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에 꽂힌 책
헨리 페트로스키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 200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책꽂이에 꽂힌 책의 어제와 오늘, 내일
 

  책에 흥미를 붙이면서 욕심도 생기더라. 탐나는 책이 생기는가 하면 꼭 보지도 않을 책을 사기도 한다. 욕심은 책뿐만 아니라 책꽂이에도 마찬가지다. 좀 두께가 있고 길이도 방 한면을 채울 만한 나무판 여러 개와 벽돌을 이용해 만든 책꽂이가 갖고 싶었다. 아니 여전히 갖고 싶다. 여러 사정상 아직 원하는 책꽂이를 갖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그만한 책꽂이가 들어갈 만한 방이 아니라는 슬픈 현실. 두 번째 이유는 그 책꽂이에 꽂을 만큼 책이 많지 않다는 안타까운 현실. 읽은 책과 안 읽은 책 모두 합해 지금 내 방에 있는 책은 겨우 사백몇십 권밖에 안 되니 그보다 두세배는 더 있어야 그런대로 모양이 날 텐데 말이다. 읽지도 않을 거면서 무턱대고 책만 끌어 모으는 것도 좀 우습겠고.

   어릴 적에서부터 지금까지 보았던 책들을 곰곰이 떠올려보면 이십여 년 동안에 책의 꼴이 참 많이 변했다 싶다. 책의 장정에서부터 인쇄, 종이, 판형 등등 질적으로 나아졌고 다양해졌다. 이 짧은 시기에도 이러한데, 책이 만들어진 처음의 시간부터 지금까지는 얼마나 많은 변모가 있었을까. 이 책에서는 서양에서 책을 보관하던 방식으로 접근하여 책의 꼴과 그 사회성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책을 탐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그 내용을 담고 있는 껍질에도 역사가 있고 여러 의미의 변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 책에 대해 새로운 시각이 생길지도 모르지 않는가? 책을 읽는 또 다른 묘미를 느낄지도 모르지. 
 
 
 
   "우리가 지금 만나는 책의 꼴은 중세에 이르러서야 나타난다. 그 전에는 그저 두루마리에 썼을 뿐이다. 두루마리들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묶은 것이 바로 책의 전신인 코덱스이다. 이 코덱스를 만들고 읽는 층은 주로 수도원의 성직자였고, 따라서 책의 종수나 부수는 극히 적었다.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아 주로 필사를 했기 때문에 책은 매우 귀중했다. 이러한 책의 조건은 보관에도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과 같이 책을 세워서 책등만 보이게 꽂은 것이 아니라, 책상 위나 선반에 눕혀 보관했다. 흔히 책을 읽고나서 휙 던져두듯이 그렇게.
   인쇄술이 발달하고, 독자 대상이 수도원을 벗어나면서 책의 종수나 부수가 많아졌다. 소량생산에서 대량생산으로 책이 만들어지면서 서점과 도서관이 생겨났고, 개인 서재도 생겨났다. 개인 서재처럼 책을 적게 보관하는 경우는 역시나 눕혀 놓거나 궤짝에 넣어두었다. 그러나 도서관에서는 많은 책을 효과적으로 보관하는 방법과 함께 읽는 공간도 마련할 필요가 생겼다. 또한 도난을 걱정해야 했다. 그래서 이때부터 책은 세로로 책장에 꽂히게 되었는데, 아직은 책등이 밖으로 나온 게 아니라 손때가 묻은 배면이 밖으로 나왔다. 왜냐하면 도난을 막기 위해 책의 두꺼운 앞장이나 뒷장을 사슬에 묶어놓았기 때문이다.
   현대에 들어와 책이 폭발적으로 많아지면서 도서관은 좀더 건축학적으로 설계되었다. 책의 효율적 보관과 함께 좋은 독서환경이 중요해졌다. 때문에 창문의 배치, 책장의 배치, 공간의 활용, 전기의 활용 등을 골똘히 연구했다."
 
 
  
   책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공간이 한정되어 있다. 이제는 읽는 책과 읽지 않는 책으로 나눌 수밖에 없다. 사료로써 의미를 더 많이 가지게 되는 책들은 독서가 아니라 보관용으로 어딘가에 둘 것이다. 앞으로 계속 쏟아져 나올 책들을 그려보면, 전자책이 종이책을 대신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디스크 한 장에 수십 권의 책에 든 내용을 넣고, 컴퓨터로 클릭만 하면 원하는 쪽이 나온다. 그러면 내가 바라는 덩치 큰 책꽂이는 필요가 없어지는 걸까? 아담한 시디 장만 있으면 되는 건가?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책의 미래를 그려볼 때 한 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이 추가되었다. 책의 수량도 책의 미래에 영향을 주겠구나. 사회에 나도는 책의 수량에 따라서 책을 보관하는 방식과 형태가 달라졌듯이 말이다.

   한 가지 드는 궁금함과 아쉬움. 동양에서 책은 어떤 형태로 발전했을까? 옮긴이 역시 후기에서 잠깐 밝혔지만, 동양에서의 책의 역사도 서양 못지않게 흥미로웠을 성싶다. 또한 미래에 대한 반짝하는 아이디어를 줄지도 모른다.   

   다른 얘기인데, 서양 중세기에 대한 기술은 주제가 무엇이건 간에 암울하고 답답하다. 그래서 안 읽히는지도 모르겠다. 공학적인 설명이 주된 내용인지라 이 역시 나에게는 좀 답답한 면이 있었다. 보다 옛날 분위기를 내기 위해 종이와 서체 등을 가려 선택한 듯하다. 그럴 의도였다면 충분히 전달한 셈이기는 하다. 책을 손으로 만지는 느낌이 좋고 무엇보다 가벼워서 좋다. 하지만 서체나 인쇄 상태는 읽는 입장에서 보면 그리 좋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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