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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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연보까지 합치면 597쪽에 달하는 책.

두툼하니 묵직해서 좋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가 사진으로 하나 가득이라 더 좋다.

굳이 글을 다 읽지 않더라도 한 장씩 천천히 넘기며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보는 것으로도 충분한 책.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실물로 보기 위해 길을 나서야 할 판이다.


 

개인적으로 유홍준의 글을 좋아했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처음 읽었을 때 받았던 충격은 실로 어마어마했었고,

실제 강연을 들은 후론 글보다 말을 더 좋아하게 되었지만 이런 저런 구설에 오르니 자연스레 멀어졌다.

그리곤 추사 김정희를 통해 다시 만난 유홍준.

내가 좋아하는 화려한 입담이 펼쳐지진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하는데 집중했음이 느껴진다.

후반부에 경험 이야기가 드문드문 나오지만, 강연을 통해 봤던 재미(?)를 기대한다면 큰 일.

오롯이 추사 김정희의 삶을 마주할 마음으로 다가서야 한다.


책 초반은 힘들었다.

추사 김정희의 삶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이 "추사체" 하나로 각인된 인물이니 그의 삶 모두가 낯설다.

주변 인물이라고 등장하는 이들 중 기껏해야 하는 사람은 박제가, 박규수고

추사나 완당이라는 호를 떼고 '김정희'라고만 칭하면 '이게 누구였더라?' 잠깐 멍해지기까지 한다.

학교 시험을 위한 학교 시험에 의한 나의 역사 지식 앞에 부끄러움이 치솟는 순간. ㅡㅡ;;

그렇게 낯섦과 멍해짐과 부끄러움의 시간을 견디며 추사 김정희를 알아간다.


학창시절 추사체를 처음 봤을 땐 살짝 실망했었다.

어디가 어떻게 잘 쓴 글씨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는데 지금 보니 그것은 "괴(怪)"한 글씨였기 때문이었다.

추사체의 특질은  "괴(怪)"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개성을 드러낸 괴함 - 그것은 당시엔 좋은 소리가 아니었고 심지어 추사 김정희도 괴하면 아니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갈고 닦은 기량이 차고 넘치면 자신의 색을 드러내지 않으려 해도 드러나는 것을. 

놀라운 것은 책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내게 "괴(怪)"함을 찾아내는 안목이 생기더라는 사실이다.

추사체의 진면목이 내 눈에도 보이게 되는 순간, 전율을 느낀다.

여러 개의 글씨가 등장하면 사진 설명을 보지 않고 어느 것이 추사 김정희의 것인지 맞추기 도전도 불사.​ ㅎㅎㅎ


추사체로만 알려진 김정희는 단순한 서예가가 아니다.

청나라 지식인들과 끊임없는 교류를 했던 고증학의 대가였고,

문인화는 물론 시에도 뛰어났으며 제자를 양성하고 사랑하는 스승으로도 본이 되었다.

벼루를 열 개나 뚫어먹을 정도로 쉬지 않고 실력을 연마하며 완벽함을 추구했고,

말도 안되는 이유로 유배를 가는 시대의 부조리함을 보여주는 증인이기도 하다.


추사 김정희를 알아간다는 것.

이덕무라는 사람을 처음 알았을 때처럼 묘한 희열이 생긴다.

추사체를 벗어난 인간 김정희를 알았다는 기쁨과 그의 글씨를 볼 줄 아는 눈을 가졌다는 자랑스러움.

모두에게 쉽게 추천할 수 있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읽으면 후회없을 거란 얘기는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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