 했어요. 그 밑에 '대한불교 조계종'이라고 적혀 있었거든요. (100쪽)

지나다가 본 플래카드, 화분, 종이 피아노, 바나나우유같은 데서 시작하는 이야기.

마지막까지 존댓말로 써서 나도 무릎 꿇고 예의를 갖춰 읽어야 할 것만 같은 맘이 들었던 시간.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이야기가 책 속의 문장들과 어우러져 잔잔한 파동을 만들어냈던,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가을에 제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