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익환 평전 - 문익환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판 문익환 평전
김형수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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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시절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은 하늘색 하드커버에 빛나는 위인전 전집이다.

위인전이란 게 죄다 역경을 딛고 훌륭한 사람이 되는 이야기라 특별히 기억나는 내용은 없지만,

방바닥에 배 깔고 엎드려 주구장창 읽어대던 시절은 선명하다.

그 시절에 징하게 읽어대서 그럴까?

그 이후로 인물에 관한 책을 챙겨서 본 기억이 없다. ^^;;

베스트셀러에 빛나는 체게바라 평전은 보았으나 완독 실패.

사람들이 왜 그 책에 열광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을 품은 후, 처음으로 맞이한 인물 이야기가 문익환 평전.


700여 쪽을 자랑하는 어마무시한 양이다.

책이 두꺼우니 사진이 많을 거라 생각했으나 '책답게' 글자만 빼곡하다.

여백의 아름다움 따윈 상관없이, 800쪽까지 갈 수 없다는 의지를 담듯 빈틈없이 담아낸 글자의 향연.

두려움이 앞선다.


그.러.나.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

'문익환' 을 둘러싼 사람들이 죄다 역사책에서 봤던 사람들.

문익환의 삼총사 멤버가 윤동주였으니 이게 소설인지 사실인지 갈피를 못잡겠다.

일제강점기부터 대혼란의 역사와 역사를 관통하는 인물의 삶을 풀어내는 저자 김형수의 문장력에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내용도 형식도, 독자에게 주는 감동과 메세지도, 기울거나 버릴 것 없이 마음에 쏙 드니 틈만 나면 책을 잡고 만다.


북한을 방문했던 사람으로 내 기억에 처음 등장하는 문익환 목사는 정신 못차리는(?) 좌익으로 보였더랬다.

데모는 대학생들이 하는 거라 생각했었으니 당연히 젊은 시절부터 쭈욱 데모만 했을 거라 여겼고,

왜 자기가 목사라고 떠드는지 그것도 못마땅했었다.

통제된 언론을 통해 보여주는대로 보고 자란 내 기억 속의 문익환은 그런 사람이었다.

독립운동가 집안이었으나 독립 이후 공산주의자에게 시달려 반공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건 상상도 못했던 일.

자신의 사명은 성서번역이라 여겨 쉰 살이 넘도록 세상의 요구와 사회의 어둠에 침묵하며 살았다는 것은 충격.

충격을 딛고 나아가면 영화 1987에 등장하는 문익환 목사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기 시작한다.

이한열 열사를, 박종철 열사를 목놓아 부르던 그 목소리의 근원이 어디인지  보인다.


잠을 재우지 않는 취조 과정에서 피곤하니 자야겠다 취조실 침대에 누웠다는 아내 박용길.

나는 왜 그분에 대해 배우려 하지 않았을까.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견딜 수 없다.

가던 길 잠시 멈추고 '생각' 이란 걸 하게 만든, 문익환 평전.

소중하게,

아주 소중하게 간직할 책으로 분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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