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드슨 강변에서 중국사를 이야기하다 - 레이 황의 중국사 평설
레이 황 지음, 권중달 옮김 / 푸른역사 / 2001년 9월
평점 :
품절


거시적 관점에서 바라본 중국 역사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E. H. 카가 한 너무나도 유명한 말이다. 대학교에 들어와 청년사에서 나온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으면서 이 말에 밑줄을 그었다. 스스로 깨달았다기보다는 다른 이들이 중요하다고 했으므로. 새삼스러울 게 없는 당연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한 만큼 너무나도 중요한 말이기도 하다. 역사를 공부하려는 이들은 자연스레 가지는 생각이 아닐까. 하지만 역사를 그저 대하드라마의 재료 정도로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어느 학문이 그렇지 않겠느냐마는 역사는 특히나 서산의 마애불처럼 보는 방향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한다. 과거의 한 지점을 바라보는 지금의 시대, 처지, 종교, 생각 등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다는 말이다. 때문에 사관이 필요하고 역사의 진실이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닐까. 또한 저자가 말했듯 당시대의 역사가들은 그들의 도덕적 잣대로 사건을 결론짓고, 호칭하고 평가하지만 오늘날의 잣대로 보면 오히려 상반된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저자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으로 강조하는 거시적 관점은 사관이라고 볼 수는 없겠다. 이는 단지 방법론이다. 이를테면 멀리서 보느냐 가까이서 보느냐에 따라 그 안 보이던 것이 보이고, 보이던 것이 숨는 일은 있겠지만 그것을 해석하는 잣대가 될 수는 없으리라. 레이 황 역시 거시적 관점으로 중국 역사의 각 단면을 보았지만, 해석하는 잣대는 경제적인 발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중국이 자본주의로의 진입이 더디어진 이유로부터 출발하여 고대에서 원나라까지를 살펴본 것이다. 중국 역대 왕조들의 가장 큰 허점을 큰 중국 대륙을 지배하는 방식의 문제였다. 드넓은 중국 대륙을 지방분권이 아니라 황제 중심의 중앙집권 관료체제로 통치했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없었다는 것이 요지다. 또한 수치를 기본으로 하는 기구화, 제도화로써가 아닌 황제의 도덕이 선정이 표준이 된 것도 문제였다. 황제를 정점으로 하여 아래로 진리나 제도, 원칙 따위를 일방적으로 내리다 보니 경제 제도마저 현실과는 한참 거리가 먼 것이기 일쑤였다는 것이다. 이는 각 왕조가 몰락하는 주요한 원인이 되었고, 더 나아가 중국 경제가 뒤쳐지게 된 숨은 이유였다. 저자는 오늘날 가장 중요한 작업은 재정과 조세수입을 상업화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한편, 멀리서, 혹은 나중에 보면 상처가 보이지 않는 수도 있으니, 거시적 관점으로 본 위진남북조와 당의 말기가 그랬다. 기존의 좁은 시각에서 보면 위진남북조 시기는 그저 아래위로 갈라진 혼란의 시기지만,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새로운 전통이 만들어지고, 북방민족이 한화되고, 불교를 통한 상아의 융합이 가능해진 시기다. 수나라로 재통일을 이룰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시기다. 마찬가지로 당이 몰락한 이유가 현종의 실정과 안사의 난이 아니라 변화한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 체제에 있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이러한 관점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만일 자동차가 몇 번 교통사고를 낸 다음이 아니라면, 도로가 어떻게 계획되어야 하고, 또 신호등은 어떻게 설치되어야 할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얼핏 함석헌의 ‘고난의 역사’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저자가 말하는 자신의 서술태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네 가지로 정리해서 밝히고 있다. 첫째,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이야기에서 논의를 이끌어낸다. 둘째, 일개인이나 특정 사건에 역사적인 책임을 돌리지 않는다. 셋째, 사건이 일어난 전후시대와 그 사건을 둘러싼 동서남북의 사회, 지리, 문화까지 두루 살핀다. 넷째, 거시사관은 국제성을 띠고 있다. 물론, 셋째나 넷째 요건을 이 책에만 두고 본다면 부족한 감이 있다. 첫째는 학술적인 글쓰기와 대중적인 글쓰기의 다른 점을 경쾌하게 말한 것이 아닐까. 두 가지의 글쓰기가 모두 같은 알맹이를 가지고 있다 해도, 그 알맹이에 다가가는 방식과 경로의 차이가 글쓰기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연구 자체에 의미를 두는 역사학 연구에 대해서도 경계를 표시한다. “역사연구가 자칫 희석화된 지식의 양산이나 개인적 취향이나 주관을 만족시키는 수준에 그친다면, 그것은 이미 학문으로서의 생명력을 잃은 것이다.”

맨 앞의 명제를 다시 한 번 떠올리자.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각장마다 있는 옮긴이의 요약글이 친절하고, 소단락의 제목이 좋다. 체제와 편집 또한 깔끔하고 안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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