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손수건 - 미선이와 효순이에게 보내는 이용남의 포토에세이
이용남 지음 / 민중의소리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한 장 한 장 조심스레 넘기던 손과 눈이 딱 멈춰버렸다. 100쪽 한 여자아이의 사진에서 멍하니 한참을 있었다. 그리곤 눈물 한 방울이 똑 사진 위로 떨어졌다. 미군에게 아버지를 잃은 한 소녀의 앙다문 입매와 어딘가를 쏘아보는 눈빛. 속으로 씹어 삼키고 있을 열 살짜리 해미의 슬픔과 증오와 상처가 고스란히 전해져 가슴에 금이 간 듯했다. 사진으로 봐도 이러한데...

 

사진집은 지난 5월 24일 음독자살을 기도한 사진작가 이용남 씨가 효순이와 미선이를 추모하며 낸 책이다. 그의 음독자살 기도를 두고 주변의 어떤 이들은 ‘무모했다, 감정적이다’라고 했다지만, 그는 과연 온전한 가슴을 지녔을까.


내가 책에서 본 사진들의 피사체는 나보다 먼저 사진작가가 봤을 것이다. 파인더를 통해 피사체를 보며 초점을 맞추고 구도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파인더에서 눈을 떼고 다른 위치에서 다른 각도로 피사체를 보며 사진을 찍었을 것이다. 사진은 곧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의 시선이 닿은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잊고서 사진을 보아왔다. 사진 속에는 사진가의 의도와 감정이 들어 있는 것이다.

 

도로변에 뒹구는 찌그러진 피 묻은 신발을 보며,
미군 트레일러에 찌그러진 자동차를 보며,
사고로 일그러진 운전자의 얼굴을 보며,
증오와 슬픔에 찬 아이의 눈매를 보며,
썩어버린 논바닥의 악취를 맡으며,
터져 나온 골수와 문드러진 종아리를 보고서
어찌 부서져 내리지 않은 온전한 가슴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가슴에 들러붙은 악몽을 농약으로라도 씻어내고 싶지 않았을까.

 

사진작가 이용남 씨가 책의 머리말에 쓴 한 구절이 확대되었다.
“나도 아름다운 사진을 찍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