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차와 장미의 나날
모리 마리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이런 에세이 처음이다.

음식 에세이라니.

책 제목도 어찌나 이쁜지 홍차와 장미의 나날이다.

흐음~ 제목만 되뇌어도 기분 좋아지는 홍차와 장미의 나날.

< 음식 > 

음식 이야기가 나온다.

오이 껍질을 듬성듬성 벗겨 간장에 오이 무침을 해서 먹는데 취향이 확고하다 못해 단호하다.

(일본의 간장이나 밥에 대한 애정은 우리와 조금 다르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음)

다른 소스나 다른 요리법도 있다는 말을 "감히" 꺼낼 수 없을 지경이다.

지금껏 음식을 소재로 다룬 영화를 떠올리면 따뜻하고 정감어린 분위기에 끌려 마음이 푸근해졌는데

이 책은 따뜻함과 푸근함이 아니라 음식에 대한 신념과 확신으로 무장했다.

새롭다. ㅎㅎㅎㅎ


< 요리 >

쉽게 읽히지 않는다.

요리 과정이 글로 옮겨지면 그 과정을 상상해야 하는데 요리를 즐기지 않는 나는 상상의 과정도 더디다.

요리책이야 사진이 있으니 글을 보지 않아도 이해되지만 산문으로 쓰인 요리 과정은 다르다.

마치 저자가 시키는대로 하면서 재료 하나라도 빠뜨릴까 조심스러워 하는 모양새.

쉽게 접하는 우리나라 요리가 아니라 더욱 조심스럽고 그래서 더욱 더디다.

만사 귀찮아하는 점이나 어림짐작으로 재료의 양을 정하는 건 완전 내 스똬일.

재미나다. ㅋ


< 문체 >

저자 모리마리는 1903년 생.

할머니라 부르기에도 죄송스런 역사 속 인물.

그런 할머니께서 젊은이처럼 말하는 느낌.

짧고 간결하면서 굉장히 예의바르고 조심스럽지만 권위적이거나 촌스럽지 않다.

"아이란 특히 혼자 있을 때 한 사람분 과자를 융숭히 대접받으면 기쁜 법이다." (28쪽)

아이의 마음을 정확히 짚어 "융숭히 대접받는다"는 문어체를 사용해 과자 받는 기쁨을 표현하는 재미.

좋다. ^^


여행, 사랑처럼 하나의 주제로 쓰인 에세이는 나눠서 읽되 시간차를 두지 않으면 질려버린다.

한 사람이 하나의 소재에 대해 갖는 생각이 거기서 거기니 당연한 일.

그러나  홍차와 장미의 나날처럼 다양한 소재를 신변잡기(?)로 버무려

근사한 문체로 풀어내면 읽는 내내 흐뭇한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프랑스어 선생님을 따로 불러 배울 정도였던 옛날 부잣집 할머니의 이야기는

귀가 솔깃해지는 흡입력이 있는데다

동료 문인부터 요리까지 칭찬인 듯 디스하는 센스(?)도 갖추셨음.


서늘한 가을 아침.

조용히 앉아 따뜻한 차 한 잔과 20분씩 읽기에 너무너무너무 잘 어울렸던, 홍차와 장미의 나날. 

호호할머니 작가의 산문이라 넉넉한 마음으로 읽었음 인정!!! ^^


다시는 에세이 읽지 말아야지 싶다가도,

가끔 만나는 보석같은 요런 애들 때문에 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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